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예술] 지옥에서 천국으로 - 말러 교향곡
웅장한 교향악을 듣고 있노라면, 소리의 아름다움에 침잠하는 동시에 그 소리 너머의 어떤 숭고함을 느끼게 된다. 순간 울리고 사라지는 사운드 이면에는 사유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철학자 아도르노(Theodor W Adorno)는 ‘귀로 생각하기(Mit den Ohren denken)’라는 모토로 청각 예술인 음악이 진정한 진리의 세계를 구현할 것이라고 믿었다. 아도르노는 쇤베르크와 같은 현대음악에서 자신의 철학적 이상을 발견했지만, 베토벤과 말러 음악도 높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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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 교향악 축제 25일까지
국공립 17개 교향악단 참여
현실과 이상향 드러낸 말러
소리 너머 진리의 세계 찾기
」
2023년 교향악축제가 지난 1일 개막했다. 오는 25일까지 전국 17개 국공립 교향악단이 참여하는 이번 축제의 포문을 연 광주시립교향악단이 바로 이 두 작곡가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지휘자 홍석원이 이끄는 광주시립교향악단의 지난 1일 공연 당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이례적으로 합창석까지 꽉 찼다. 그만큼 청중의 열기가 뜨거웠다.
첫 무대는 손민수가 협연하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 C장조’. 작곡하는 연주자로서 비엔나에 입성하여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하던 시기에 탄생한 이 작품은 베토벤의 젊은 당당함이 묻어 있다. “나의 예술을 추구하고 나의 예술을 드러내는 것 외에는 즐거움이 없다”고 친구 베겔러(F Wegeler)에게 썼듯이, 베토벤에게는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런 베토벤을 홍석원 지휘자와 손민수는 부드럽고 정교하게 그려냈다. 손민수는 마치 구도자와 같은 절제된 모습으로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연주했고, 긴 트릴 후의 오케스트라와 만나는 피아노 선율은 녹아내릴 듯했다. 2악장 시작에서 피아노의 첫 음이 울린 후 순간적인 시차를 보이며 시작하는 모습에서 지휘자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다. 피아노와 관악 파트의 대화는 내밀했고, 현악과 관악 파트의 주고받음도 몰입의 순간을 끌어냈다. 훅 치고 들어오는 듯한 3악장에서 지휘자는 내려놓았던 지휘봉을 들고 가볍고 경쾌하게 거의 춤을 추듯이 음악을 이끌었다. 차분하지만 치밀한, 담백하지만 박력 있는 손민수의 연주는 이 협주곡의 격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문제는 말러였다. 말러의 음악은 낭만주의적 감성과 현대적 감각을 동시에 보인다. 그는 일상적 선율을 노스탤지어적인 파노라마로 그려냈으며, 그 중심에 말러 자신의 강렬한 개인적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 이번에 연주된 ‘교향곡 1번’은 ‘자연, 시, 인간에 대한 사랑, 신에 대한 믿음, 인간의 운명에 대한 연민, 죽음의 고독’ 등을 주제로 하는 그의 음악적 흐름의 출발점이 되는 작품이다.
무대는 하프와 여러 대의 타악기를 포함하여 오케스트라 연주자로 꽉 찼다. 긴장된 마음으로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나지막한 지속음 위에, 등장하는 관악기의 모티브는 선명하지 않았다. ‘우주의 시작’을 알리는 듯한 이 부분 후 관악기의 서정적인 모티브는 너무나 중요한데, 이 역시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2악장 첼로의 거친 질감은 말러적인 분위기를 끌어냈고, 지휘자는 정교한 리듬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칼로풍의 장송행진곡’이라는 부제가 붙은 느린 3악장에는 동요 ‘자크 형제’ 선율이 인용되어 친숙하게 들린다. 원래 장조의 밝은 분위기를 가진 이 동요는 단조로 바뀌어 장엄한 분위기로 변화되었고, 으뜸음과 딸림음을 오가는 팀파니의 규칙적인 진행을 배경으로 낮은 음역의 더블베이스가 주선율을 연주한다.
그런데 단조의 선율과 팀파니가 합쳐져 장례 행렬을 연상시키는 이 부분에서 주선율은 선명하지 않았고, 오보에와 바순의 실수도 눈에 띄었다. 이 악장에 인용된 말러 가곡(내 연인의 푸른 눈동자)에 나타나는 ‘보리수 밑에서 지난 상처를 잠시 잊고 좋아진 지금을 평안하게 즐기는 분위기’를 찾기는 어려웠다.
‘지옥에서 천국으로-깊은 상처를 받은 마음으로부터의, 절망의 갑작스러운 폭발이 찾아온다’라는 부제가 달린 4악장에서 다행히 광주시립관현악단의 진가가 발휘되었다. 말러는 ‘모든 영적인 투쟁’을 드러내고자 하였고, 광주시립관현악단은 바로 이러한 의도를 장대하고 폭풍 같은 사운드로 쏟아냈다. 약 한 시간의 대장정은 이렇게 지옥과 천국을 오가며 장대한 피날레로 마무리되었고, 객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아도르노는 좌절된 유토피아와 현실의 각박함이 이중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말러 음악의 묘미라고 말한다. 이번 6월에는 압도하는 사운드와 섬세한 뉘앙스가 담긴 교향곡의 세계에서 사유의 세계를 한번 느껴볼 만하다.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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