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어린데?" 낭만농구 선언한 '노인즈'의 자신감

이준목 2023. 6. 9.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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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SK에서 의기투합 'MVP 듀오' 오세근과 김선형

[이준목 기자]

▲ '낭만 농구 보여드릴게요!' 자유계약선수(FA)로 2022~2023 시즌 KBL 프로농구 종료 뒤 서울 SK 나이츠로 이적한 오세근(오른쪽)이 8일 오후 서울 강남구 KBL센터에서 SK 나이츠 가드 김선형과 함께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학 시절 오세근과 김선형이 합을 맞춘 중앙대는 2006년 11월부터 2008년 11월까지 52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썼다. 두 선수는 각각 2011년 신인 드래프트 1, 2순위로 프로에 입성했다.
ⓒ 연합뉴스
 
"너 나이 어린 거? 언제까지 어려? 내년에도 어려?" 화제의 인기드라마 <더 글로리>의 빌런 박연진(임지연)의 어록이다. 평소 기싸움을 벌이던 후배 기상캐스터의 당돌한 도발에 '넌 나보다 젊다고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라고 받아치며 말빨로 상대를 찍어누르던 장면에서 나온 명대사다.

이번 시즌 서울 SK에서 의기투합 'MVP 듀오' 오세근과 김선형이 '노인즈'라는 도발에, 바로 박연진의 대사를 인용하여 여유롭게 받아쳤다. 6월 8일 오후 서울 강남구 KBL센터에서 오세근과 김선형의 공동 기자회견이 열렸다. 올시즌을 앞두고 FA 자격을 얻은 오세근이 친정팀 안양 KGC를 떠나 SK에 입단하며 중앙대 동기인 김선형과 10년 만에 다시 한솥밥을 먹게 됐다. 나이는 오세근이 1살 많지만, 유급해서 대학 4년을 함께 보냈다.

오세근과 김선형은 대학시절 중앙대 52연승 신화를 함께했던 주역이자, 프로농구에서도 오랫동안 KBL을 대표하는 스타로 나란히 군림해왔다. 또한 두 선수는 지난 시즌 각각 정규리그(김선형)과 챔프전 MVP(오세근)를 양분했고, 챔프전에서도 나린히 팀의 에이스로 맹활약을 펼치며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선보이기도 했다.

바로 얼마전까지 챔피언결정전에서 치열하게 경합했던 두 MVP 선수가 다음 시즌 팀메이트가 된다는 사실은, 대형 이적이 드문 KBL에서 농구팬에게 오랜만에 큰 충격을 안긴 사건이었다. 2년 연속 외국인 선수 MVP 수상자인 자밀 워니까지 포함하면 '한 팀에 전 시즌 MVP만 3명'이 공존한다는 것은 전례가 없는 역대급 라인업이다. 이미 최근 2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올랐던 SK의 전력아 오세근의 합류로 더욱 강해지면서 KBL 판도를 뒤흔들 '슈퍼팀'이 탄생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더구나 오세근이 '미래의 KGC 영구결번'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상징성이 큰 선수였기에 라이벌팀으로의 이적은 더욱 화제가 됐다. 오세근은 SK행이 확정된 이후 SNS에 글을 올려 KGC 구단의 협상제안에 실망했음을 솔직히 고백하기도 했다.

오세근은 "많은 생각을 했던 건 사실이다. KGC에서 12년 동안 이뤘던 걸 놓고 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힘들었다"는 심경을 토로하면서 "한편으로는 새로운 팀에서 도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주변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 결정했다. 그중에서 김선형이 많은 지분을 차지한게 맞다, SK가 선수단 분위기가 좋은 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김선형과 어렸을 때 좋았던 추억들을, 다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기대도 된다"고 고백했다.

김선형 역시 "FA가 된 오세근 형이 우리 팀으로 오길 굉장히 원했다. FA는 선수 입장에서 일생일대의 선택이면서도 민감한 부분이니까. 그런데 계속 사인을 안 하고 있어서 전화를 했는데 고민이 많아 보였다. 오세근이 SK와 사인하기 전까지 마음 졸이면서 기도를 올렸다"고 너스레를 떨며 재회를 반겼다.

한편으로 벌써부터 슈퍼팀이 된 SK를 향한 '견제구'도 등장하고 있다. 오세근이 합류하면서 SK의 프랜차이즈스타이자 2021-22시즌 정규리그 MVP였던 최준용은 FA가 되어 전주 KCC로 이적했다.

최준용은 지난 5월 22일 열린 KCC 입단 기자회견에서 "내가 있는 팀이 무조건 우승 후보다. 다른 팀들은 모두 조심하라"고 패기 넘치는 출사표를 던졌다. 특히 친정팀이자 다음 시즌 유력한 라이벌로 거론된 SK을 직접 겨냥하여 "내가 없는 SK는 이제 더 이상 우승 후보가 아니다. SK는 '노인즈'고, 우리는 젊음으로 밀고 가겠다"고 뼈있는 농담으로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오세근이 36세, 김선형은 35세로 둘다 농구선수로서는 어느덧 노장에 접어든 나이다. 여기에 또다른 주축 선수인 최부경도 33세, 최고참 허일영과 양우섭은 37세다. 반면 KCC로 떠난 최준용은 29세다. '노인즈'라는 표현에는 자신이 떠나고 오세근이 들어오면서 SK 선수들의 평균 연령대가 너무 높아졌다는 것을 꼬집는 짓궂은 의미가 담겨있다.

하지만 옛 팀메이트의 도발에도 김선형은 침착하고 여유롭게 응수했다. "노인즈라고 하는데 그 안에 MVP 2명(김선형-오세근)이 있다. 그게 답이라고 생각한다"고 받아치며 "나이 이야기를 하니까 <더 글로리>의 명대사가 생각난다. '언제까지 어려? 내년에도 어려?' 드라마 속 박연진으로 빙의해봤다. 5년 동안 동료로 뛰었는데 그런 저격을 하는 건 실례"라며 최준용에 뼈있는 한 방을 날렸다.

김선형이 <더 글로리>를 인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선형은 지난 3월 열린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서는 <더 글로리>의 주인공 문동은의 "나 되게 신나 얘들아"라는 대사를 인용하며 "플레이오프에서도 신나는 농구를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전한 바 있다.

이어 김선형은 "개인적으로 노인즈라는 이야기는 마음에 안 들었다. '유부즈(유부남)'라면 모를까, 난 '노인즈'에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너스레를 떨며 "플레이오프 때는 '마네킹(창원LG 이관희)'이라는 이야기도 들어봤다. 노인즈나 마네킹이나 둘 다 타격은 없다. 그런 이야기도 재미로 하는 게 프로스포츠의 묘미"라며 웃어넘겼다. 또한 최준용이 있는 KCC와의 다음 시즌 대결에서 대해서는 "붙어봐야 알 것 같다. KCC만이 아니라 KT나 LG도 잘할 것 같다. 많은 팀들이 선두 경쟁을 할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오세근은 직접적인 대응보다는 " 나이가 떠나 경기를 열심히 준비하면 좋은 성적이 나올 것이다. 그러면 그런 얘기(노인즈라는)도 들어갈 거라 생각한다"며 점잖은 모범답안을 내놓았다. 한편으로 "예전처럼 30~40분 가까이 뛰는 것은 아니다. 대표팀을 포함해 어떤 팀, 어떤 감독과도 잘 맞춰왔고 SK에서도 팀에 잘 맞출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에 그런 부분에 대한 부담은 없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두 선수는 서로에 대한 끈끈한 신뢰와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김선형은 오세근을 '농구인생의 동반자'라고 표현하며 "진짜 끈끈했던 가족이 떨어진 후 잘 성장하여 다시 만나 더 잘 살게 되는 이산가족같은 느낌"에 비유했다.

오세근 역시 "김선형은 존경받을 만한 선수다. 나이가 들어서도 게속 발전하려는 모습이 동생이지만 나뿐만 아니라 많은 농구선수들이 존경할 수 있는 선수"라고 극찬했다. 두 선수는 "13년 만에 다시 뭉친 만큼 팬들에게 '낭만 농구'가 무엇인지 보여드리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다음 시즌의 선전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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