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쿠의 오늘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풍경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기자]
바쿠의 옛 시가지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습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시가지 안에는 여전히 오래된 건물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 오래된 건물 안에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붐비는 광장을 빠져나와 구시가 언덕에 오르면 주변은 적막합니다. 문 앞에 의자를 두고 적적한 오후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만 몇 보일 뿐입니다. 길을 따라 천천히 오르막과 계단을 올랐습니다.
▲ 알로프 타워와 구시가 |
ⓒ Widerstand |
알로프 타워가 불꽃 모양으로 만들어진 것은, 당연히 '불의 나라'라는 아제르바이잔의 별명 때문입니다. 여기서 불은 바쿠에 남은 조로아스터교의 흔적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풍부한 지하자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 알로프 타워 |
ⓒ Widerstand |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오래 전부터 석유를 사용해 왔다고 하지만, 본격적인 시추가 시작된 것은 19세기 초반입니다. 19세기 중반부터는 원유 정제 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했죠. 특히 1873년 러시아가 바쿠의 석유 산업을 민간에 개방하고, 규제를 해제하면서 바쿠의 석유 산업은 급격히 성장합니다.
노벨상을 만든 알프레드 노벨의 형, 로버트 노벨 역시 바쿠의 석유 산업에 뛰어들어 큰 돈을 벌었습니다. 당시 노벨 가문의 브라노벨(Branobel) 사는 바쿠를 기반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석유회사 중 하나로 성장하기도 했죠.
▲ 바쿠 성벽 |
ⓒ Widerstand |
'나고르노-카라바흐'라는 지역은 공식적으로 아제르바이잔에 속해 있었지만, 인구는 아르메니아계가 다수였습니다. 소련이 해체되고 아제르바이잔이 독립하면서,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에 속한 아르메니아계 지역이 생겨버린 것이죠.
이 지역의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은 '아르차흐 공화국'이라는 국가를 만들고 아제르바이잔에서 독립하겠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지역의 행방을 둘러싸고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갈등했습니다. 결국 전쟁이 벌어졌죠.
▲ 헤이다르 알리예프 공항. 대통령의 이름을 따왔다. |
ⓒ Widerstand |
1993년 집권한 헤이다르 알리예프 대통령은 재선을 거쳐 2003년까지 집권했습니다. 2003년 그의 나이는 이미 80세였고, 건강 문제로 사임을 선언하죠. 하지만 독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들인 일람 알리예프(lham Aliyev)가 대통령직을 세습했습니다. 개헌을 통해 대통령직 승계 순위를 바꾸고, 아들을 총리로 임명해 대통령직을 물려준 것입니다.
▲ 바쿠 시내의 국기 |
ⓒ Widerstand |
이번에는 아제르바이잔의 승리로 전쟁이 끝났습니다. 아르메니아는 지난번 전쟁에서 차지한 영토 상당 부분을 상실했죠. 아르메니아는 서방 국가 상당수의 지지를 받았지만, 전쟁에서는 패배했습니다. 반면 독재국가로 국제사회의 제재 논의까지 오갔던 아제르바이잔은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전쟁의 승패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분명 석유와 지하자원은 중요한 변수였습니다. 자원 부국인 아제르바이잔을 서방 국가에서 쉽게 적대시할 수 없었던 것이죠. 바쿠에서 조지아를 거쳐 튀르키예 제이한(Ceyhan)으로 연결되는 석유 파이프라인은 유럽 입장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였습니다. 아르메니아가 그간 러시아나 이란과 가까운 행보를 보였던 것도 문제였죠.
반면 아제르바이잔은 튀르키예를 비롯한 우방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습니다. 튀르키예의 지원은 그 자체로 서방 세계의 개입을 주춤하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은 아랍 국가로부터 석유를 수입할 수 없어, 석유 수입의 상당 부분을 아제르바이잔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제르바이잔에 무인기를 비롯한 무기도 지원했죠.
▲ 바쿠 구시가 |
ⓒ Widerstand |
그러니 아제르바이잔은 여러 의미에서 불꽃의 나라였고, 석유의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지하자원이 만들어낸 부가, 아제르바이잔의 역사에 긍정적인 의미만을 남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아제르바이잔에 남은 '자원의 역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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