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불황 속 나 홀로 고공행진…엔비디아의 성공 주문 ‘MIB’ ‘NOLA’
174%.
2023년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주식 상승률(5월 30일 종가 기준)이다. 5개월 만에 주가가 2배 넘게 올랐다. 반도체 기업 최초로 시가총액 1조달러를 넘어섰다. 주가만 질주하는 게 아니다. 실적 상승세도 폭발적이다. 올해 1분기 엔비디아는 매출 71억9000만달러, 순이익 20억4300만달러를 기록했다. 매출은 시장 예상치인 65억2000만달러를 훌쩍 넘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거뒀다.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6% 늘었다.
엔비디아의 실적 고공행진이 주목받는 이유는 반도체 업황 때문이다. 전자제품, 서버용 상품 등의 수요 감소로 인해 반도체업계는 ‘한파’가 덮쳤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물론 TSMC까지 지난해보다 수익이 크게 줄었다. AMD, 인텔, 마이크론 등도 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업계가 전반적으로 흔들리는 와중에도 승승장구하는 엔비디아의 비결은 무엇일까.
GPU·CUDA 엔진 앞세워 승승장구
엔비디아가 1분기 높은 실적을 거둔 배경에는 ‘AI’ 잭팟이 자리 잡는다. 챗GPT 등장 이후 AI 붐이 일어나면서 엔비디아의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요가 급증했다. GPU는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를 구동하기 위한 필수품이다. 엔비디아가 전 세계 시장의 90%를 공급한다. 최근 챗GPT 개발사인 오픈AI가 출시한 대규모 언어 모델 GPT-4에도 엔비디아의 GPU(A100) 1만여개가 사용됐다.
기세를 탄 엔비디아는 AI 슈퍼컴퓨팅 서비스인 ‘DGX 클라우드’를 비롯해 다양한 AI 관련 신제품을 내놓으며 반도체 대장주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AI용 GPU만 잘나가지 않는다. 언어 소프트웨어, AI 클라우드 슈퍼컴퓨터용 GPU까지 두루두루 성장세를 구가한다. AI용 언어 소프트웨어인 쿠다(CUDA)를 비롯한 각종 소프트웨어는 역시 AI 붐에 힘입어 GPU만큼 높은 판매량을 자랑한다. AI 클라우드 서비스 플랫폼은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같은 대형 IT 기업들을 주요 고객으로 확보했다. AI 클라우드·슈퍼컴퓨터용 GPU인 H100의 주문율도 높다. 미·중 갈등으로 인한 부담 역시 적다. 현재 미국은 고성능 반도체를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한동안 침체에 빠졌던 게임 사업은 부활의 날갯짓을 편다. 마이크로소프트와 10년 장기 공급계약을 맺었다. MS 게임사업부가 만드는 엑스박스 게임을 자사 클라우드 게이밍 서비스인 지포스 나우에 공급받는다. 엑스박스는 서구권 게임 이용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콘솔 게임 기기다.
미래 먹거리인 전장 사업에도 공을 들인다. 폭스콘과 협업해 자율주행 플랫폼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아직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지만 추후 엔비디아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게 반도체업계 시선이다.
각종 호재가 이어지는 덕분에 2분기 전망은 1분기보다 더 좋다. 엔비디아 측은 2분기 매출을 110억달러로 예상한다.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이자, 시장 전망치인 72억달러보다 50% 높은 수치다.
엔비디아 진짜 경쟁력은 기업 문화
Mission is Boss, 업무만 생각해라
언뜻 보면 엔비디아의 실적은 챗GPT 열풍에 우연히 편승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카드 사업자가 AI 열풍 수혜를 받아 ‘반짝’ 성장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다. 그러나 반도체업계 관계자들은 엔비디아의 질주가 절대 ‘우연’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반짝 질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실제로 엔비디아와 그래픽처리장치 시장을 두고 경쟁하는 라이벌 회사 실적은 좋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AMD의 경우 올해 1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9% 줄었고 영업이익은 적자로 전환했다.
엔비디아 내부에서는 자사의 기업 문화를 크게 3가지 문장으로 설명한다.
상품을 개발할 때는 철저히 고객 위주로 접근한다. 이를 내부에서는 ‘Bring your challenges no you can solve’라고 말한다. 직역하면 ‘당신이 풀지 못할 문제를 우리에게 들고 와라’로 해석된다. 고객사가 해결하지 못하는 난제를 해결하는 제품을 개발하는 데 집중한다. 엔비디아의 스테디셀러 ‘그래픽처리장치’는 고객 위주 경영 전략에서 탄생한 제품이다. 반도체 산업이 꽃을 피우던 1990년대 초중반에는 GPU라는 개념이 없었다. 엔비디아 창업주 젠슨 황은 당시 3D 그래픽 시장이 발전하는 속도를 보고 그래픽을 빠르게 처리해주는 기계가 필요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1997년부터 3D 게임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게임 개발사들은 기존 CPU 위주 장치로는 한계가 있음을 절감했다. 게임사들이 난제에 부딪혔을 때 엔비디아는 그래픽 칩 ‘NV3’를 선보였다. NV3는 3D 게임 시장 확장과 맞물려 인기를 끌었고, 이는 엔비디아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고객사 수요를 미리 파악하고 철저히 고객 위주로 기술을 개발한 덕분에 이룰 수 있던 성과였다. 만약 다른 기업들처럼 평범한 CPU 상품만 내놨다면 지금의 엔비디아는 없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이후 1999년에는 엔비디아 최초의 지포스 제품군인 ‘NV10(지포스 256)’을 내놨다. 사상 처음으로 CPU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3D 명령어를 처리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황은 이를 ‘GPU’라고 불렀다. GPU는 ‘병렬 연산’ 구조를 사용해 대량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데 특화돼 있다.
시장 변화에는 빠른 속도로 대응한다. 변화를 관망하지 않고 적극 대응한다는 게 엔비디아 방침이다. 이를 엔비디아 직원들은 ‘SOL’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SOL은 Speed of Light의 줄임말이다. 빛의 속도로 고객 요구에 대응하라는 뜻으로 쓰인다. 미중 갈등으로 인한 반도체 규제 당시 엔비디아의 ‘SOL’ 전략의 위용이 드러났다. 현재 미국은 중국에 ‘고성능 반도체 부품’을 파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해당 규제 때문에 엔비디아는 자사의 최신 그래픽 칩 ‘A100’과 ‘H100’의 판로가 막혔다. 다른 기업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엔비디아는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빠르게 찾는 데 집중했다. 중국 고객사 요구에 맞춰 미국 규제 기준에 걸리지 않는 GPU ‘A800’ ‘H800’을 만들어 수출 제한을 피했다. 알리바바그룹과 바이두, 텐센트 등 중국 대형 IT 기업들이 H800 제품을 애용하고 있다. 덕분에 중국 시장에서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중국 매출이 엔비디아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순항 중이다.
조직 운영 전략에는 철저한 성과주의를 지향한다. 이를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 ‘Mission is Boss’다. 임무, 즉 현재 주어진 일이 자신의 상관이라는 것이다. 엔비디아는 직책과 직급보다는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업무가 돌아간다. 현재 자신이 속한 팀·상관·관리자 직원에 구애받지 말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만 집중하라는 배려다. 관리자급의 임원들은 직원들이 업무에 매진하도록 돕는 역할만 맡는다. 전직 엔비디아 직원은 “엔비디아에는 NOLA라는 문화가 있다. ‘No One Loses Alone’의 줄임말이다. 홀로 실패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성과도 실패도 함께 나눈다. 관리자들은 직원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도록 격려하고 결과에 책임진다. 철저히 일만 신경 쓰도록 환경을 만들어준다. 일에만 집중하는 게 가능하다 보니 다른 기업보다 변화하는 환경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2호 (2023.06.07~2023.06.13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