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우리집”…푸른 눈의 선교사님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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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7년 만에 아들과 남편이 죽었다.
조선과 청나라를 누비며 복음을 전한 조지핀 필 캠벨(1853~1920·사진) 선교사 얘기다.
캠벨 기념사업회는 8일 서울 종로구 배화여대(총장 신종석) 캠벨홀에서 캠벨 선교사 평전 '조선은 우리 집이올시다'(신앙과지성사)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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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잃어버린 사람이 어떻게 모든 걸 세울 수 있었을까” 고민하며 책 펴내
결혼 7년 만에 아들과 남편이 죽었다. 가족을 잃은 뒤 자신의 빈손이 하나님의 도구로 쓰이길 바랐다. 조선과 청나라를 누비며 복음을 전한 조지핀 필 캠벨(1853~1920·사진) 선교사 얘기다. 별세 100여년이 지나 그의 생애를 엮은 책이 세상에 나왔다. 저자는 “‘모든 걸 잃어버린 사람이 어떻게 모든 걸 세울 수 있었을까’라는 고민을 품고 글을 썼다”고 했다.
캠벨 기념사업회는 8일 서울 종로구 배화여대(총장 신종석) 캠벨홀에서 캠벨 선교사 평전 ‘조선은 우리 집이올시다’(신앙과지성사)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캠벨 선교사는 균형감각이 뛰어났다. 1897년 10월 조선 땅을 밟은 그는 교육 교회 의료 사역 등을 한꺼번에 해냈다. 여성 기독교인 양육에 힘쓴 그는 배화학당에선 교사로 세브란스병원에서는 수간호사로 일했다. 미국에서 네 번째 안식년을 갖고 조선으로 복귀한 그는 넉 달 만인 1920년 11월 12일 향년 67세 나이로 별세했다. 숨을 거두기 전까지 디프테리아를 앓던 그는 “한국을 위해 헌신하였으니 죽어도 한국에 가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한 바 있다.
평전은 캠벨 선교사 67년 생애를 책 한 권에 꾹꾹 눌러 담았다.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은퇴 교수는 서평에서 “지금껏 캠벨 선교사는 배화학당 설립자, 양화진에 묻힌 선교사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다”며 “비로소 캠벨 선교사의 생애와 선교 사역의 전모가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전병식 배화여대 교목실장은 “기록은 기억을 재현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적의 기세를 일으킨다”며 “이 평전이 캠벨의 후예 선교사들에게 활력을 제공하는 기적의 기록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이현성 기자 sag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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