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많은 의사가 주는 약, 진짜 명약일까?
데니스 프래딘 「우리는 고통을 정복하였다」(We Have Conquered Pain) 중
고대부터 생명을 살리고자하는 외과적인 술식은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했다. 문제는 환자의 고통이었다. 마취 없이 행해지는 수술을 상상할 수 있을까? 지금은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 한 장면이 마취제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마취제가 나오기 전에는 대마, 아편, 코카나무 잎, 알코올 등을 사용했다. 환자 뿐 아니라 의사까지도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의사도 맨 정신으로는 환자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힘들었기 때문이다.
외과 의사들은 환자의 고통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빨리 수술을 해야 했다. 따라서 그 당시 흔히 잘나가는 인기 많은 외과의사는 수술을 빨리 하는 의사였다. 영국의 의사 로버트 리스톤과 제임스 심슨은 영국에서 가장 빨리 수술을 행하는 의사로 유명세를 탔다. 1~2분 만에 하지 절단 수술을 마쳤다는 기록을 세웠을 정도다. 제임스 심슨(James Y Simpson)에 의해 1847년 클로르포름(Chloroform)이 수술용 마취제로 최초 개발되었고, 이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레오폴드 왕자를 출산할 때 사용되면서 더 유명해졌다. 스코틀랜드의 가난한 빵집의 아들로 태어난 의사 심슨은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준 공로로 스코틀랜드 출신 의사로서는 처음으로 영국에서 경(Sir)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그만큼 마취제의 역사적 의미는 컸다.
이제 마취제가 없는 수술은 상상할 수 없다. 그 극심한 고통을 없애주는 고마운 마취제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치과에서는 환자들이 치과 오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마취주사로 바뀌었다. 격세지감이다.
마취제로 고통 없이 크고 작은 수술을 받아서인지 이제는 작은 통증도 잘 견디지 못하는 걸까? 물론 통증은 주관적이지만, 의사의 소견으로 보았을 때 약을 처방할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처방전을 써줘야 했던 경험은 의사들 대부분에게 있을 것이다. 아니 매일 일어나는 일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료가 민간으로 충분히 정착되기 전에 약방이 먼저 서민들의 건강을 담당했다. 아프면 의원이 아니라 약방으로 먼저 달려가 진통소염제, 마이신을 타서 먹었다. 지금은 처방전을 받기 위해 의원을 찾지만 행여 처방전을 써주지 않으면 그 의사는 욕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처방전이 필요 없다고 하면, “의사양반, 왜 이리 정이 없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러다 보니 우리나라의 의사들은 항생제, 소염진통제 처방 없이 감염증이나 염증을 다뤄본 경험이 많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실 항생제는 감염을 다루는 빠르고 확실하고 쉬운 방법이다.
의사들에게 물어보면 이 사실을 대부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처방하지 않았을 경우가 아무래도 감염의 위험성이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고, 문제가 됐을 경우 그 책임은 의사에게 돌아간다. 항생제를 처방하는 쪽이 의사 입장에서는 맘 편한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환자가 그걸 원한다. 하지만 공중보건의 측면에서, 그리고 진정한 국민건강증진을 위해서 도덕적 해이에 빠진 것은 아닌지 자성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처방전 현명하게 잘 쓰는 의사
내가 군복무 했던 시절에는 병사들에게 주는 약은 딱 한가지라고들 얘기했었다. 바로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NSAIDs)다. 감기에 걸려서 목이 아파도, 장염 때문에 열이 심해도, 상처가 나거나 타박상을 입어도 나가는 약은 바로 NSAIDs다. 항염증효과, 해열효과, 진통효과를 모두 가지고 있고, 군대에서의 약은 플라시보 효과까지 탁월하니 만병통치약으로 불릴 만하다. 이처럼 소염진통제류는 가장 많이 중복 처방되는 약물이다. 이와 함께 알레르기 치료제, 위장약도 중복이 많고, 함께 쓰면 위험한 약물도 동시에 처방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행히 이런 약의 중복 처방으로 인한 문제를 막기 위해 2010년부터 의약품 안전사용 서비스(DUR, Drug Utilization Review)제도가 운용되고 있다. 환자별 투약 정보를 바탕으로 의약품 안전성과 관련된 정보를 조제하는 컴퓨터에 실시간으로 제공해 준다.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문제는 있다. 두 가지 성분이 한 알에 들어 있는 경우, 처방일수가 지났을 때는 점검에서 거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처방 없이 환자가 예전의 약물을 혼자서 복용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처방전을 쓸 때 환자에게 여러 가지 약에 대한 정보를 직접 물어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불만이 있다. 바로 1년 치 약을 그냥 주면 안 되느냐는 것이다. 매달 처방전 받으러 가기 귀찮다는 거다. 처방전만 받으러 간다는 환자도 문제고 환자가 그런 생각을 가지게 한 병원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 병원에서는 만성질환자에게 단순 진료와 처방만이 아닌 생활습관 개선 교육과 꾸준한 건강관리를 해줘야 한다. 건강관리의 패러다임은 ‘질병치료’에서 이미 ‘예방’과 ‘건강증진’으로 전환되었다. 이에 걸맞은 처방전 발급이 뒤따라야 한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는 말은 죽은 뒤에 약 처방을 한다는 뜻이다. 때가 지난 뒤에 어리석게 애를 쓰는 경우를 말한다. ‘약방문’은 약의 이름과 분량을 적은 것으로 오늘날의 처방전이다. 약의 부작용을 줄이고 약의 효능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의사는 자신이 써주는 처방전에 대해서 정확히 인지하고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것이 작은 처방전 종이가 가지는 무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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