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타그램]사진의 제의(祭儀)
지난해 작고한 사진가 고현주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매달려 작업한 사진은 제의(祭儀)였다. 오래전 고향 제주도의 비극인 4.3 사건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그의 방식으로 위로하는 일이었다. 사진가는 병을 얻어 고향인 제주도에 내려가 요양과 치료를 하면서도 사진을 놓지 못했다. 병중에서도 그가 하고 싶었던 일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먼저 떠난 이들의 지나간 삶을 살피고 위로하는 일이었다. 사진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로하는 것이라기보다 지난 시간을 그의 방식으로 기억하는 일이었다. 희생자들의 유품과 유족들을 사진으로 담았다. 그 결과로 그는 ‘기억의 목소리’라는 사진집을 냈고 전시회를 열었다.
이 작업은 이어져 세 번의 전시회와 세 권의 책으로 발표했다. 마지막 세 번째 작업(‘기억의 목소리Ⅲ, 아름다운 제의’)은 표선해수욕장, 정방폭포 등 우리에게 익숙한 장소이면서 희생자들이 학살된 자리이기도 한 곳에 희생자들의 영혼을 상징하는 등불을 밝히는 방식이었다. 희생자들의 수만큼 보자기에 싼 LED 등을 가져다 놓고 사진으로 남겼다. 그 사진들을 정갈하게 프린트하고 액자를 만들어 제주도 ‘큰바다영’ 갤러리에서 마지막 작업의 전시회를 했다. 그것으로 사진가의 고된 사진 여정이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사진가들의 전시회와 출판 소식을 부지런히 촬영하고 기록하는 일을 해왔던 사진가 곽명우는 그 사진들이 창고에 쌓여만 있게 되는 것이 아까웠다. 마당발인 그가 여기저기 갤러리 관계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던 중에 서울 류가헌 갤러리에 마침 예약이 취소되어 전시장이 비게 되었다고 했다. 갤러리에서 대관료를 절반만 받기로 했고, 곽명우는 자비로 그 절반을(그러나 적지 않은) 선뜻 부담했다. 그런데 서울 전시회를 개막하기 이틀 전, 사진가는 끝내 58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전시회 개막일은 사진가의 영결식과 겹쳤다. 많은 사진가와 지인들이 전시장에서 그를 추모하고 사진을 보며 사진가를 기렸다. 이후 지방의 갤러리들과 인연이 신기하게 이어졌다. 고현주의 사진을 아는 갤러리 운영자들이 선뜻 전시장을 내주었고, 여기에는 마당발 곽명우의 역할이 컸다. 대전(갤러리 더 빔)과 진주(갤러리 루시다), 대구(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여수(갤러리 노마드)에서 전시회를 이어서 열게 되었다. 마지막 작업이 전국을 돌며 전시된 것도 제의의 형식처럼 보였다. 사진가 곽명우와 고인의 후배와 제자, 지인들이 사진을 옮기고 설치하고 전시회를 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고현주는 피아노를 전공했다. 10여 년 전, 전자책으로 발행되는 월간지에 매월 ‘포토 뮤즈’란 코너로 글을 썼다. 사진가의 사진과 음악(주로 피아노가 들어간 클래식 곡)을 연결하고 두 가지 표현의 조화와 관계를 풀어 이야기를 들려주듯 했다. 전자책은 소리도 들려주는 기능이 있어서 사진과 그의 소리 나는 이야기는 각별한 울림을 주었다. 때로는 관객들이 사진이라는 입체적 공간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은 환상을 보게 해주었다. 음악에 대한 오랜 식견이 기억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일뿐 아니라 그 너머의 소리가 상징하고 말하는 것에 관심 두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작업 주제는 기억의 ‘목소리’였다. 사진이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의 목소리였고 제의(祭儀)였다. 제의의 첫 번째 역할은 지나간 존재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사진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을 한다. 사진이 남아서 사람들은 개별적 존재로 더 오래 기억될 것이다.
오래전 떠난 망자들에 대한 제의로써 고현주의 사진이 있다면, 이제 사진가에 대한 제의로써 그 사진들이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의 지나간 시간을 기리고 있다. 그리고 오는 6월 23일부터 제주 4.3 평화기념관에서 긴 작업의 대단원을 정리하는 전시회가 열린다.
편집자주 - 즉각적(insta~)이지 않은(un~) 사진(gram)적 이야기, 사진의 앞뒤와 세상의 관계들에 대해 천천히 생각하고 씁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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