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2023년의 새로운 미술 작가들
분야와 직업군이 다양해져
시장 변화 담을 안목 필요해
2023 ‘브리즈 아트페어’를 위한 작가 선정이 끝났다. 브리즈는 신진 작가들에게 미술계의 등용문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먼저 지원자의 포트폴리오를 살피고, 2차로 궁금한 예술가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다. 매년 지원자가 늘어나 심사에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즐겁고 설렌다. 하지만 최종 리스트를 결정하는 마지막 며칠 동안의 고심은 고통에 가깝다. 미래의 고흐와 피카소를 놓치는 것은 아닐까, 진지한 예술가에게 좌절을 주는 것은 아닐까. 10번째 아트페어를 준비하고 있지만 올해는 특히 지원자들에게서 전과 다른 양상과 에너지의 파동이 느껴졌다.
우선 지원자 수가 늘고 있다. 60명을 선발할 예정인데 680명의 지원자가 있었다.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자 (다시) 붓을 든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최근에 미술시장이 활기를 띠자 더 많은 사람이 작업을 (다시) 시작하고 있다. 좌절하며 미술계를 떠났던 능력자들이 돌아오기도 한다. 작품이 팔리는구나, 미술을 해도 먹고살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은 많은 미대생과 지망생에게 창작의 불씨가 된다. 시장이 있으면 좋은 작품들이 나오게 된다.
분야가 다양해졌다. 아니, 경계가 없어지고 있다는 게 더 적당한 표현일 것 같다. 보통 ‘시각예술분야’라는 느슨한 테두리를 정해놓으면 회화, 판화, 조각, 사진, 영상 정도로 분류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가 접수됐다. 그런데 최근엔 디지털 드로잉, 디지털 드로잉에 손작업을 더한 형태, 섬유미술, 공예, 민화, 디자인, 타이포그래피, 웹툰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는 작가들이 아트페어의 문을 두드린다. ‘순수 예술’ 이라는 단어는 순진하게 느껴진다.
지원자들은 대부분 또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 전에는 작가들이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 입시미술 강사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임시로 취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는 정규직 의사, 교수, 교사, 승무원, 직장인, 사업가, 연예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작가로 활동하길 원한다. 굳이 일을 그만두거나 미술 학교에 다시 입학하지 않고도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해 필요한 것들을 익힐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전업 작가’라는 단어는 올드하게 느껴진다.
해외에서 지원하는 작가들도 늘고 있다. 해외에 있는 한국인뿐 아니라 한국에 거주 중인 외국인 지원자도, 러시아 현지에 사는 러시아 작가도 있었다. 그들과는 줌(zoom)을 통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보통 유학생은 학업을 마치고 돌아와 지원하는 편이었는데 이젠 해외에서 학교를 다니는 중에도 지원한다. 선정되면 기꺼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한국에 다녀가겠다는 것이다. 해외에 있으면서 오히려 K팝과 한국 문화의 위상이 높아지는 걸 실감하고 한국 미술시장에 기대감을 가진다.
작가들 스스로 원소스멀티유즈 방식을 추구하는 것도 특징이다. 그림책 작업을 하는 작가의 경우 북 페어에서는 책의 형태로, 일러스트레이션 페어에서는 엽서나 굿즈 등 프린트된 형태로, 아트페어에서는 원화 작품을 판매하고자 한다. NFT 방식으로 제작한 작품을 출력해 오프라인에서 판매하고 싶다거나, 먼저 디지털로 그려서 보여준 후 관람객이 구입 의사를 밝히면 물감을 사용해 회화작품을 제작하겠다는 지원자도 있었다. 가구나 도자 페어에 참가한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싶다며 아트페어에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젊은 작가들은 셀프 브랜딩과 자기 작업의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일에 적극적이다.
미술계의 생산자인 예술가들을 직접 만나면서 알게 되는 시장의 변화이자 현실이다. 브리즈는 나이, 경력, 학력 제한이 없기 때문에 그들을 더욱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 확실히 한국 문화와 미술시장은 전과 다른 관심과 변주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그 힘을 양분 삼아 경계 없이 확장되는 예술의 개념, 다양한 예술가와 새로운 형식의 작품들을 담을 안목과 그릇이 필요하다.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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