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마천루 숲’으로 ‘한국판 맨해튼’의 미래
서울시가 여의도를 글로벌 디지털 금융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파격적인 규제 완화 조치를 내놨다. 용적률을 1200% 이상으로 완화하고 높이 규제를 아예 폐지하면서 초고층 빌딩이 얼마든지 들어설 수 있게 됐다. 덩달아 여의도 주요 재건축 단지들은 일제히 호가를 올리며 기대에 부푼 모습이다.
서울시는 지난 5월 24일 여의도를 국제 디지털 금융 중심지로 바꾸기 위해 마련한 ‘여의도 금융중심 지구단위계획(안)’을 공개했다. 한국거래소를 중심으로 한 동여의도 일대에 용적률 1000% 이상, 350m가 넘는 초고층 랜드마크 건축물이 밀집한 ‘한국판 맨해튼’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동여의도 일대는 대형 증권사 28곳과 한국거래소, 금융감독원, 금융투자협회 등 주요 기관이 들어서 있다. 이와 함께 주요 건축물에 창의적인 디자인을 입힌 ‘서울 대표 스카이라인’을 조성해 한강변의 상징적인 경관 거점으로 키우겠다는 구상도 포함됐다.
앞서 서울시는 2021년 11월 ‘아시아 금융중심도시, 서울’ 기본계획과 올 1월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을 통해 여의도에 디지털 금융 중심의 금융 산업 성장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여의도를 ‘전 세계 톱5 글로벌 금융 허브’로 도약시키기 위해서인데 이번에 보다 구체적인 계획안이 나온 셈이다.
서울시, 여의도 지구단위계획 공개
용적률 1200%, 높이 규제도 폐지
먼저 서울시는 입지 특성 등을 고려해 지구단위계획구역을 4개 지구로 나눴다. 동여의도 일대 112만586㎡ ‘국제금융중심지구’와 이를 뒷받침하는 ‘금융업무지원지구’, 진주·수정·공작·서울아파트 등 주요 재건축 단지로 구성된 ‘도심주거복합지구’, 그 밖의 구역은 ‘도심기능지원지구’로 나눠 개발할 계획이다. 서울시가 구상한 지구별 용도에 따라 용적률과 높이 기준 등이 달라진다.
계획안에 따르면 국제금융중심지구 내 금융특정개발진흥지구는 ‘용도지역 조정 가능지’로 지정해 일반상업지역(용적률 800%)에서 중심상업지역(용적률 1000%)으로 용도지역을 상향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한국거래소, 금융사가 몰려 있는 금융특정개발진흥지구는 중구 명동, 마포구 상암동에 이어 서울의 세 번째 중심상업지역으로 탈바꿈한다.
서울시는 금융특정개발진흥지구 용도를 중심상업지역으로 상향하는 대신 기부채납을 받아 금융지원기관이 입주할 공간, 도로 등을 정비하기로 했다. 상한 용적률은 1000%지만 서울시가 공모로 선정하는 창의, 혁신 디자인에 선정됐을 경우 용적률을 1245%까지 높일 수 있다.
이와 함께 권장 업종을 선택하면 도입 비율에 따라 최대 1.2배까지 용적률을 완화하는 점도 눈길을 끈다. 기존 용적률이 600%일 경우 최대 720%까지 올려준다는 의미다. 권장 업종은 은행, 보험, 증권 등 전통적인 금융 업종 외에도 정보기술(IT)을 접목한 ‘핀테크’ 업종이 포함됐다.
초고층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높이 규제도 사실상 사라진다. 여의도 파크원(333m, 69층)보다 높은 350m 이상 초고층 건축물도 허용된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잠실 롯데월드타워(555m, 123층)보다 더 높은 빌딩을 여의도에 짓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해졌다.
주말과 휴일에도 여의도에 머무는 정주인구를 늘리기 위해 상업, 주거 기능 역시 강화한다. 그동안 여의도는 주말, 야간에 유동인구가 갑자기 빠져나가 공동화 현상에 시달리고, 일부 도로가 극심한 불법 주차에 시달리면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샛강에 인접한 ‘도심기능지원지구’는 도심 활동에 필요한 다양한 생활 지원 기능을 육성하기 위해 공공, 생활 편익, 주거 등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도록 건축물 용도 제한을 최소화한다. 일례로 주차장으로 활용 중인 여의도 성모병원 옆 학교 부지는 2종일반주거지역에서 준주거지역으로 용도를 상향할 수 있도록 했다. 재건축을 추진해온 진주·수정·공작·서울아파트는 ‘도심주거복합지구’에 포함됐다. 일반상업지역에 속해 용적률이 800%까지 높아진다.
보행 환경도 개선하기로 했다. 한강, 샛강을 연결하는 가로변에 개방형 녹지 공간을 도입할 계획이다. 지하철, 지하보도는 건축물 지하 공간과 연결해 입체적 보행 공간을 마련하기로 했다. 조남준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은 “여의도는 금융중심 지구단위계획, 아파트지구 지구단위계획, 제2세종문화회관 등 다양한 프로젝트가 동시에 추진돼 유연한 계획이 필요하다. 규제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여의도를 국제적인 디지털 금융 중심지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실거래가 2억~4억씩 뛰어
“급매물이 소진되면서 매물 자체가 많이 줄었어요. 기존에 있던 매물은 집주인들이 거둬들이거나 호가를 올리고 있습니다.” (여의도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
토지거래허가구역 연장 발표로 주춤했던 여의도 부동산 시장이 여의도 금융중심 지구단위계획 덕분에 다시 살아나는 모습이다. 특히 한강변 단지의 경우 통합 재건축해야 한다는 강제성이 사라지며 여의도 재건축 단지에 대한 투자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5월 29일 찾은 서울 여의도는 대체휴일임에도 문을 연 공인중개사사무소가 여럿 보였다. 여의도는 실거주를 해야 집을 살 수 있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는데도 일부 단지들은 올 초 실거래가 대비 2억~4억원씩 오른 가격에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재건축 규제 완화를 약속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개발 청사진이 속속 공개되면서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호가도 오르는 모습이다.
시범아파트는 지난 5월 전용 79㎡가 17억6000만원에 매매 계약서를 썼는데 올 초 1월 실거래(15억원) 이후 4개월여 만에 2억6000만원 올랐다. 30평대인 전용 118㎡는 4월과 5월 각각 22억원에 주인을 찾았다. 2021년 6월 고점(26억원)보다는 낮은 가격이지만 지난해 말~올 초 실거래가(20억~20억4000만원)보다는 시세가 올랐다.
시범아파트 인근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5월 들어 13억원 후반대에 연달아 실거래된 작은 평형(18평·전용 60㎡)은 매물이 아예 없고, 17억원대에 거래됐던 20평대(전용 79㎡) 매물은 집주인이 호가를 18억~19억원대까지 올렸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올해 실거래가 없었던 대형 평형(47평)의 경우 28억원대 매물이 대부분이지만, 더러는 2021년 고점 가격(35억원)까지 호가를 올려두고 시장을 지켜보는 집주인도 있다”고 귀띔했다.
광장아파트 전용 139㎡는 5월 23억3000만원에 팔렸다. 지난해 한 해 동안 3건만 거래된 아파트가 올 들어서는 5개월 동안 5채가 사고팔렸다. 진주아파트 또한 전용 63㎡가 5월 들어 14억7000만원, 11억6380만원에 실거래됐다. 전용 72㎡는 15억원에 팔렸다. 지난해는 71㎡가 8억원에 단 한 건 거래됐는데, 올해 들어 거래가 부쩍 늘었다.
지난 4월 21억원에 거래된 한양아파트 전용 149㎡는 5월 초 3억원 오른 24억원에 실거래됐다. 여의도 서울, 공작아파트와 함께 여의도 상업용지에 위치한 단지인 수정아파트는 5월 들어 올해 첫 거래가 성사되기도 했다.
시범 65층, 한양 54층 마천루로
시장에서는 여의도 초고층 개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집값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례로 신속통합기획을 진행 중인 시범아파트와 한양아파트는 각각 최고 65층, 54층으로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이런 식으로 여의도 일대 노후 아파트 단지 12곳이 최고 70층에 달하는 마천루 단지로 바뀐다. 여의도는 과거 ‘통개발’이 추진되기도 했지만 최근 발표로 한강변 단지는 통합 재건축을 추진해야 할 필요가 없어진 덕분이다.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이하 신통기획)’ 추진이 결정된 단지도 속속 등장하는 가운데 그동안 주민 합의가 쉽지 않았던 통합 재건축이 수월해질 것이라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여의도 내 22개 아파트 단지 중 16곳은 모두 준공이 40년 이상 된 노후 아파트다. 이미 재건축 연한 기준인 30년을 넘긴 지 오래다.
여의도 재건축이 처음 공론화된 것은 2006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한강 르네상스’를 추진하며 여의도 정비사업이 탄력을 받았지만 침체된 부동산 경기를 이기지 못하고 무산됐다. 2018년에는 서울시가 여의도와 압구정을 ‘통개발’하기 위해 단지 단위 재건축을 추진했지만 이후 집값이 급등하면서 잠정 보류됐다. 이후 일부 단지가 통합 재건축을 추진했지만 개별 단지마다 사정이 달라 사업이 지지부진했다.
지지부진하던 여의도 재건축 사업이 다시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것은 서울시의 ‘정비사업 패스트 트랙’ 정책인 신통기획 덕분이다. 여기에 서울시가 주거용 건축물의 층고 규제인 ‘35층 룰’을 폐지하기로 하면서 시장에서는 한강변 스카이라인이 한층 높아질 거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여의도에서 가장 오래된 단지인 시범아파트는 최고 65층으로 재건축하는 신통기획안이 지난해 11월 확정됐다.
시범아파트는 2017년 안전진단 D등급을 받아 재건축 사업이 확정됐고 지난해 11월에는 재건축 사업을 관리하던 한국자산신탁이 신통기획 참여를 신청했다. 여의도 내 재건축 단지 중에서는 현재까지 사업 진행 속도가 가장 빠르다. 서울시는 지상 최고 13층, 1578가구인 시범 단지의 용적률을 400% 이하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안을 마련했다. 현재 3종주거지역인 용도를 준주거나 상업지역으로 상향해 용적률을 높일 계획이다. 이런 계획을 적용하면 기존 1584가구는 2400여가구로 재건축된다.
준공한 지 48년 된 한양아파트는 상업·문화 기능이 복합된 최고 54층 주거 단지로 만드는 신통기획안이 지난 1월 확정된 바 있다. 시범아파트와 비슷한 속도로 신통기획을 통해 용적률 600% 이하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이런 계획을 적용하면 한양아파트는 현재 최고 12층 588가구 규모 단지는 1000가구 넘는 대단지가 된다.
삼부아파트도 지난 1월 용적률 500%를 적용해 최고 56층 아파트를 짓는다는 내용의 정비계획안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 단지는 신통기획안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59층 높이로 재건축을 준비 중인 대교아파트는 최근 신통기획 자문 사업 기획안을 영등포구청에 제출했다. 지난 2월 추진위 구성 승인을 받아 협력 업체 선정을 앞두고 있다.
다만 서울시는 목화·삼부아파트, 장미·화랑·대교아파트에 대해서는 공동 개발할 것을 권장했다. 여의도 아파트지구 가운데 한강과 가장 가까이 위치한 단지들인 만큼 효율적인 조성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이들 단지는 각각 재건축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동 개발할 경우 허용 용적률 인센티브(상업지구 기준 70%)를 주고 개별 개발을 한다고 해서 불이익이 있진 않다”고 설명했다.
초고층 공사비, 재건축 분담금 변수
전문가들은 여의도 개발 사업이 완료될 경우 한강변 스카이라인을 바꿔놓을 고급 주거지라는 평가를 받는다. 직주근접, 교통, 상권을 모두 갖춘 입지 덕분이다.
서울 3개 업무지구로 꼽히는 여의도에는 일자리가 몰려 있고, 여의도 남북으로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를 통해 서울 전역으로 접근하기 수월하다. 여의도에는 최근 서울대입구역과 여의도 샛강역을 연결하는 신림선이 개통했고, 2025년에는 안산까지 이어지는 신안산선도 들어선다. 여의도 버스환승센터에는 다양한 버스 노선이 지난다. 그동안 업무지구 식당가와 IFC몰을 제외하면 마땅한 상권이 없었지만 최근에는 국내 최대 규모 백화점인 ‘더현대 서울’이 개장하면서 유통시설에 대한 갈증도 해소됐다. 지지부진하던 재건축 속도도 정부와 서울시의 규제 완화 덕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다만 규제가 사실상 없어졌다고 해도 여의도 일대에 70층 높이 아파트가 순조롭게 개발될지는 미지수다. 현재 여의도 재건축 아파트 대부분이 50층보다 높이 짓는 안을 추진 중이지만 문제는 비용이다. 50층 넘는 초고층 아파트를 지을 경우 공사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최근 서울시가 공개한 여의도 한양아파트 추정분담금 등을 보면 58평형 소유주가 149㎡를 소유하려면 2억원가량을, 221㎡를 소유하려면 16억원가량을 더 내야 한다. 최근 공사비, 인건비 인상을 감안하면 분담금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억대를 넘어 두 자릿수를 넘어가는 추정분담금에 부담을 느끼는 소유주도 적잖다. 향후 기부채납 비율 등이 반영되는 시점에 추가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늘어난 사업비만큼 분양가를 높여 받으면 되지만, 이 경우 ‘완판’을 담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최근 영등포구 구보에 공개된 재건축 정비계획안을 보면 최고 65층 높이 시범아파트의 3.3㎡당 일반분양가는 6400만원, 최고 54층 높이 한양아파트의 3.3㎡당 일반분양가는 6000만원가량으로 추산됐다. 재건축 단지 중 3.3㎡당 역대 최고 분양가를 기록한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약 5669만원)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분양 시점 시장 여건에 따라 사업성이 엇갈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반면 3.3㎡당 6000만원대 분양가가 터무니없지는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2019년 분양가 규제를 피하기 위해 임대 후 분양을 택했던 ‘여의도브라이튼(최고 49층)’은 올해 분양가상한제가 해제된 후 3.3㎡당 최고 9000만원에 가격을 책정했다는 것이다. 여의도브라이튼은 임차인 모집(3.3㎡당 보증금 평균 5300만원)도 대부분 완료됐다.
“여의도는 고소득 금융인과 자산가가 많은 데 비해 아파트지구가 넓고 인근에 대체할 만한 우량 주거지가 없어 투자 관심이 많은 지역이다. 다만 단지마다 상업, 주거지역이 뒤섞여 있으며 사업 진행 방식이 천차만별이고, 투자에 제약 조건이 많다. 단기 차익을 낸다기보다는 희소성 높은 고급 주거지를 취득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의 총평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2호 (2023.06.07~2023.06.13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