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회장 깜짝 등장…현대차 사례연구 분석해보니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최근 이무원 연세대 경영대 교수의 ‘조직학습: 기회와 함정’ 토론 강의에 깜짝 참석해 주목받았다. 강의는 정의선 회장의 리더십과 현대차그룹의 혁신을 심층 분석한 사례연구(Case Study) ‘현대차그룹: 패스트 팔로어에서 게임 체인저로’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사례연구는 이무원 교수가 윌리엄 바넷(William P. Barnett)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지속가능대학 석좌교수, 김재구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한국경영학회장)와 공동 집필했다. 사례연구를 중심으로 현대차그룹의 혁신 전략을 분석한다.
사례연구와 김인수 고려대 교수의 저서(Immitation to Innovation) 등에 따르면, 현대차는 크게 3단계를 밟으며 성장해왔다.
첫째, 역행적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에 기반한 모방을 통한 학습이다. 1970~1980년대 현대차그룹은 최고 수준의 외국 제품을 구해 와 이를 분해해 재조립하는 ‘역행적 엔지니어링’으로 기술 역량을 축적했다. 두 번째 단계는 패스트 팔로어다. 현대차그룹은 모방을 통해 학습한 선진국의 원천 기술을 활용해 차별적 기술과 기능을 구현하며 패스트 팔로어로서 품질 경영(Quality Management)에 주력했다. 세 번째 단계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로 도약이다. ‘게임 체인저’는 널리 알려진 ‘퍼스트 무버 어드밴티지(First Mover Advantage)’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게 사례연구의 진단이다. 후자는 기업이 새로운 시장에 일찍 진입함으로써 얻게 되는 이점을 뜻한다. 반면, 전자는 뛰어난 시장 지배력을 활용해 산업계의 전체적인 지형도를 다시 만들어가는 경우를 의미한다.
첫 번째는 조직 정체성 ‘리빌딩’이다. 내연기관 산업은 효율성(Efficiency)에 기반한 점진적(Incremental) 기술 개발을 지향한다. 모빌리티는 ‘SDV(Software Defined Vehicle·소프트웨어로 정의되는 차량)’로 규정된다. SDV는 소프트웨어가 주행 성능을 비롯해 각종 기능, 품질까지 규정하는 차량을 뜻한다. 예컨대, 글로벌 완성차 ‘톱3’라는 현대차그룹의 현 지위(Status)와 평판(Reputation)은 ‘내연기관’이라는 정체성(Identity)에 기반한다. 앞으로 현대차가 전환하고자 하는 방향은 소프트웨어 기반 모빌리티 기업으로 정반대의 조직 정체성 구축이 요구된다. 이무원 교수 등은 정의선 회장의 인식 전환이나 비전 전파 노력이 선대 회장인 정몽구 명예회장과 명확히 구분되는 지점이라고 봤다. 실제 학계에서는 기술 변화의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기술 개발 못지않게 최고경영진의 인지적 관성(Cognitive Inertia)에 조직 명운이 갈린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두 번째는 조직문화 혁신이다. 과거 정몽구 명예회장 시대 때는 ‘품질에 실패한 경영진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 현대차그룹의 일관된 인사 메시지였다. 모빌리티 산업 속성은 다르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고는 조직 내부 혁신을 생성하고 전파하는 데 한계가 따른다는 것이 정의선 회장의 메시지다. 이무원 교수 등은 “현대차그룹은 시장 게임 체인저로 변신하기 위해 이상적인 인재상을 ‘창의적이고 판도를 바꾸는 인재’로 진화시켰다”며 “정의선 회장은 자동차 제국을 유연하고 민첩한 기업으로 재탄생시키려 한다”고 진단했다.
전동화 부문서 민첩성 발휘해 두각
세 번째는 내연기관과 모빌리티 등 차별적인 정체성 구축을 통한 ‘양손잡이 조직(Ambidextrous Organization)’의 효과적인 구현이다. 양손잡이 조직은 ‘한 손(기존 조직)’으로는 주력 사업을, ‘다른 손(신규 조직)’으로는 신사업을 벌이는 조직 형태를 뜻한다. 학계에서는 ‘탐험(Exploration)과 활용(Exploitation)의 균형’에 양손잡이 조직의 명암이 갈린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탐험’과 ‘활용’은 제임스 마치(James G. March)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제안한 개념이다. 현대차그룹이 내연기관 사업을 유지, 관리, 심화하는 것은 ‘활용’이다. 모빌리티 분야 신기술에 전략적 도전을 감행하는 것은 ‘탐험’이라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현대차그룹이 구현하고자 하는 ‘게임의 규칙’으로는 크게 전동화, 로보틱스, AI, AAM(Advanced Air Mobility), 그리고 수소 기술 등이 제시됐다. 이 가운데서 현대차그룹이 두각을 보이는 부문은 전동화다. 현대차그룹 전동화 전략의 민첩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은 경쟁사 대비 발 빠른 전용 플랫폼 개발이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완성해 이를 기반으로 전동화에 최적화한 전기차 모델을 잇따라 내놓는다. E-GMP는 휠베이스 확장을 통해 다양한 유형의 차량을 개발할 수 있도록 모듈러 구조(Modular Architecture)를 기반으로 한다.
사례연구에서는 현대차그룹이 당면한 과제도 지적했다. 관건은 내연기관과 모빌리티 등 서로 대비되는 정체성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긴장을 어떻게 조율하느냐다. 조직 전반의 민첩성을 키우는 것도 쉽지 않은 숙제로 지목된다. 현대차그룹은 내연기관 밸류체인을 중심으로 수직계열화를 통해 대기업집단을 이룬다. 내연기관 시대에서는 수직계열화로 그룹 전체가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것이 효율적인 전략이었지만 모빌리티에서는 신속한 의사결정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현대차그룹 고유의 ‘양손잡이 학습’ 방안 구축해야”
A. 첫 번째 요소는 산업 간 경계 파괴를 인지하고 기회를 제대로 감지함으로써 ‘게임 체인저’라는 미래지향적 비즈니스 모델의 로드맵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요소는 조직의 체질과 문화 등을 개선하는 부단한 노력을 함으로써 우수한 학습 조직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비즈니즈 모델과 조직의 변화를 제대로 포용할 수 있는 리더십이다. 특히 현대차그룹 본연의 기업가정신 리더십(Entrepreneurial Leadership)과 집합적 리더십(Collective Leadership)을 제대로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Q. 내연기관과 모빌리티 등 서로 다른 혁신의 흐름과 학습 메커니즘을 조율하고 통합하려면.
A. 현대차그룹의 경우, 내연기관에서의 경쟁력은 계속 유지하는 활용 학습(Exploitative Learning)과 모빌리티에서 혁신의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탐험 학습(Exploratory Learning)을 동시에 추구하는 양손잡이 학습(Ambidextrous Learning)을 수행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다만, 실제 경영에서 성공적으로 이를 구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다. 현대차도 내연기관과 모빌리티 조직 간 경영의 거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학습 과정에서 충돌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각 영역마다 통합과 분리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단순히 성공적인 기업 사례를 벤치마킹하기보다 현대차그룹 고유의 양손잡이 학습 방안을 구축해야 한다.
Q. 내연기관에서 모빌리티 조직으로 전환 과정에서 갈등과 긴장이 불거질 수 있는데.
A. 하위 조직 간 정체성 충돌로 일어나는 문제는 결국 상위 조직의 목표와 개별 하위 조직 구성원이 갖는 목표 사이 괴리로 이어져 구성원 몰입도를 현저히 떨어뜨린다. 이 경우, 개별 하위 조직 구성원이 상위 조직 목표와 자신의 목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파악하고, 두 목표를 일치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현대차는 내연기관 연구 조직 구성원들이 모빌리티 연구 조직 성공과 직무·보상 체계를 어떻게 보는지 파악해 현대차그룹 현 상황을 간접적으로 가늠하고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 즉, 모빌리티 연구 조직 성공이 내연기관 연구 조직 구성원에게도 성취감으로 돌아가는 문화와 보상 체계를 마련해 진정한 의미의 고몰입(High Commitment) 조직을 구현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Q. 모빌리티 산업에서 CEO에게는 어떤 리더십이 요구되나.
A. 모빌리티 산업으로 진행하면서 리더들이 던지는 비전 변화를 잘 관찰할 필요가 있다. 현대차그룹이 정의선 회장 취임 이후 기존의 품질 경영, 글로벌 경영에 더해 새롭게 던지는 메시지는 ‘인류를 행복하고 편안하게 하는 기업’이다. 이런 비전에 공감하지만, 조직 구성원에게는 기존 비전에 비해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다가오므로 어색하고 적응하기 힘든 메시지일 수 있다. 리더가 모호한 비전을 던졌다는 것은 이 비전의 방향을 CEO 혼자서는 그릴 수 없으니 모든 조직 구성원들과 같이 고민하면서 로드맵을 만들어보자는 의미다. 즉, 모든 조직 구성원이 리더면서 기업가(Entrepreneur)가 될 수 있도록 독려하는 리더십이 요구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2호 (2023.06.07~2023.06.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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