[최기영 기자의 안녕, 나사로] ‘같이의 가치’ 아는 배우자가 되자

최기영 2023. 6. 10.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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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때로 행복하고 때로 고달프고
미드저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남성이 가장 긴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나라. 바로 대한민국이다. 지난 6일 OECD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아빠들이 사용할 수 있는 육아휴직 기간은 2021년 기준 52주(배우자 출산휴가 제외, 공동 1위 일본)다. 2위권인 슬로바키아공화국(28주) 프랑스 룩셈부르크(26주)의 2배에 달하는 수치이자 OECD 평균(8.1주)에 비해 6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이 사실이 ‘우리나라 좋은 나라’로 귀결되진 않는다. 반전이 있다.

제도상으로는 ‘라떼 파파(커피를 손에 들고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아빠)’의 천국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육아휴직자 가운데 남성 비율은 20%대에 불과하다. 스웨덴 아이슬란드 포르투갈 노르웨이 등은 남성이 40%를 넘고, 룩셈부르크는 육아하는 아빠(53%)가 엄마보다 많다.

우리 사회의 폐부를 찌르는 통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은 26년째 OECD 회원국 가운데 남녀 임금 격차 1위다. 성별 임금 격차가 31.1%(2021년 기준)로 39개 회원국 중 가장 크다.

당장 지적이 나온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더 긴 육아휴직을 쓰는 것은 사회적으로 남녀 임금 격차를 벌어지게 하는 ‘모성 페널티’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1974년 세계 최초로 부모 공동육아휴직제를 도입한 스웨덴의 경우 남녀 임금 격차가 7.2%다. 임금 수준이 비슷하기 때문에 엄마 아빠 중 어느 한쪽이 육아휴직에 돌입했을 때 가계소득 하락 폭에 차이가 작다.

상대적으로 임금이 적은 여성이 휴직하는 게 합리적 결정이 되지 않도록 남녀 임금 격차를 줄이는 것.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육아휴직 이용 격차를 줄이는 것. 육아휴직 급여 상한액의 현실화 등 다양한 통계와 분석을 기반으로 갖가지 대안들이 제시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경험적으로 안다. 제도적 변화가 문제 개선의 필요조건이 될 순 있어도 충분조건이 될 순 없다는 것을 말이다.

2021년 초 1년여간 일터를 떠나 육아터로 향하겠노라고 결정했던 필자에게도 이상보다는 현실적 고민이 앞섰다. 여느 가정과 다를 것 없이 아내보다 남편의 임금이 높았고, 정부에서 지원하는 육아휴직 급여로 가계를 책임지기엔 역부족이었으며 코로나19 팬데믹은 여전히 일상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짧지 않았던 고민의 끝자락에서 결단의 방아쇠를 당기게 한 건 ‘반드시 지켜야 할 것에 집중하면 잠시 내려놔야 할 것이 보인다’는 진리였다. 냉혹한 현실이 던져주는 두려움은 결코 작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켜야 할 가정, 멈출 수 없는 양육의 울타리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둬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이다. 판단의 기본 바탕에 ‘돕는 배필로서의 배우자’ ‘같이의 가치’가 깔리면서 짙게 드리웠던 안개가 걷혔다.

성경은 하나님이 아담을 위해 ‘돕는 배필’(창 2:18)로 하와를 만들었다고 기록한다. 바라는 배필이 아니라 돕는 배필이다. 자신의 필요나 욕구가 배우자로부터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배우자에게 필요한 도움을 찾아 전하는 게 핵심이다. 그렇기에 성경이 말하는 도움은 수직적일 수 없으며 상호보완적이다.

같이, 함께한다는 건 때로 행복하고 때로 고달프다. 육아의 특성상 미성숙한 자녀와 비상식적인 상황에 놓인 채 갈등을 빚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겪는 갈등의 가치 또한 작지 않다. 함께하는 시간이 없어 아예 경험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같이 문제를 마주하고 서로 이해할 기회를 얻는 것 자체가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제도보다 인식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흔히 듣는다. 더 중요한 것은 인식의 기저에 깔린 가치관이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한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그걸 꼭 먹어봐야 하느냐는 반문이 따를지 모른다. 먹어 본 사람으로서 확신한다. 육아는 꼭 먹어봐야 잘할 수 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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