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민방공 경보 시스템, 미사일 대응 체제로 바꿔야 [장세정의 직격인터뷰]

장세정 2023. 6. 9.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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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대비 및 위기관리 전문가 최계명 동국대 겸임교수


장세정 논설위원
크고 작은 북한의 도발이 우려되지만, 대한민국의 비상 대비 태세는 뭔가 불안하다. 비상 상황이 생기면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한다. 정부도, 군도, 국민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달 31일 이른 아침 서울시민들은 사이렌과 경계경보 문자 때문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비상대비 전문가'인 최계명 동국대 겸임교수가 지난 7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의 민방공 대피소를 점검하고 있다. 전국 지하철역과 아파트-빌딩 지하 주차장 등 1만7000여곳에 민방위 대피소가 마련돼 있다. 최 교수는 북한의 핵미사일 등 각종 도발에 대비해 지하철 입구에 '방폭 문' 설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진영 기자

「 적 항공기 대응 현행 경보론 한계
정부도 국민도 돌발 상황에 당황
훈련 잘한 일본은 침착하게 대처
2008년 폐지 비상기획위 살리고
'북핵 대비 국민안전법' 제정해야

반면 백령도 주민은 같은 날 사이렌이 울려도 침착하게 움직였고, 일본은 정부도 국민도 일사불란하게 대처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위협이 잦은 상황인데 왜 이렇게 돌발 상황 때마다 허둥대는 것일까. 한국과 일본은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국가 비상사태 및 위기관리 전문가인 최계명(66) 동국대 비상안전학과 겸임교수를 인터뷰했다. 육군사관학교(36기)를 졸업한 그는 대령으로 예편한 뒤 청와대 국가비상기획위원장 비서실장, 국민안전처와 행정안전부 비상대비정책국장 등을 역임했다.

안보 현실에 경각심 깨우친 계기
-전문가의 눈에 비친 5월 31일 경계경보 소동은 어땠나.

"북한 공군 조종사 이웅평 대위가 미그-19기를 몰고 귀순한 1983년 2월 25일 서울 전역에 실제 경계경보가 울린 지 40년 만에 실제 상황을 알리는 경보가 발령됐다. 이번에 몇 가지 문제가 드러났지만, 역설적으로 차라리 잘됐다는 시각도 있다. 안보 불감증에 걸린 정부와 국민에게 잠깐이라도 '비상사태가 무엇인지', '전쟁이 나면 어떻게 될까'라고 생각하게 했다. 무엇보다 안이했던 정부 부처들에 경종을 울렸고,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무관심했던 국민이 경각심을 갖게 했다."

북한이 지난 5월 31일 오전 6시 29분 평안북도 동창리에서 '우주 발사체'(정찰위성)를 발사했다. 이날 오전 서울시가 재난문자를 발송하자 행정안전부는 "서울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이라고 정정했다. 이 때문에 행안부와 서울시가 엇박자를 보였다는 지적을 받았다. [연합뉴스]

-이번에 드러난 가장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는.
"담당 공무원들의 전문성과 훈련 부족으로 발생한 일이다. 행안부의 일개 국(局)으로 편제된 비상 대비 및 민방위 조직은 부여된 과업의 중요성에 비해 부서 통제 능력 미흡, 담당자들의 전문성 부족, 소외 부서의 사기 저하 등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더 근본적으로 따져보면 지난 정부 5년 동안 유화적 대북 정책으로 국민이 참여하는 전국 단위 민방위 훈련을 하지 않았던 것이 원인을 제공했다."
-재난문자에 경보 발령 원인도, 어디로 대피하라는 핵심 메시지도 빠졌다.
"서울시가 발송한 재난문자로는 항공기에 의한 공습인지, 포탄이나 미사일 공격인지, 지진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공습이면 지하로 대피해야 하고, 지진이나 화생방 공격이면 학교 운동장 같은 넓은 공간으로 대피해야 한다. 발령 원인과 대피 장소를 알려주지 않으니 국민이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경보 담당 공무원들은 육하원칙에 따라 문자 데이터 용량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발령 원인과 대피 장소 등 핵심 정보를 작성해 발송하는 훈련을 주기적으로 해야 한다. 이번 혼란을 보면 훈련과 전문성 부족이 실수를 유발한 것 같다."

'양치기 소년' 취급당할까 걱정
-행안부와 서울시가 엇박자를 냈고 책임 공방도 했다.
"행안부가 자체 경보를 하라고 지자체에 보낸 문자에서 '경보 미수신 지역'이란 백령도와 연평도에서 사이렌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외딴 마을이나 독립가옥을 의미했다. 그런데 서울시 공무원들이 잘못 알아듣고 자체 판단에 따라 경계경보를 발령했다고 한다. 행안부와 서울시가 평소 원활하게 소통하면서 다양한 상황을 부여한 훈련을 제대로 했다면 이런 착각과 오해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행안부는 '오발령'이라 주장하고, 서울시는 과잉 대응을 인정하면서도 오발령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책임 회피 행태가 보기 민망했다."

역대 공습경보와 경계경보 주요 발령 사례 [연합뉴스 그래픽]

-지난해 11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때 울릉도 군청은 공습경보조차 인식 못 해 37분 뒤에야 대피 방송을 내보냈다.
"정말 창피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망신을 당하고도 정부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에 이번에 또다시 우왕좌왕했다. 만약 실제 도발 상황에서 많은 국민이 목숨을 잃었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국가비상사태 상황에서 정부의 미숙한 대응이 반복되면 국민 신뢰가 추락해 '양치기 소년' 취급당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백령도 주민들과 일본의 침착하고 체계적인 대응이 돋보였다.
"최전방 접적 지역 주민들은 경계경보가 울렸지만 당황하지 않고 평소 하던 대로 동요 없이 잘 대처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보다 빨리 경보를 발령했고 국민은 신속하게 대피소로 이동했다. 평소 훈련을 얼마나 철저히 했고, 훈련이 몸에 익숙해졌느냐가 이런 차이를 만들었다."
-5월 16일 민방위 훈련을 공공 부문만 했는데.
"당초 윤석열 대통령 지시로 전 국민이 참여하는 전국 단위 민방위 훈련을 5년 만에 재개한다고 정부가 홍보했는데 불과 일주일 전쯤 갑자기 공공 부문으로 축소했다.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지만, 국민 불편 등 여론을 의식해 누군가 잘못된 메시지를 전한 것 같다. 국민 참여 없이 공무원들끼리 시늉만 내는 훈련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전 국민 참여 훈련을 예정대로 실시해 전국의 모든 경보 시스템을 가동 및 점검했다면 이번 오발령 논란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5월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414차 민방위날 훈련에 참여해 심폐소생술 체험을 하고 있다. 당초 전 국민 대상 훈련으로 계획했으나 막판에 공공 부문으로 축소했다.[연합뉴스]


북 미사일, 1~2분이면 서울에 떨어져
-역대 정부의 위기관리를 비교하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안보 정책이 원칙 없이 쉽게 달라지고 바뀐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1968년부터 40년간 비상 대비와 국가 총력전을 담당해온 국가비상기획위원회를 폐지했는데, 잘못된 결정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9·19 남북군사합의서 서명 이후 민방위 훈련과 을지연습 등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을 약화하고 군과 국민의 안보 의식을 약화한 잘못된 과정이다."
-국가 차원의 위기 컨트롤 타워가 없다.
"국가위기 대응 측면에서 보면 진보 성향으로 평가된 노무현 정부가 잘했다. 국가비상기획위원회를 십분 활용했고, 비상사태에 대비한 각종 위기관리 매뉴얼을 정부 부처마다 만들게 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주기적인 위기 대응 훈련을 주관하고 감독했다. 이런 점에 착안해 윤석열 정부도 대통령실 또는 총리실 산하에 국가비상기획위원회 같은 위기관리 조직을 부활하면 다양한 위기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가 가능할 것이다."
-비상 대비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점검해야 할 텐데.
"시대 상황과 안보 환경이 바뀌었는데 국민 보호를 위한 비상 대비 체제는 아직도 구시대에 머물러 있다. 이래서는 실질적인 국민 보호가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 예를 들어 경계경보와 공습경보는 적 항공기를 대상으로 한 재래식 경보 수단이다. 적 항공기가 대한민국 영공에 들어오기까지 약 10~20분의 시간적 여유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속도가 더 빠른 핵미사일 위협이 현실이 됐다. 북한 지역 어디서 발사해도 서울 상공에 1~2분이면 도달하는데 경계경보나 재난문자가 소용이 있겠나. 지금처럼 군(합참)이 행안부를 거쳐 지자체에 보내는 문자 시스템은 자칫 무용지물일 수 있다. 민방공 경보시스템을 신속히 미사일 대응체제로 바꿔야 한다. 경보 책임도 군이 맡아 행안부 경보통제소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해당 지자체 경보소에 보내도록 체제를 바꿔야 한다. 국가안보실이 조속히 검토해 조치해야 한다."

최계명 동국대 비상안전학과 겸임교수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 무력 정책법'에 대응해 우리는 '북핵 대비 국민 안전법'을 시급히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장진영 기자


핵 대비, 대피소에 '방폭 문' 등 갖춰야
-대비 시설도 확충해야 하지 않겠나.
"히로시마 원폭 투하 사례를 보면 지하 시설로 대피하면 생존 가능성을 대폭 높일 수 있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민방위 대피 시설인데 천문학적인 예산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접경 지역에 정부 지원으로 민방위 대피 시설 238개소를 설치했다. 지하철역과 아파트·빌딩 지하 주차장 같은 민방위 대피 시설이 전국에 1만7000여 곳이 있다. 하지만 '방폭 문'이나 공기정화 장치 등이 없어 핵 피폭 시 방호 설치 기준에 미달해 개선이 필요하다. 경보 사이렌 신호음도 국민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인공지능(AI) 음성 사이렌'을 개발해야 한다."
-그 외에 필요한 대책이 있다면.
"첫째, 거듭 강조하지만, 비상 대비 및 민방위 훈련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훈련 기간에 '국민 행동 요령 팸플릿'을 나눠주고 '안전 디딤돌'과 '국민 재난 포털'을 활용해 각자 생존법을 익혀 자신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 둘째, 민간 비군사 분야와 군사작전 지원을 전담할 정부 기구로 '국가비상대비청'을 신설해야 한다. 셋째, 핵 사용 요건을 명시한 북한의 '핵 무력 정책법'에 대응해 '북핵 대비 국민 안전법'을 제정해야 한다. 현행 '민방위 기본법'이나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으로는 핵 피폭 사태 대응이 어렵다. '북핵 대비 국민 안전법'에는 범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 지정, 북핵 피폭 시 행정 각 부처와 지자체의 역할 분담, 북핵 대비 조직과 인력 양성, 건물 신축 시 지하 핵 대피시설 설치 의무, 의료 체계 구축 등을 두루 담아야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위협에 맞서 민방공 훈련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일러스트=김지윤]
비상사태 시 국민행동요령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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