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와 개는 출입을 금지합니다” [정현권의 감성골프]

2023. 6. 9.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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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개는 출입을 금지합니다.”

골프 종주국 스코틀랜드 뮤어필드 골프장 입구에 걸렸던 팻말이다. 골프(GOLF)가 신사들만 하는 게임으로 여자는 금지하기에 ‘Gentlemen Only, Ladies Forbidden’의 약자라는 우스개도 여기서 나왔다.

1744년 문을 연 이 골프장은 270년 넘게 남성 회원만 받아오다 2017년 드디어 여성 회원들에게 문을 열었다. 실제 여성 회원이 가입한 건 2019년으로 세상 변화에 상관없이 성차별 벽이 굳건했다. 이 ‘금녀(禁女)의 구역’에 2022년 8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대회 AIG여자오픈이 열려 성차별을 완전 허물었다.

해마다 4월 첫째 주 목요일부터 마스터스가 열리는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골프장도 여성들이 발을 들여놓은 건 불과 10여년 전이다. 1933년 설립 이래 60여년 지난 1990년 흑인들을 회원으로 받아들였고 2012년 비로소 ‘금녀의 벽’이 허물어졌다. 곤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이 오거스타 첫 번째 여성 회원이었다.

이웃 나라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사이타마현 가스미가세키 골프장이 대표적이다. 2017년에 2020 도쿄 하계올림픽 경기장으로 선정된 이 골프장은 여성을 정회원으로 받지 않고 공휴일에는 여성 라운드를 금지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경기장을 변경하겠다는 경고에 결국 여성에게도 정회원 자격을 부여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불과 2~3년 전까지 여자를 아예 회원으로 받지 않는 골프장이 있었다. 개인 회원 자격을 ‘만 35살 이상의 내외국인 남자’로 한정하자 진정과 민원이 쇄도했다.

여성은 가족 회원으로 등록하면 되기에 권익 침해로 보기 어렵다는 골프장 주장에도 불구하고 국가인권위원회는 2022년 6월 한 골프장에 평등권 침해와 차별이라는 이유로 개선을 권고했다.

남편이나 아버지가 정회원이면 여자는 가족 회원으로 등록하거나 평일 회원이 될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건 골프장이었다. 주말에는 여성 혼자 예약하지 못하고 이용료도 2배 이상이었다. 1980년대 개장 당시 남성 위주 모집 요건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 발단이다.

“야야! 너 알았어? 골프장 여자 회원권이 더 비싼 거?” 50대 여성이 친구 3명과 함께 골프장 회원권을 사려다 분통을 터뜨린 일이 최근 한 언론에 보도됐다.

인터넷으로 골프 회원권을 검색하다 남녀 회원권 가격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세상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이런 곳이 있냐”며 “1억5000만원까지 차이 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에 대해 골프장들은 개인 간 거래기에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급기야 “회원님이 여자로 태어난 걸 어떻게 해요!”라는 답변을 회원권 거래업체에서 들은 그녀는 매입 의사를 바로 철회했다.

우리나라 골프장 회원권에 남녀 차별이 엄연히 잔존한다. 필자도 이 사실을 최근 접하고 놀랐다. 회원권 중개업체 홈페이지에 올라온 시세에서 금방 드러난다.

일부 수도권 골프장 회원권은 남자와 여자에게 별도로 판매한다. 차이가 많게는 2억원 이상이다. 동일 혜택에도 여자는 남자보다 돈을 더 지불해야 회원권을 살 수 있다. 최근 개장한 회원제 골프장들보다 주로 1980~1990년대 전통 골프장들이 남녀 회원권을 관행적으로 구분해 거래한다.

초창기 이들 회원제 골프장은 극소수 여자에게만 회원권을 허용했다. 거래도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만 하도록 규정을 만들었다. 여성 골퍼가 많지 않았고 여성이 사회적으로도 골프에 관대하지 않은 분위기에도 영향을 받은 듯하다.

하지만 소득 수준과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면서 여성 골퍼가 늘자 여자 회원권 품귀에 가격은 올라갔다. 이는 시장 원리에 따른 것이지 자신들의 탓이 아니라는 골프장도 있다.

골프장이 내세우는 건 핑계일 뿐이라는 골프계 지적이 강하다. 규정은 바꾸면 되고 남성 규정과 통합하면 간단하게 해결된다.

이유는 따로 있다. 여자 회원은 한마디로 돈이 안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골프장 측은 여성들이 클럽하우스 매출에 기여하는 부분이 남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고 여긴다.

클럽하우스에서 비싼 식사와 음주를 꺼리고 커피나 간식을 바리바리 싸온다. 식사도 가성비 좋은 인근 맛집에서 해결한다. 골프장에선 기본 이용료 외에는 지갑을 도통 열지 않으니 남성을 선호한다.

골프 진행 속도도 영향을 미친다. 대체로 여성 골퍼의 슬로(Slow) 플레이가 상대적으로 많다고 골프장들은 생각한다. 티잉 구역을 남자보다 앞에 배치했지만 그래도 느린 진행을 우려한다.

여성 회원을 많이 받아들이면 클럽하우스 리모델링 비용도 골프장으로선 부담이다. 명문 골프장 여성 로커 수가 남성 로커의 10%에 불과한 곳도 있어 인테리어 비용을 많이 지불해야 한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골프 인구는 2021년 564만명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해 94만명 늘었다. 이 가운데 여성 골퍼 비중은 25.5%로 증가 일로다. 평일에는 여성들이 골프장을 먹여 살린다.

여성들이 골프 산업 큰손으로 부상한 것도 이미 지난 일이다. 신세계백화점의 2021년 골프웨어 매출은 전년 대비 56.3% 성장했다. 현대백화점도 매출 신장률이 65.5%에 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골프장에선 여성을 위한 로커룸 등 수용시설이 부족해 옷을 갈아입으려면 바구니를 이용한다. 규정 변경이 번거롭다니 매출에 도움이 별로 안 된다느니 해괴한 말만 늘어놓지 말고 골프장들은 당장 회원권 남녀 구분을 없애야 한다.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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