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피해 지원기관 신설, 그 안에 빠진 것 [김성탁의 시선]
정부·여당이 학교폭력 피해자의 치유·회복을 전문적으로 지원할 국가 차원의 기관을 만들겠다고 지난 1일 발표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국민의힘 교육위 소속 의원들은 당정 협의를 거쳐 피해 학생의 치유 회복에 관한 연구와 프로그램 보급, 교육·연수, 치유·지원을 할 수 있는 기관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4월 발표한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의 후속 조치다. 국가가 전문 기관을 만들어 피해자를 돕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필요한 내용이 빠져있다. 종합대책이 학교 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 대책의 핵심은 ‘학교폭력에는 반드시 불이익이 따른다’는 인식을 확립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엄벌주의다. 이를 위해 가해 학생 학생부의 학교폭력 조치 기록(출석정지, 학급교체, 전학)을 현행 2년 보존에서 졸업 후 최대 4년으로 늘렸다. 또 대학 입시에 반영토록 했다. 초등학생 대상 학원에까지 ‘의대 준비반’이 생길 정도로 대입에 관심이 많으니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학교 현장의 학교폭력 대처 양상이 어떤지를 고려하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정부의 대책 발표는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이 학교폭력 가해자였지만 서울대에 진학했고, 피해자는 고통을 겪은 사건이 계기였다. 가해자 측은 각급 학교폭력대책위원회(학폭위)의 결정에 대해 가처분과 집행정지 신청, 재심 신청, 전학 결정 취소 소송 등 법률적 대응을 하며 시간을 벌었다. 대입은 정시 전형이라 학교폭력 여부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게 서울대 측 설명이었다. 정부는 이를 고려해 대입 정시까지 가해 여부를 반영토록 했고, 2026학년도부터 의무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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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는 이미 변호사 간 대리전
대입 반영 의무화로 계속 늘듯
형편 어려운 학생 도울 방안은?
」
문제는 학교 현장에서 소송전이 빈번하다는 점이다. 경미한 학교폭력의 경우 가해 학생과 부모가 피해자 측에 반성과 사과하는 선에서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이런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학교 관계자들의 얘기는 다르다. 한 중학교 교장은 “요즘은 학교에서 학교폭력 여부를 조사하는 단계에서부터 변호사들이 나타난다”고 전했다. 가해자 측이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하는 경우가 늘면서 피해자 측도 변호사를 찾는다.
학교폭력이 발생해도 학교가 알아서 피해·가해 여부를 가려주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교사들은 “피해 정도가 매우 심해 명확한 경우가 차라리 쉽지 오히려 경미한 학교폭력은 다루기가 더 어렵다”고 말한다. 아이들 사이 갈등이 교육적으로 중재 되지 못하면서 변호사를 동원한 부모 간 대리전이 진행된다. 변호사들이 학폭위나 각종 가처분, 소송 등의 단계별 대응을 이끈다.
서울 한 초등학교 교사는 "요즘은 저학년 사이에 발생한 일도 변호사를 선임하기 때문에 교사들은 한쪽 편을 든다는 오해를 피하려고 기계적인 대응을 한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대입에 필수로 반영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있다. 가해자로 확정되면 불이익을 받으니 더 기를 쓰고 변호사를 찾을 가능성이 크다.
학교폭력 사건은 변호사 업계가 광고까지 하는 시장으로 떠올랐다. 수임 비용은 편차가 있지만, 행정심판이나 형사소송 대리의 경우 수백만 원 단위이고 단계가 길어지면 1000만원을 훌쩍 넘기도 한다. 학폭위로 가는 순간 법정 다툼까지 예고하는 사건이 되는 셈이다. 정부 대책을 두고 학교폭력 관련 법률 시장만 키워주는 ‘외주화 대책’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여건에선 부모의 경제적 형편이 영향을 미칠 것인 만큼 일정 소득 이하 등 형편이 어려운 피해자 측의 법적 대리를 지원해줄 대책이 필요하다. 정부가 만들겠다는 지원 기관에 이런 기능이 포함돼야 한다. 정부는 종합대책 발표 당시 국선 대리인 선임과 법무부 마을변호사 제도로 지원하겠다는 정도만 담았는데, 누구에게 어떻게 도움을 받으라는 건지 알 수 없다.
일선 교육청 등에 법률 전문가가 포함된 지원팀을 배치해 피해 학생을 도울 구체적인 대안이 나와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피해 학생과 가족은 치유할 겨를도 없이 경제적 부담을 지며 장기간 법적 다툼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소수 변호사를 자문역으로 기관에 배치하는 정도로는 쏟아지는 학교폭력 피해자 지원에 한계가 따를 것이다. 변호사 업계의 수입과 관련된 일이라 자원봉사 등으로 소화하기도 쉽지 않다.
정부는 법률 전문가 지원 방법과 관련 예산 확보 등을 서둘러 검토해 추가 발표하겠다는 국가기관 설치 계획에 반영해야 한다. 정부가 천명한 엄벌주의는 정순신 변호사 아들 사건으로 달아오른 여론을 식혔을지 모르지만, 더 복잡한 과제를 던져 놓았다.
김성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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