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세상을 이루는 수학과 음악

이마루 2023. 6. 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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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동경한다. 음악 그 자체에 느끼는 경이와 음악 하는 사람에 대한 경외심이 함께 어우러진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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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루는 수학과 음악

음악을 동경한다. 음악 그 자체에 느끼는 경이와 음악 하는 사람에 대한 경외심이 함께 어우러진 마음이다. 음악은 내가 범접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악기를 연주해 음악을 일으킨다는 것. 세상에 존재해 오던 소리에 파동을 일으키는 것처럼 이 일이 어떤 희열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은 내게 수학과 다르지 않다. 이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음계들, 그것을 공식화해 내 눈앞에 펼쳐놓지만,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기호들의 세계. 복잡한 수학 공식을 푸는 사람이나 빼곡한 악보를 연주하는 사람이나 내게는 같아 보인다. 내가 절대로 손댈 수 없다는 점에서도. 얄팍한 지식마저 통하지 않는 미지의 세계는 내가 그 세계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태초의 즐거움을 준다. 어쭙잖게 발을 담갔다 빼도 다른 예술과는 달리 피아노 건반조차 정복한 적 없던 내게 음악은 다른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넋 놓고 감상할 수밖에 없다. 고로 음악은 가장 쉽게 나를 다른 차원으로 데려간다.

음악과 같이 살아가면서도 곡을 해석하거나 계보를 꿰뚫는 능력과 지식은 없다. 글쓰기 기초나 문학사를 알면 문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겠지만, 이런 지식이 있느냐 없느냐로 문학 읽기의 즐거움이 좌지우지되는 것 같지는 않다. 문학사를 알면 문학을 더 깊이 있게, 남들은 짚어내지 못한 부분을 더 폭넓게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즐거움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그런 마음으로 음악을 즐긴다. 분명 연주하는 사람도, 음악을 만드는 사람도 내가 그렇게 듣기를 원할 거라는 확신으로. K팝과 영화, 드라마 OST가 주력으로 듣는 음악인데, 이 세 개의 카테고리에서 특별한 취향 없이 상황에 맞게 듣는다. 아침 산책이나 저녁 운동, 이동 시간에는 K팝을 듣고, 작업을 하거나 책을 읽을 때는 가사가 없거나 혹은 가사가 있어도 알아들을 수 없는 OST를 듣는다. 최근에 많이 들은 OST는 영화 〈싱글 맨〉의 ‘Abel Korzeniowski, Studio Orchestra-Stillness of the Mind’와 영화 〈검은 사제들〉의 ‘강동원-Victimae Paschali Laudes’이다. 그 외에도 영화 〈인터스텔라〉 〈듄〉 〈사도〉 〈판의 미로〉 〈스즈메의 문단속〉 〈왕좌의 게임〉 〈메이즈러너〉 등을. 그리고 드라마 〈구경이〉 〈시그널〉 〈더 글로리〉 〈체르노빌〉 〈미스터 션샤인〉 등을 챙겨 듣는다. 한 마디로 ‘이런 노래를 평소에 듣는다고?’ 싶은 노래까지 잘 듣는 편이다.

영화 〈싱글 맨〉 LP

K팝을 들을 때는 가사에 집중한다. 세상과 맞서 이겨내는 걸 그룹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힘이 난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또래 아이들이 힘차게 부르는 노래를 듣다가 가끔 눈물을 흘리기도 할 정도로. 평소 좋아하는 아이돌의 신곡을 챙겨 듣고, 아주 가끔은 노래를 통해 인물을 떠올리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김세정의 ‘Skyline’, 유아의 ‘숲의 아이’, 보아의 ‘아틀란티스 소녀’를 듣고 장편소설 〈나인〉도 썼다. 영화와 드라마 OST를 좋아하는 이유는 한 곡에 하나의 감정이 아주 짙게 들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두 장르의 음악은 각 장면에 맞게 곡이 만들어진다. 영화 속 인물이 가장 처절할 때, 행복할 때, 용기를 낼 때, 실연을 극복할 때 등 그 인물의 감정에 맞게 짧게는 30초, 길게는 8분까지 음악이 이어진다. 내가 어떤 감정에 몰입해야 하는 상황, 내가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굴어야 할 때 그에 맞는 영화음악을 듣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음악은 내 감정이 큰 몫을 차지한다. 가끔 음악을 듣지 않으면 소설을 한 글자도 쓰지 못할 때도 더러 있다. 모든 작가가 당연하게 나 같을 줄 알았는데, 작가 중에는 음악을 들으면 집중이 흐려져 소설을 쓰지 못하는 작가도 있다는 것이 소소한 충격일 정도였다.

요즘 취미는 타인의 플레이리스트를 알아내는 것이다. 최근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인 멜론이 교보문고와 함께 진행한 작가의 플레이리스트 작업을 하며 느낀 것은 내가 즐겨 듣는 음악을 공개하는 건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 경험 이후 타인의 플레이리스트를 눈여겨본다. 누군가에게 소개하기 위해 자신의 취향을 고르고 골라 만들었을 플레이리스트가 그 사람의 큰 부분을 설명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어떤 상황에서든 나는 음악만 있으면 상황을 견딜 수 있다. 음악이 없었다면 스텝밀을 한 시간씩 타지도 못했을 테니까. 음악은 내 하루이고, 나를 소설 속으로 데려다주는 텔레포트다. 세상에 이토록 많은 음악이 나왔는데, 앞으로 더 나올 음악이 많다는 사실을 동경하면서 나는 오늘도 음악을 듣는다.

천선란

1993년생 소설가. 2019년 첫 장편소설 〈무너진 다리〉를 펴낸 이후 〈천 개의 파랑〉 〈노 랜드〉 등 소설을 부지런히 선보이고 있다. 동식물이 주류가 되고 인간이 비주류가 되는 지구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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