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 종교의 삶을 묻다] “형식으로 굳어진 회개, 진정한 회개는 무엇인가”

백성호 입력 2023. 6. 9. 00:48 수정 2023. 6. 9.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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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종교전문기자

백인 선교사의 인종 차별 고백

#장면 1.

출발은 두 명의 여성 선교사였다. 당시 중국에서 의화단 사건(청나라 말기의 반외세 운동)이 발생했다. 중국에서 원산으로 피신 온 선교사 화이트와 캐나다 장로교 출신 맥컬리, 두 여성은 기도를 시작했다. 기독교의 불모지였던 조선 땅에 복음이 꽃피게 해달라는 기도였다. 소식이 알려지자 외국인 선교사들이 하나둘 기도회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1903년 로버트 하디 선교사가 기도회에서 강의를 맡게 됐다. 토론토대 의대를 졸업한 하디는 기도회 내내 울면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동료 선교사들 앞에서 그는 명문대를 나왔다는 우쭐함, 의사라고 자부하는 교만, 꾀죄죄한 조선인과 자신은 인종부터 다르다는 백인우월주의 등 자기 마음속에 도사린 편견과 차별심을 토해내듯 고백했다.

「 빌리 그레이엄 전도 50주년 돼
한국 기독교의 성장 되돌아봐

1903년 선교사의 통절한 회개
4년 뒤 평양대부흥으로 이어져

기로에 선 한국 기독교 한 세기
지난 주요 사건 거울로 삼아야

따지고 보면 하디의 차별심이 그만의 것이었을까. 서구 선진국에서 온 선교사들 상당수가 속으로는 하디처럼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디의 회개는 순식간에 동료 선교사들의 회개와 고백으로 이어졌다. 원산부흥운동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1907년에 있었던 평양대부흥의 불씨가 됐다.

1907년 평양, ‘성령의 임재’ 사건

지난 3일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 50주년 기념대회’가 열렸다. 고(故)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아들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가 대표 설교를 맡았다. [사진 극동방송]

#장면 2.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한국 기독교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 발생했다. 길선주 장로가 평안도에서 올라온 교인 600여 명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1년 전 세상을 떠난 친구의 유산을 정리하다가 당시 화폐 가치로 100달러에 해당하는 큰돈을 착복했다고 털어놓았다. 길 장로의 통절한 회개는 곧 교인들의 회개로 들불처럼 퍼져갔다.

노름하고, 아내를 학대하고, 성경 말씀과 달리 첩을 둘이나 두는 등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했다.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치며 바닥에 떼굴떼굴 구르는 이들도 있었다. 당시의 회개가 얼마나 통절했는지를 보여주는 광경이다. 한국 기독교는 이날의 사건을 ‘성령의 임재’라고 평가하고 있다.

여의도광장에 닷새간 334만명

#장면 3.

회개와 고백이 촉발한 원산부흥운동은 평양대부흥운동의 씨앗이 됐다. [중앙포토]

한국 개신교사의 획기적 사건이 1973년 벌어졌다. 5월 30일부터 6월 3일까지 서울 여의도광장에 닷새 동안 총 334만 명이 모였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였다.

당시 설교에 대한 통역이 문제였다. 교계에서는 다들 한경직 목사가 맡을 것으로 예상했다. 누가 봐도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와 엠포리아 대학을 졸업한 한 목사가 통역을 맡는 게 타당해 보였다. 그런데 한 목사는 사양했다. 귀가 어둡다는 이유였다. 대신 젊고 영어가 능통한 목회자를 추천했다. 그가 바로 김장환 목사였다. 통역 후보자는 여럿이었지만 한경직 목사의 강한 지지로 김장환 목사가 발탁됐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영어 설교와 김장환 목사의 통역 콤비는 압권이었다. 당시 여의도광장에 운집한 사람 중에서 영어 설교를 바로 알아듣는 이가 얼마나 됐을까. 여의도광장을 가득 채운 인파는 김 목사의 뜨거움과 명쾌함에도 압도됐다.

여의도광장 설교 도중 “누가 오늘부터 새롭게 예수를 믿겠느냐?”는 물음에 그날 하루에만 자리에서 일어선 이들이 5만 명이었다.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는 한국 개신교가 양적 성장을 이루는 큰 전환점이 됐다. 전도대회 이후 크리스천의 수가 급속도로 늘어났고, 교인 수가 수만 혹은 수십만 명에 육박하는 대형교회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진정한 부흥이란 무엇인가” 질문

원산부흥운동과 평양대부흥운동, 그리고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대회는 한국 개신교사에 각각의 숙제를 남겼다. 그것은 ‘기독교에서 진정한 부흥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물음이다. 양적 성장의 고속도로를 달려오다가 정체기와 전환점에 선 듯한 한국 개신교가 자신에게 되물어야 할 질문이기도 하다.

지난 3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 50주년 기념대회’가 열렸다. 7만 군중이 대회장을 채웠다. 아버지 고(故) 빌리 그레이엄 목사를 대신해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가 대표설교를 맡았다. 50년 전 여의도 광장에서 일어난 부흥과 성장을 기념하고 재현해보자는 취지였다.

1903년과 1907년의 부흥운동, 그리고 1973년의 전도집회. 이 모두가 알고 보면 하나씩의 거울이다. 한국 개신교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다. 그 거울이 우리에게 묻는다. 진정한 기독교의 부흥이란 무엇인가.

세계 기독교사에서 부흥 운동의 뿌리를 찾자면 ‘마가의 다락방’이다. 십자가 처형을 당하는 예수를 뒤로하고 제자들은 도망치기에 바빴다. 이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다시 모였다. 거기서 가슴을 치며 통절하게 회개했다. 그때 제자들은 성령을 체험하고, 신앙의 질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2007년 옥한흠 목사의 큰 울림

원산부흥운동의 핵심도 하디 선교사의 회개다. 평양대부흥도 길선주 장로의 회개였다. 기독교의 회개는 자기 십자가다. 회개를 통해 내 가슴에 구멍이 날 때, 성령은 늘 그곳으로 임했다.

2007년 ‘한국교회 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에서 대표설교를 맡은 고(故) 옥한흠 목사(사랑의교회)는 “주위를 보라. 교회는 날마다 회개한다. 그런데 왜 회개가 필요한가. 바로 회개가 형식이 돼버렸기 때문이다”며 ‘교회의 회개’를 지적했다. 당시 개신교계에 미친 옥 목사 설교의 파급력은 상당했다.

기독교 역사는 지금도 묻는다. 진정한 성장이란 무엇인가. 기로에 선 한국 기독교를 향해 묻는다. 진정한 부흥이란 과연 무엇인가.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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