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조병석 (9) 난생처음 잡아 본 기타 코드… 음악의 묘한 매력에 ‘풍덩’

최경식 입력 2023. 6. 9.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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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반이자 중학 시절의 꽃망울인 3학년이 됐다.

고교 진학을 위해선 연합고사를 치러야 했고, 200점 만점 중 통상 140점 이상을 맞아야 괜찮은 수준의 고등학교에 입학이 가능했던 때였다.

연합고사를 준비하는 중3의 '발전적인 콜라보'였다고 지금은 생각하지만 공책에 그려준 기타 코드를 난생 처음 손가락으로 잡아 보고 그림의 모양을 외우다보니 나도 어느새 음악이라는 깊고 따뜻한 바다에 슬그머니 빠지는 것 같은 묘한 매력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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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보다 기타연주에 빠져버린 짝꿍
미래위해 공부도 같이하라 설득하다
서로 기타와 공부 가르쳐주기로 합의
그룹 여행스케치의 리더 조병석씨가 기타를 만들 때 사용한 사과나무 상자.


졸업반이자 중학 시절의 꽃망울인 3학년이 됐다. 고교 진학을 위해선 연합고사를 치러야 했고, 200점 만점 중 통상 140점 이상을 맞아야 괜찮은 수준의 고등학교에 입학이 가능했던 때였다.

면학 분위기상 야간 자율학습 시간까지 남아서 하는 공부는 필수였고, 매점 이용이나 외출 승낙까지도 너무 딱딱했던 때라 대부분 점심 저녁 두 끼의 도시락을 지참하고 등교했다.

그 시절 나는 성적이 늘 하위권을 맴돌았다. 그리로 내 옆자리엔 공부를 게을리하는 짝꿍도 있었다. 짝꿍은 교과서나 참고서 대신 항상 노래책을 펼쳐놓고 기타를 치는 주법과 코드 누르는 흉내를 냈다. 나는 짝을 볼 때마다 “친구야, 너 시험공부는 안 할 거니?”라며 늘 잔소리를 했다. 그때마다 짝꿍은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며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응수했다.

연합고사 시험일은 점점 다가왔지만 공부에 무관심한 짝을 보며 나는 물었다. “그게 그렇게도 좋으니?” 짝은 “너도 음악의 세계에 한 번 풍덩 빠져 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인생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나는 또 물었다. “네가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쉬지도 않고 연습을 하고 있는 그 기타라는 악기를 치는 게 그렇게도 중요한 거니?”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고 해도 고등학교 진학을 해야 더 자유롭게 그 일을 할 수 있는 거라. 나는 짝을 열심히 설득했다. 결국 마무리 된 합의점. 짝은 기타 레슨을, 나는 공부 지도를. 서로가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시스템을 가동하게 된 셈이다.

연합고사를 준비하는 중3의 ‘발전적인 콜라보’였다고 지금은 생각하지만 공책에 그려준 기타 코드를 난생 처음 손가락으로 잡아 보고 그림의 모양을 외우다보니 나도 어느새 음악이라는 깊고 따뜻한 바다에 슬그머니 빠지는 것 같은 묘한 매력을 느꼈다.

단 현실적인 걸림돌이 됐던 건 가정 형편상 나에겐 통기타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도 기타 코드는 그림으로 인식 돼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외웠고 숙지했다. 짝은 놀랄 만큼 일취월장하고 있다며 부러워했다.

수업 시간이든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든 나는 짝의 시험공부에 진심으로 조언과 협력을 했고 짝은 기타 선생님이 돼 나를 신비로운 음악의 세계로 안내해주는 열정을 보였다.

합력해 선을 이뤄 영광을 돌린다는 성경의 말씀처럼, 몇 달이 지난 후 작은 열매로 돌아 온 것이 있었다. 연합고사를 잘 봐서 원했던 인문계 고교에 합격한 짝. 사과나무 상자로 연습용 통기타를 직접 만들어 짝보다도 앞선 기타연주를 선보이는 나.

사과나무 상자를 시장에서 얻어 와 분해를 하고, 톱질을 하고 못질을 하고 색칠을 하고 굵은 실과 가는 실을 잘 엮어 기타 6줄로 만들어 장착한 통기타. 제대로 튜닝 조율이 된 악기가 아닌 무늬만 기타였겠지만, 밥 먹을 때나 잠 잘 때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늘 곁에 뒀다.

그때 그 ‘사과나무 상자 벙어리 기타’의 작은 울림은 오늘도 감사와 은혜가 돼 온 세상을 따뜻하게 연주하고 있다.

정리=최경식 기자 ks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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