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 기차 그 자리에 앉아야 할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나 [해시태그 #지역 시즌2]

박누리 입력 2023. 6. 8.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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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개정·기술발전에도 여전히 뒤로 밀리는 장애인 이동권… '또'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

[박누리 기자]

 역 플랫폼에 정차해있는 KTX.
ⓒ 연합뉴스
 
  서울행 기차를 탈 때마다 궁금했다. 휠체어 장애인이 탑승할 수 있도록 일반 좌석을 모두 떼어내 훤하게 비워진 그 자리는 왜 늘 다른 비장애인 탑승객의 짐이 차지하고 있을까. 널찍한 휠체어 장애인석을 지날 때마다 머리를 스치는, 그러나 돌아서면 또 잊게 되는 물음이었다. 

5월의 마지막 날, 여름 더위가 슬슬 몰아치던 오후 1시의 뙤약볕 아래 이런 물음을 누구보다 깊이 품었을 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그 오랜 물음을 토해내듯 외쳤다.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 충북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 지역에서 오랫동안 이동권 문제를 의제화해온 장애인 활동가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충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이 한 목소리를 낸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집중결의대회' 현장이다. 

혹자는 "또 이동권 얘기"냐고 반응할지 모르겠다. 실제 이날 거리를 점령하고 행진한 150여 명의 행렬에는, 응원과 지지도 있었지만 자동차 경적과 고함 소리로 "그만하라"는 비난이 뒤따랐다. 경적을 울리지 않고는 못 배길 다급한 상황이 있었을 것이라 믿고 싶다. 그것이 아니라면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우리가 여전히 너무 모르고 있기 때문이거나.  

옥천역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기차는 하루 10대. 이 중 휠체어 장애인이 탑승할 수 있는 기차는 5대다. 부산으로 향하는 하행선 기차의 경우 하루 13대가 있지만 이 역시 휠체어가 탈 수 있는 기차는 4대에 불과하다. 기차 1대에 탑승 가능한 휠체어 이용자도 2명이 최대라, 운행 횟수와 좌석 모두 턱없이 부족한 형편. '적자 노선'이라는 이유로 이미 많은 무궁화호가 감축되며 지역 간 이동이 어려워진 가운데, 휠체어 장애인의 이동권은 훨씬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해지고 있던 것이다. 

기차 이용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출발지에서 기차역까지, 기차역에서 목적지까지 오가는 교통수단을 구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옥천에서 운행 중인 버스 중 휠체어 장애인이 탑승할 수 있는 저상버스는 단 1대. 그나마도 옥천읍에서 대전 방향으로 향하는 노선이라 옥천 내 이동을 위한 저상버스는 0대인 셈이다. 

그렇다고 도보 이동이 수월한 것도 아니다. 열악한 대중교통으로 옥천에 등록된 자가용 수(4월 기준 2만8633대)가 전체 가구 수(4월 기준 2만5340)를 추월한 지도 오래. 이 때문에 읍 시가지 도로와 골목이 늘 불법주정차에 시달리니, 휠체어 장애인이 도보를 이용하는 일은 언제나 모험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위험한 모험은 자동차를 가지지 못한, 운전을 할 수 없는 모든 주민에게 해당되는 일이다. 

옥천의 이동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장애인권 운동계에서만 나왔던 게 아니다. 이미 10년도 더 전에는 시가지 상가를 자주 이용하는 주민, 상인 등을 중심으로 교통문제와 이동권 문제를 해결하라는 요구가 적지 않게 흘러나왔다. 이미 면 순환버스를 시행하고 있는 옥천군 안남면 사례를 익히 알고 있던 읍 주민들 사이에선 "읍에도 저런 순환버스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도 나왔다.

"어린이와 청소년, 노인 그리고 장애인 등이 원하는 곳에 편하게 오갈 수 있는" 공공교통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들이었지만, 예산 등을 이유로 정책화되지는 못했다. 그 사이 옥천읍 차량 등록대수는 계속 늘었고 그만큼 도로와 골목은 점령당했다. 당연히 휠체어 장애인을 비롯한 교통약자의 이동권도 사라졌다. 

"농로에 세단 다니는 세상, 저상버스는 왜 안 되나"    
 
 5월 31일 충북 옥천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집중결의대회'가 열렸다.
ⓒ 월간 옥이네
 
이런 상황을 만회할 기회는 사실 더 있었다. 2012년 옥천군은 충북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과의 협약을 통해 저상버스 도입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도로 사정' 등을 이유로 들며 아직까지 약속은 지켜지지 않은 상태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안이 시행됨에 따라 올해부터 모든 버스 대·폐차 시 저상버스를 반드시 도입해야 하지만, 이 역시 '예외 조항'을 통한 허점이 발생한다. 올해 4월 옥천군이 발표한 '저상버스 예외 승인 노선'도 바로 이런 허점에서 파생됐다. 좁은 길, 과속방지턱, 급한 경사 등을 명목으로 지역 대부분 노선에 저상버스 도입을 할 수 없다는 게 군의 입장이다. "농로에도 세단 차량이 다니는 세상에서 저상버스라고 못 다닐 이유가 뭐냐"는, 지역 장애인들의 '웃픈' 외침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정말 좁은 길과 과속방지턱이 문제라면, 길을 넓히고 과속방지턱을 낮추면 될 일이다. 이마저도 어렵다면 이런 문제가 적은 읍 시가지 중심으로 저상버스를 먼저 편성해도 된다. 대안을 찾을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안 된다'만 십수 년째 되풀이하는 모양이라니. 이쯤 되니 '어떻게 해서든 저상버스를 도입하고 싶지 않'은 듯한 인상도 쉬이 지울 수 없다.(자율주행 자동차가 나오는 시대에 이런 이유로 저상버스 운행이 안 된다니 대체 기술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지도 의문이다.)

그나마 장애인 콜택시(장콜)가 도입돼 이전보다는 한결 나아졌다고는 하나 이 역시 법정대수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옥천의 경우 최소 12대 이상의 법정대수가 확보돼야 하지만, 현재 운행 중인 장콜은 8대에 그친다. 

이런 이야기가 어디 옥천에만 해당하는 일일까. 그나마 장콜이 '8대나' 된다(장애인이동권 문제 지적에 옥천군은 곧잘 "다른 군 단위에 비해 장콜을 이만큼이나 확보하고 있는 지역도 드물다"고 반응해왔다)는 점에서, 옥천 내 이동은 불가하다지만 저상버스가 1대라도 있다(이 역시 지역 장애인권 운동가들이 지치지 않고 요구한 덕에 생긴 것이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더 나은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비교적' 그렇다는 것이지, 이것이 지역 장애인 그리고 교통약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기차 안 휠체어 장애인석이 늘 비장애인들의 짐으로 차있던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뙤약볕 아래 욕설을 들어가면서도 휠체어를 끌고 나와 거리를 행진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지하철을 타게 해달라고, 고속버스와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가게 해달라고 외치는 이유에 우리는 제대로 귀 기울여 본 적이 있던가. 

오늘 기차, 지하철, 버스를 타는 사람들이라면 그 한편에 마련된 장애인석을 눈여겨 봐주면 좋겠다. 저 자리에 타야 할 장애인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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