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애의 시시각각] 음모론은 늘 있었다, 그러나
“천안함, 북한 만행이죠?” “이게 북한의 소행인지, 누구의 소행인지 말씀 좀 해 달라.”
두 질문 사이엔 3년의 세월이 있다. 전자는 며칠 전 최원일 전 천안함장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던진 질문이다. 후자는 2020년 천안함 폭침으로 사망한 고(故) 민평기 상사의 모친 윤청자 여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 호소다.
민주당은 공식적으로 천안함의 폭침을 부인하지 않는다. 문 전 대통령도 사건 직후엔 의구심을 피력했으나 2015년 군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천안함 피격이 북한 소행”이라고 말했고, 그 이후 딴소리한 적이 없다. 대통령 신분으로 “북한 소행”이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대개 “정부의 입장엔 변화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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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함 음모설서 드러난 새 양상
증거·설명 없이 말만으로 주장
주변부 인물 아닌 당 중심서 제기
」
그런데도 스멀스멀 민주당 진영에서 나오는 발언 때문에 민주당의 진의를 의심하게 한다. 최근엔 이재명 대표가 혁신위원장으로 “천안함 자폭”을 주장하는 이를 앉혔고, 수석대변인이 최 전 함장을 향해 “부하들 다 죽이고 어이가 없다”고 험구했다. 몇 년 전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천안함 폭침을 “서해상에 있었던 여러 불미스러운 남북 간 충돌들” 중 하나로 얘기했었다. 부대변인 출신이 “부하들을 다 수장시켰다”고도 했다.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가 천안함 사건을 재조사하려고 했다.
민주당을 휘감고 떨어지지 않고 있는, ‘천안함 음모론’의 일면이다. 사건 발생으로부터 13년이 지났고, 그사이 집권해 스스로 기록을 들여다볼 기회를 가졌는데도 좀처럼 약해지지 않았다.
민주당만 음모론에 빠진 건 아니다. 국민의힘도 5·18 광주민주화운동만 나오면 정신을 못 차리곤 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당 지도부도 5·18정신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 일각에선 폄훼성 발언이 나오고 있다. 4년 전인가, 소속 의원들이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 “5·18 유공자 괴물집단” 등이라고 한 게 대표적이다. 한때 민주당 외곽에서 선거 개표 부정을 주장하더니 4년 후엔 국민의힘(엄밀하겐 전신인 미래통합당)에서 대대적으로 부정선거 주장으로 키운 것도 한 예다.
사실 음모론은 너나없다. 늘 있었다. 인간 본성 때문이다. 우린 믿을 만해서 믿는 게 아니라 마음이 편해지니까 믿곤 한다. 들으면 기분 좋은 정보를 찾아서 믿고, 기분 나쁜 정보는 피한다. 이미 일어난 결과에 설명을 짜맞추고, 반증을 만나도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 신념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면서 더 확신하고 집단의 가치와 입장에 반하는 정보엔 저항한다. 진영 사고까지 더해져 음모론의 비옥한 토양이 되곤 한다.
최근 음모론은 그러나 몇 가지 점에서 독특하다. 과거엔 증거와 설명에 바탕을 두기라도 했다. 김대업은 병역 서류라도 들고 나왔다. 이젠 그저 말이 곧 증거요 설명인 양한다. 정치학자 러셀 뮤어헤드와 낸시 로젠블럼은 이렇게 말한다.
“증거를 깐깐하게 요구하지 않고, 증거를 열심히 축적하지도 않으며, 근거들 사이에 어떤 패턴도 없고, 은밀히 음모를 꾸미는 자들에 대한 엄밀한 검토도 없다. 새 음모론은 설명의 부담을 없애버린다. 대신 빈정거리거나 말장난을 한다. ‘사람들이 그러는데…’ 아니면 덮어놓고 주장한다. ‘조작이다!’… 이쯤 되면 이론 없는 음모론이라 할 만하다.”(‘스켑틱’)
차이는 또 있다. 과거엔 음모론자들이 찌질한 주변부의 인물로 받아들여졌다.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라면 속이야 어떻든 마이크 앞에서 떠벌리진 않았다. 이젠 당 대표 출신이나 대변인, 혁신위원장이 될법한 인물이 음모론자다. 자신의 주장이 틀린 것으로 드러나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나마 국민의힘은 징계라도 할 때가 있지, 민주당은 손을 놓고 있다.
앞으로 달라질까. 쉽지 않을 것이다. 반대편이 아무리 시시비비를 가린들 생각이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음모론의 새 세상이다.
고정애 Chief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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