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를 믿습니까" 그후... 정부의 뜻밖의 공세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2023. 6. 9.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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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히,스토리] KBS 시청료 알아서 거둬보라는 윤 정권

[김종성 기자]

6월항쟁 36주년을 맞아 윤석열 정권이 그날을 떠올리게 만드는 조치를 내놓았다. 1985년 2·12 총선, <말>지 보도지침 폭로, 부천서 성고문 사건 등과 더불어 이 항쟁의 원동력이 된 KBS 시청료 거부 운동과 관련된 조치를 지난 5일 대통령실이 공개했다.

이날 강승규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은 전기요금과 통합해 징수해 온 TV 수신료 2500원을 분리 징수하는 법령의 개정 준비를 방송통신위원회 및 산업통상자원부에 권고한 사실을 브리핑했다. 한국전력에 위탁해 온 징수 업무를 KBS에 도로 넘길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수신료가 지금처럼 2500원이 된 것은 1981년이다. 그해 4월 1일부터 컬러 TV는 2500원, 흑백 TV는 800원씩 징수됐다(3.31.경향신문 7면). 3년 뒤 12월 1일, 흑백 시청료는 없어졌다. '시청료'를 대신해 '수신료'라는 명칭이 쓰인 것은 1989년 1월 1일이고, 수신료 징수 업무가 한국전력에 위탁된 것은 1994년 10월 1일이다.

컬러 TV 수신료를 2500원 받기로 한 1981년 4월 1일의 조치는 40년이 넘도록 유지돼 왔다. "우동과 자장면은 5백 원 내지 6백 원"이라는 그해 10월 23일 자 <매일경제> 11면 우상단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1981년에는 2500원으로 자장면 다섯 그릇을 살 수 있었다. 그동안의 물가상승에 관계없이, 그해 만우절부터 시행된 '시청료 2500원'이 지금까지 지켜진 것은 이례적이다.
  
 KBS 여의도 사옥 전경
ⓒ KBS
 
방통위원장 면직 그리고 KBS 수신료 

그로부터 13년이나 지난 1994년에도 시청료를 인상하지 못하고 타 기관에 징수 업무를 맡긴 것은 시청료가 잘 걷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해 3월 22일 자 <동아일보> '전기료-시청료 합산 부과 진통'은 "현재 54%에 불과한 TV 시청료 징수율"이란 표현을 썼다. 대중이 이처럼 시청료 납부를 꺼렸기 때문에, 요금 인상은 꿈도 못 꾸고 2500원이라도 확실히 징수하기 위해 '전기료 합산 청구'를 관철했던 것이다.

KBS는 시청료를 제대로 징수하지 못해 지독한 트라우마를 겪었다. 윤 정권은 그런 KBS를 상대로 '직접 징수해 보라'며 등을 떠밀고 있다. 상황이 이대로 흘러가면 KBS의 재정 상태가 악화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대통령실의 5일 자 브리핑은 '공영방송 장악 의도', '공영방송 흔들기'로 해석될 여지가 농후하다.

2021년 12월 9일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고 다음 날 취임한 김의철 KBS 사장은 윤 정권이 출범한 직후부터 압박을 받았다. 작년 6월 20일, 김의철 사장과 이사진 11명을 겨냥한 국민감사 청구가 감사원에 접수됐다. 김의철 사장의 임명 과정에서 위장전입 및 탈세 의혹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으며 신사옥 건축 중단으로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는 등의 이유였다. 이명박 정권 때 감사원이 정연주 KBS 사장을 압박했던 사례를 떠올리게 하는 일이었다.

감사원은 작년 8월 20일 감사를 개시했다. 그런데 석연치 않은 이유로 감사 종결을 계속 연기했다. 60일 안에 종결해야 하는데도, 시간을 질질 끌다가 지난 5월 1일에야 "중대한 위법은 없었다"라며 감사를 종결했다.

감사원이 시간을 지연하며 KBS를 압박한 것은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의 교체 시점과 맞추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이 있었다. 지난 3월 발간된 <황해문화> 제118호에 수록된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의 기고문 '윤석열 정부의 노골화하는 언론 장악 의지'에 이런 대목이 있다.
 
규정을 어기고 이례적으로 감사 종결을 미루는 것은 방송통신위원장 교체 시기를 고려하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현재 상황에서는 KBS 감사 결과 사장 교체를 요구하는 결론을 내린다 해도 정부 여당이 원하는 사장으로 교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KBS 이사 구성을 우호적으로 바꿔 정권의 뜻대로 사장을 임명하는 KBS 장악 시나리오가 성립하려면 방송통신위원장 사퇴와 교체로 방송통신위원 다수 점유가 전제되어야 한다.
 
방통위법 제12조에 따라 방통위는 KBS 이사 추천 및 감사 임명권을 갖고 있다. 그런 권한을 갖는 기관의 수장이 지난 5월 30일 면직된 직후에 대통령실이 수신료 문제로 KBS를 재차 압박하고 있다. 그러자 김의철 사장은 분리 징수제 추진을 철회할 것을 촉구하면서, 이것이 철회되면 자신은 사퇴하겠다고 8일 밝혔다. 이런 반응은 수신료 징수 문제가 KBS 압박과 연관돼 있음을 잘 보여준다.

'땡전 뉴스'에 대한 저항

1980년 11월 14일 한국신문협회 및 방송협회에 의해 결의되고 12월 1일 단행된 언론 통폐합이 초래한 결과 중 하나는 KBS의 공룡화다. 그해 12월 27일 자 <동아일보> '언론 통폐합'은 "동아방송과 동양방송 등이 KBS에 흡수 통합되고 문화방송·경향신문 주식의 65%를 KBS에서 인수했다"고 보도했다. 이 외에 서울신문사 주식의 99%, 연합통신사(YTN) 주식의 30%도 KBS로 들어갔다.

전두환 정권이 KBS를 공룡으로 바꾼 목적은 '땡전 뉴스'에서 잘 드러났다. 그 시절 텔레비전에서 저녁 9시를 알리는 '땡' 소리에 뒤이어 나온 것은 '전두환 대통령은'이라는 첫마디였다. KBS가 전두환의 사설 홍보기관으로 전락했던 것이다.

그런 보도 행태는 KBS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불러왔다. 1985년 2월 8일 자 <동아일보> 3면에 전면 보도된 것처럼, 그해 2·12 총선 때 전주시·완산구에서 당선된 신한민주당 이철승 후보는 2월 7일 완주군 유세 현장에서 "요즘 불신 풍조가 만연해 있다"라며 "여러분 요즘 KBS를 믿느냐?"라고 질문했다. 청중들이 이 발언에 대해 박수를 쳤다고 이 기사는 말한다. KBS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반영하는 장면이다.

그런 불신의 결과물이 그해 4월부터 완주군 주민들과 천주교인들이 벌인 KBS 시청료 거부 운동이다. 농정에 관한 편파 보도 때문에 이곳에서 처음 발생한 이 운동은 여성단체연합회·기독교청년협의회·NCC·민청련·민언협 등의 가세에 힘입어 이듬해 연초부터 본격 전개됐다. 1986년 2월 11일 자 <동아일보> 'TV 시청료 납부 거부 운동 펴기로'는 그날 오전에 'KBS TV 시청료 거부 기독교 범국민운동본부'가 발족된 사실을 보도했다.

이렇게 종교인들의 참여로 확산된 시청료 거부 운동은 국민의 폭발적 호응을 얻었다. "KBS-TV를 보지 않습니다", "KBS-TV의 시청료를 낼 수 없읍니다"라는 스티커들이 전국 곳곳에 나붙었다. KBS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그만큼 확산돼 있었던 것이다.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6월항쟁>은 "KBS 시청료 거부 운동은 민통련·민청련 등 재야단체나 학생들보다도 주로 종교단체·여성단체·문화단체에서 앞장서고 여기에 시민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라고 평한다. 이는 전두환 정권에 대한 저항 역량이 전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됐고 2·12 총선, <말>지 보도지침 폭로, 부천서 성고문 사건 등과 더불어 6월항쟁 성공의 밑바탕이 됐다.

국민들이 시청료를 거부하자, 전두환 정권은 여타 공과금과 병합해 고지하는 방식을 고안해냈다. 하지만 이 역시 저항에 부딪혔다. 위 책은 "전두환 정권은 시청료가 잘 걷히지 않자 조세 또는 다른 공과금에 병행해 통합 고지서를 내겠다고 했다"라며 "그러자 시청료 거부운동 단체는 일이 하나 더 늘어 통합고지서 발부 반대운동까지 벌였다"라고 기술한다. 그 같은 보수 정권의 시도가 1994년 10월 1일 결국 실현돼, 전기요금과 시청료가 합산돼 청구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시청료가 40년째 오르지 않은 것은 그런 저항의 역사와 무관치 않다. 시청료 문제가 6월항쟁의 동력을 형성했기 때문에, 이 문제를 건드리는 일은 누구라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노태우 정권이 '시청료' 대신 '수신료' 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도 악몽을 지우기 위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김의철 KBS 사장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아트홀에서 수신료 분리 징수 권고와 관련한 KBS의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때나 지금이나 목표는 같다

윤 정권은 그런 시청료를 직접 징수해 보라며 KBS를 압박하고 있다. 김의철 사장이 '차라리 내가 나가겠다'고 말한 것은 시청료 문제가 KBS에 주는 부담감을 잘 반영한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으로 이어지는 보수 정권들이 시청료 통합 징수를 추진한 것은 KBS를 지키고 자기편에 두기 위해서였다. 편파 보도로 인해 국민적 왕따를 당한 KBS를 사수해 공영방송을 장악하기 위함이었다.

윤 정권은 정반대 방식으로 그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직접 징수하라며 KBS를 압박하고 있다. 6월항쟁 당시와 달리 지금의 KBS는 보수정권 편이 아니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보수정권의 의도는 한결같다. '시청료를 대신 걷어줄 것이냐' '직접 징수해 보라고 할 것이냐'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KBS를 압박해 집권당 선전 기관으로 만들려 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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