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태평양 도서국은 ‘저비용·고효율’ 외교 무대
‘2023 한·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가 지난달 29~30일 서울에서 열렸다. 이번 회의는 중국을 직접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미국 주도의 역내 질서 강화를 지원하겠다는 한국의 공약에 따른 것이다. 한국은 회의에 참여한 17개 태평양 도서국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통해 원조국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될 것이다.
■
「 한국 주도 정상회의 개최 성공
‘원조국 한국’의 위상 인정받아
안보·외교·경제적 반대급부 커
」
태평양 도서국에 대한 한국의 관심은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외교 정책의 방향과 일치한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에 비해 눈에 띄게 미국의 정책과 일치된 행보를 보이고자 한다. 한국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 문서에는 ‘기후변화를 포함해 보건의료·해양수산·재생에너지 문제 등 태평양 도서국의 실질적 수요에 기반을 둔 협력을 확대할 것’이라고 적혀 있다. 한국은 태평양도서국포럼(PIF)이 내놓은 장기 발전 전략인 ‘2050 푸른 태평양 대륙 전략’과 미국·일본·영국·호주·뉴질랜드가 지난해 6월 함께 출범시킨 ‘푸른 태평양 동반자(PBP)’ 경제안보 협력체와도 협력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국은 PBP에 가입을 고려 중이다.
태평양 도서국은 군사적 가치가 상당하다. 영토는 작아도 대륙 정도 크기의 태평양 수역에서 주권적 권리를 행사한다. 친미 성향의 태평양 도서국 인근 수역은 괌·하와이 등 미국의 주요 방위 거점과 중국 사이에 자리해 미·중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미국은 팔라우에 초지평선 레이더 시설을 건설 중이고, 마셜제도에 속한 콰잘레인 환초에는 주요 탄도미사일 방위 시험장을 운영 중이다. 태평양 도서국은 지금 역내 해상 강자로 부상하려는 중국의 열망에 맞서는 장벽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태평양 역내 군사 기지를 확보하면 이 지역의 무력 투사와 감시를 통해 얻는 이점은 미국이 아닌 중국이 챙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중국은 미국의 동맹인 호주를 고립시키고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향유해 온 전략적 지위를 태평양 서쪽은 물론이고 남쪽에서부터 위협할 수 있다.
윤 정부 외교 정책의 또 다른 국정 과제는 한국을 ‘글로벌 중추 국가’로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 상당한 경제 규모와 굳건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더 큰 리더십을 발휘할 잠재력이 있다. 한국은 태평양 도서국과의 협력을 강화해 중국과의 마찰을 피하면서 미국의 인·태 전략 목표를 지지할 수 있기에 한·미 동맹을 강화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한·중 협력에 대한 미국의 이해를 구할 수 있다. 한국은 태평양 도서국과의 관계를 증진함으로써 미국·일본·인도·호주가 참여한 협의체인 쿼드(QUAD)의 정식 가입국이 되지 않고도 미국·호주와 협력할 수도 있다.
한국은 태평양 도서국과의 협력 강화로 국제정치적 이익도 기대할 수 있다. 국가 규모는 작아도 유엔 총회 표결에서 큰 힘을 행사한다. 그뿐만 아니라 기후변화로 인한 실존적 위협에 직면한 개발도상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점점 더 많은 관심과 공감을 얻고 있다. 2030 세계 엑스포의 부산 유치를 꿈꾸는 한국 정부는 이들 정부의 지지를 구하고 있다. 한국은 새롭게 등장한 원조국이기에 서방 국가와 달리 식민주의 유산이나 신식민주의적 태도 등 역사적 부담이 없다. 중국과 달리 한국은 서방 국가의 경쟁국이 아닌 파트너로 환영받는 존재다. 서방 세계는 태평양에서 자신들의 활동과 목표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 원칙에 대한 한국의 약속과 헌신을 의심하지 않는다. 한국은 자유주의 질서를 유지하고 확장하려는 공동의 대의를 위해 추가적인 자원을 제공할 수 있는 나라다.
이렇듯 한국 입장에서 태평양 도서 지역에 대한 지원 확대는 미국이 지탱하는 자유주의적 지역 질서를 지원하고 국제사회에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지와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저비용 고효율’ 전략이다. 이제는 한국이 태평양 지역에 얼마나 많은 자원을 할애하며 윤 대통령의 임기 이후에도 이러한 지원이 지속할지가 쟁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태평양 도서국에 집중하는 만큼 태평양 지역은 한국의 수혜를 입고 반대급부로 한국은 미국의 호의와 국제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다. 한국은 이 모든 걸 중국이 불평할 이유를 주지 않으면서 이룰 수 있다고 본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데니 로이 미국 하와이대 동서문화센터 선임연구위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출가 뒤 '둘째' 가졌다?…도연스님 "유전자 검사, 前부인이 거절" | 중앙일보
- 부인 펑리위안까지 활용한다, 시진핑의 지독한 현실주의 | 중앙일보
- [단독] 100억 부르자 "올려달라"…軍 복지예산 2100억 챙긴 尹 | 중앙일보
- 한중일 여성 다 찍혔다…"성폭행 특훈" 자랑한 '치 아저씨' 정체 | 중앙일보
- 에프엑스 출신 엠버, 전 남친 폭로 "가스라이팅 당해 파산할 뻔" | 중앙일보
- 영화 '철도원' 그 여배우 또 불륜스캔들…"유부남 셰프와 호텔 투숙" | 중앙일보
- 이선희, 횡령 의혹 또 터졌다…"회삿돈 1000만원 집 인테리어" | 중앙일보
- "포커로 20억 벌었다"던 홍진호, 포커 월드컵서 또 2.7억 상금 | 중앙일보
- "버스가 떼어놓고 갔어유"…노부부 손짓에 고속도로 추격전 | 중앙일보
- 우병우, 총선 출마설 묻자 "국가 위해 할 역할 있나 생각 중" [박성우의 사이드바]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