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총선 출마설 묻자 "국가 위해 할 역할 있나 생각 중" [박성우의 사이드바]

박성우 2023. 6. 9.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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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저 눈빛’은 없었다. 수감됐던 구치소 독방은 복도 맨 끝에 있어 유독 추웠다고 했다. 지난해 말 신년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우병우(56·사법연수원 19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국가를 위해서 내가 할 역할이 뭐가 있을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내년 총선 출마설에 대한 우회적인 답변이었다.

국정농단의 ‘방조자’로 지목돼 기소된 우 전 수석은 항소심에서 일부 사찰 등과 관련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만 인정돼 2021년 대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됐다. 복권 후 지난 2월 변호사 등록을 마쳤다. 로펌들의 영입 제안도 있었지만 개인 사무실을 냈다. 지난 5일 그를 서울 반포동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의뢰인의 발길은 뜸해 보였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5일 서울 반포동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Q : 청와대 나오신 뒤 첫 인터뷰 아닌가요.
A : 저는 인터뷰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과거에 누가 식사 한번 하자고 해서 점심 먹었는데 거기서 말한 걸 기자가 가져다 쓴 적은 있죠.

Q : 어떻게 지내시나요.
A : 조사받고 재판받고 사실상 한 6년 동안 사회활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사무실 하나 열어놓고 출퇴근하고 있습니다. 변호사 활동을 활발히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주변 분들 도와주는 정도.

Q : 세간의 관심은 내년 총선 출마에 쏠려 있습니다.
A : 출마하라는 전화도 많이 오고, 또 요즘 평소에 알던 사람들 만나도 항상 그것부터 물어보고 그럽니다. 하지만 정치를 하느냐 마느냐보다는 그래도 평생 공직에 있었으니 국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뭘까를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Q : 고향 경북 영주가 출마지로 거론되는데요.
A : 거기까지 하시죠(웃음). 영주에서도 그렇게 저한테 자꾸 ‘자백’을 받으려고 하는데, 영주 사람들한테도 거기까지만 얘기해요. 말이라는 건 한 번 해놓으면 지켜야 되는 것이지, 한번 말했다가 뒤집고, 떠보고 하는 건 제 성격과 안 맞기 때문에….

Q : 정치를 한다면 왜 하려고 하는지 궁금한데요.
A : 그건 굉장히 가정(假定)의 가정이라 답을 하기가 이상한데…

Q : 국가를 위해서 뭘 할지 생각 중이시라면서요.
A : 정치에 한정해서 한 말은 아니고요. 예전에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저한테 어떤 국회의원이 ‘박근혜 대통령 존경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박 전 대통령 존경하는 이유는 국가와 국민에 대한 진정성 때문”이라고 답변 드린 것으로 기억해요.
우 전 수석은 청와대 근무 당시 박 전 대통령이 밤 11시, 이른 아침, 주말 가릴 것 없이 자신이 올린 보고서를 보고 수시로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한 사람이 국가에 대해서 저렇게까지 헌신적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게 우 전 수석의 기억이다. 정치를 하건, 다른 방식으로 국가에 봉사하건, ‘진정성’이 키워드라는 얘기로 들렸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5일 서울 반포동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Q : 돌이켜보면 이런 점은 그래도 잘했고, 이런 점은 좀 더 잘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드나요.
A : 개인적으로 잘했냐 못했냐 하는 것보다 국정농단 사태라는 게 결국 대통령을 탄핵하고 주변 사람들을 형사 처벌한 것이잖아요. 한마디로 정리하면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 둘 다죠. 그 사건 자체는 끝났지만 그 여파는 현재진행형이죠.
비교적 단답형이던 우 전 수석의 대답이 이 대목에서 갑자기 길어졌다. 목소리도 커졌다.

A : 그때 제일 많이 적용한 혐의가 ‘직권남용’이잖아요. 사법부에까지 적용됐는데, 그 전엔 직권남용죄 처벌례가 거의 없었어요. 예컨대 오늘 내가 한 이러이러한 행위를 정권이 바뀌거나 상당 시간이 지난 다음에 ‘야, 그때 그게 부당한 거야’ 이렇게 판단하는 일이 생긴 겁니다. 검사나 판사가 몇 년 뒤에 내가 한 일이 ‘부당하다’고 하면 범죄자가 되는 거죠. 어떤 공무원이 과감한 결정을 할 수 있겠어요. 지금 그 부작용으로 인해서 우리 헌법이 상정하는 행정부의 기능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고 있다는 부분에 대해 한 번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고 풀어야 하는 게 국가적 숙제라고 생각해요.

Q : 박근혜 전 대통령과는 최근에 소통한 적이 있나요.
A : 지금 (경북) 달성에 계시잖아요. ‘아직은 건강이 안 좋고 건강이 회복되면 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분들 만나겠다’ 그런 전언이 있었죠. 꼭 제가 만나고 안 만나고 떠나서 대통령께서 빨리 건강을 회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Q : ‘검찰 공화국’이라고들 합니다.
A : 진짜 그런가요. 검사들이, 검사 출신들이 얼마나 많은 자리를 하고 있나요 지금? 운동권이면 운동권이 많이 하고, 군사 정권 땐 군인들이 많이 하고 그랬잖아요. 저는 공직자는 그렇게 사람을 출신으로 딱 규정을 해버리고 ‘너는 어디 출신’이라고 낙인 찍으면 안 된다고 봐요. 저는 인사 검증을 해봤잖아요. 사람이 같은 출신이면 다 똑같나요? 물론 자꾸 이렇게 검찰이 언급되는 건 검찰의 존재 이유나 목적에 비춰봐서 지금 검찰에 좋은 일은 아닙니다. 그게 절대적으로 잘 됐다 잘못됐다 할 일은 아니고 공직자로서 어떻게 일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지 않겠어요.
경북 영주고를 졸업한 우 전 수석은 같은 경북이라도 경북고 등 이른바 ‘TK 주류’에 대해 소외감을 가져왔다. 한 검찰 선배는 그런 우 전 수석에게 “차라리 강원도 출신이라고 해라”라고 조언해 줄 정도였다. 이처럼 우 전 수석은 ‘출신’을 따지는 것에 민감한 편이다.

Q : 검찰 출두 때 포토라인에서 ‘레이저 눈빛’을 쏴서 화제가 됐어요.
A : 언론에서 그렇게 만든 건데… 좀 그렇지 않아요? 사람 눈빛을 가지고 ‘네 눈빛은 좀 기분 나쁜 눈빛’이라니. 검사할 때 저녁에 싸운 사람들 공소장 쓰다 보면 경찰에서 ‘상대방이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는 이유로’ 이렇게 올라와요. 그게 저 사람 눈빛은 기분 나쁜 눈빛이고, 이 사람 눈빛은 선한 눈빛이라고 따로 규정이 돼 있나요. 돈을 받아먹었다든지, 누구를 어떻게 했다든지 그런 게 없이 ‘레이저 눈빛 쏘니까 나쁜 놈이다’ 그런 걸로 공격하고… 그때는 그게 하나의 정치적인 프레임이었다고 생각해요.

Q : ‘우병우 사단’은 여전히 연락하고 지내시나요.
A : 그것도 언론에서 만든 용어잖아요. 나조차도 우병우 사단이 누군지 몰라요. 어떤 후배가 ‘저도 이번에 우병우 사단이라고 지목당해서 불이익 받았습니다’ 그러면 ‘아, 니도 우병우 사단이구나’ 이렇게 아는 거지. 일반 형사부도 그렇지만 특수부에서 일 같이 오래 하면 고생을 많이 하잖아요. 정이 드는 거죠.
384일 동안 구치소에 있으면서 스피커에서 자주 나오는 트로트곡 ‘안동역에서’를 듣고 흥얼대며 마음을 달랬다고 한다. 그의 관심은 탄핵과 처벌에 대한 ‘복수’보단 사회가 안게 된 상처의 ‘치유’에 쏠려 있었다. 한국 사회 당면 과제를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사회 분열”이라고 말했다. “어떤 사안이든 가부(可否)가 아니라 네 편, 내 편이 문제가 되고 있지 않느냐”면서 “탄핵의 상처 극복과도 관련있는 문제다. 민주주의 시스템, 국회가 제 역할을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공직시절 가장 보람 있었던 일로는 2006년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장 재직 당시 시각장애인이 사법시험을 점자 대신 음성형 컴퓨터로 치를 수 있도록 바꾸고, 시험시간을 최대 두 배로 늘린 일을 꼽았다. “서울맹학교를 직접 방문해 찾아낸 해법”이라고 설명했다.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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