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단톡방 불침번’ 세운 직장 상사…갑질인가, 적극 행정인가

문희철 2023. 6. 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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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힌남노가 상륙했던 당시 한 건물 옥상에서 철골 햇빛 차단 구조물이 도로로 떨어져 차량을 일부 파손했다. [사진 대구소방안전본부]

서울시 지역건축안전센터장(과장·4급)이 최근 ‘갑질’ 논란에 대기 발령 처분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발단은 지난달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온 ‘직원 삥이나 뜯는 이 과, 두고 보시렵니까’라는 글이었다. 이 글을 작성한 제보자는 ‘서울시 주택정책실 지역건축안전센터 과장이 부서원에게 새벽부터 주말까지 수시로 업무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했다. 24시간 카카오톡 단체방 모니터링을 강요하고, 1시간 이내에 보고하지 않으면 벌금을 물렸다는 내용이다.


재난 적극 대응하려 '파수꾼' 자체 도입


부산 수영구 한 건물 리모델링 공사장 가림막이 붕괴하며 보행로와 도로를 가로막고 있다. [연합뉴스]
지역건축안전센터 여러 직원들에 따르면 A 과장 부임 이후 ‘파수꾼’ 제도를 새롭게 도입한 게 화근이었다. 일종의 군대 내 ‘5분 대기조’처럼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야간·주말에도 비상 상황에 대응하잔 취지다.

센터는 공사장 등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유관 부서에 통보하고 현장에 출동해 사고를 지휘·점검하는 조직이다. 서울 시내에서 안전사고 문제가 터지면 일반적으로 재난안전상황실이 먼저 인지한다. 재난안전상황실은 이중 공사장·건축물 사고를 선별해 지역건축안전센터로 전파한다. 이때 전파 매체가 이번에 문제가 된 카카오톡 계정이다.

A 과장 부임 이전까지 지역건축안전센터는 부서원 전원이 카카오톡 방을 수시로 모니터링했다. 문제는 야간·주말이었다. ‘파수꾼’ 제도는 야간과 주말에 각각 1명이 책임지고 원하는 장소에서 단톡방을 모니터링하는 방식이다. 파수꾼이 모니터링 과정에서 사고를 인지하면 1시간 이내에 센터 내 업무 담당자에게 전화한다. 연락받은 직원이 팀장에게 보고하면, 팀장은 이를 실·국장이 모인 텔레그램 방에 전달하는 체계다. 센터 내부적으론 ‘이태원 참사’ 이후 재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 한 자체제도란 평가가 나온다.


어린이날 아침, 거친 온라인상 교육


강풍에 넘어간 공사장 가림막. 서울시 지역건축안전센터는 이런 일이 서울 시내에서 발생하면 현장으로 출동해 사고를 지휘한다. [사진 제주도소방안전본부]
그런데 어린이날 연휴 첫날이던 지난 5월 5일 운용 과정에서 갑질 논란이 터졌다. 재난안전상황실은 카카오톡방에 건축물 안전사고 발생 소식을 전달했고, 당시 파수꾼을 맡은 직원이 이 사실을 건축물안전관리팀 담당자에게 전달했다. 이 담당자가 건축물안전관리팀장에게 전파하는 과정에서 전화가 아닌 카카오톡 메시지로 남겼다. 새벽 시간이라 문자를 인지하지 못한 팀장은 결국 실·국장이 모인 텔레그램 방에 보고하지 못했다.

이후 A과장은 휴일 오전 7시 30분쯤 갑자기 보고누락의 책임을 물으며 단톡방에 직원들을 향해 ‘파수꾼 시스템을 설명해줄 분 있냐’고 올렸다. 직원들이 머뭇거리자 이번엔 ‘오늘 04시에 잠 안 자고 대기하는 사람’이란 제목의 투표창을 만들고, 30분 만에 참여하라고 했다. 수차례 투표참여를 독촉했다. 그는 투표 끝나기 전 갑자기 “비상연락망이 제대로 가동 안 된다”며 리플을 달라고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본인이 도입한 파수꾼 의미를 설명하려는 듯 ‘잠을 안 자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다음 설명 중 올바른 정답은’이란 투표창을 잇달아 만들었다. 일부 공무원은 “가족과 함께하는 연휴 첫날 팀장이 ‘정신교육’을 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결국 A 과장이 부서원에게 상당한 모욕감 등을 줬다는 인사부서의 판단에 대기발령 조처됐다.

파수꾼 제도 자체에 대한 불만도 나온다. 직원 12명이 순번대로 당번을 맡다 보니 월평균 3회가량 파수꾼이 돌아온다. 기존에 없던 자체 당직제도다 보니 수당·대휴는 일절 받지 못한다.

이에 대해 A 과장은 “첫날(5일) 파수꾼 근무 체계를 바로잡아야 남은 연휴(6~7일)에 제대로 시스템이 돌아갈 수 있다고 판단해 부득이하게 아침에 카카오톡으로 연락했다”며 “비상 상황에 대응하는 게 우리 센터 소명이자 과업이다. 다만 이와 같은 소신을 부서원과 충분히 소통하지 못하고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직 조사 중인 사안으로 일단 감사 부서의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 조치할 필요가 있어 대기발령 조처했다”고 밝혔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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