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사인'이 위험하다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2023. 6. 8.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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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히,스토리] 독도에 대한 언급 삭제한 '윤석열 정부의 국가안보전략'

[김종성 기자]

 지난 3월 28일 일본 문부과학성이 교과서 검정심의회를 열어 2024년도부터 초등학교에서 쓰일 교과서 149종이 심사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그중 초등학교 사회와 지도 일부 교과서에서는 독도가 '일본 고유 영토'라며 일본의 영유권 주장이 강화됐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독도에 관해 위험한 사인을 내보내고 있다. 한국 정부의 독도 수호 의지를 국제적으로 의심케 만들 만한 위험한 신호다.

지난 3월 28일 일본은 문부성이 발표한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통해 독도가 '일본의 영토'인 것을 넘어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강조하면서 '한국의 불법 점거'를 부각시켰다.

대한제국 영토였던 독도를 1905년에 '일본의 영토'로 편입시킨 게 아니라 오랜 옛날부터 남에게 한 번도 내준 적 없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메시지를 일본 어린이들 머릿속에 주입시키고 있다.

일본 정부는 작년 12월 16일 개정한 3대 안보문서의 하나인 '국가안전보장전략'에서도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인 다케시마 영유권 문제에 대응하면서 국제법에 따라 평화적으로 분쟁을 해결한다는 방침에 근거해 끈질기게 외교 노력을 한다"라고 선언했다.

'평화적 해결', '외교적 노력'은 국제사회를 의식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독도에 대한 일본의 의지를 보다 명확히 반영하는 것은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인 다케시마"라고 명기한 부분이다.

고유의 영토를 되찾겠다는 나라가 평화적 해결이나 외교적 노력에만 의지할 리는 없다. 상황에 따라서는 그 이상의 수단도 당연히 강구하게 된다. 이처럼 일본은 외교·안보의 최상위 문서인 '국가안전보장전략'을 통해서도 독도에 대해 은근하면서도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다.

독도가 한일관계 걸림돌이라는 윤석열 정부의 인식
 
 7일 국가안보실이 발간한 '윤석열 정부의 국가안보전략'
ⓒ 국가안보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동급 문서에서 독도에 대한 언급을 삭제했다. 7일 대통령실이 공개한 '윤석열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은 독도를 아예 언급하지도 않았다.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채택한 '국가안전보장전략'에 상응하는 '윤석열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은 "오늘날 우리는 역사의 변곡점 앞에 서 있습니다", "지금 인류는 역사상 가장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등으로 시작하는 윤 대통령의 서문을 제시한다.

역사의 변곡점에 와 있고 역사상 가장 불확실한 상황 앞에 와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독도를 더욱 확실히 지켜야 하는데 '윤석열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은 그렇지 않다. 한일관계를 언급한 제3장에서 "한일관계를 정상화시키는 대승적 결단"을 내렸다고 강조하면서 독도에 대한 언급도 '대승적'으로 삭제했다.

제3장은 일본의 강제징용(강제동원) 배상책임을 한국 정부가 떠안은 일을 계기로 한일관계가 정상화됐다고 자부한다. "정부는 강제징용 대법원판결 관련 해법 발표와 정상 방일을 계기로 한일관계의 정상화라는 목표를 가시적으로 달성"했다고 말한다. 한일관계가 정상화됐다면서 독도 수호 의지를 삭제했다. 독도 수호가 한일관계의 걸림돌이라는 윤석열 정부의 인식이 드러난다.

문재인 정부는 동해상에서 한일 초계기 사건이 발생한 2018년 12월 20일에 '문재인 정부의 국가안보전략' 문서를 공개했다. 이 문서는 "일본은 지리적·문화적으로 우리의 가까운 이웃국가이자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할 동반자"라고 선언하면서 독도 주권에 대해 원칙적 입장을 견지했다.

이 문서는 "한일 간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진실과 정의의 원칙에 입각하여 역사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면서 지혜롭게 해결해 나간다는 기조하에 역사왜곡 및 독도에 대한 부당한 주장 등에는 단호히 대응한다"라고 천명했다. 윤석열 정부의 이번 문서에서는 이에 관한 부분을 발견할 수 없다.

윤 정부는 한일 갈등을 막기 위해 독도에 관한 언급을 생략했다고 해명할 수도 있고 만약 일본이 독도에 대한 도발을 중단한 상태라면 그런 해명이 설득력을 가질 여지가 생긴다. 그러나 지금처럼 독도에 대한 일본의 공세가 최고조에 달한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침묵을 지키는 것은 차원이 전혀 다른 일이다.

윤석열 정부가 강제징용 책임을 떠안으며 굴욕외교를 선택한 뒤에도, 일본은 교과서 검정 결과를 통해 독도에 대한 침탈 의지를 드러냈다. 윤 정부가 하나를 양보하면 자신들도 하나를 양보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것을 추가로 빼앗겠다는 기시다 내각의 자세를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독도에 대해 침묵하면, 이 문제를 놓고 일본에 맞설 의사가 없음을 표시하게 됨은 물론이고, 일본 극우세력이 볼 때는 '알아서 하시라'는 사인이 될 수도 있다. 한쪽은 빼앗겠다고 나서는데 한쪽은 방관적 태도를 보인다면, 빼앗겠다고 나서는 쪽이 결국 유리한 고지를 점할 가능성이 커진다. 윤 대통령이 서문에서 말한 "역사의 변곡점", "역사상 가장 불확실한 미래"가 독도의 운명이 되지 않으리라고 보장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독도를 한일관계보다 상위에 놓아야 할 필요성
 
 지난 5월 31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스가 요시히데 전 일본 총리를 접견하고 있다.
ⓒ 대통령실
지난달 31일 한일의원연맹(일한의원연맹) 일본 측 회장 자격으로 윤 대통령을 방문한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는 회담 자리에서 "일한관계의 한층 더한 발전을 위해 노력해 나가고 싶다"라고 발언했다.

그날 발행된 <지지통신> '일한관계 발전에 일치··· 스가 전 수상 윤 대통령과 회담'은 이 발언에 대한 윤 대통령의 반응을 "힘찬 찬동의 언어"라고 표현했다. 윤 대통령이 얼마나 강력하게 찬성했으면 언론 기사에 이런 언사가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스가 전 총리가 언급한 "한층 더한 발전"은 깊은 뜻을 담고 있다. 같은 날 발행된 <산케이뉴스> '일한의련, 스가 요시히데 새 회장으로 거듭날까'는 어떤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를 알려준다.

<산케이신문> 온라인판인 이 기사는 스가 전 총리가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윤씨가 대통령 하는 동안에 일한의 과제로서 개선될 수 있는 것은 전부 해야 한다고 강하게 생각한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고 전한다.

'윤씨가 대통령 하는 동안에 한일관계 과제를 전부 개선해야 한다'는 말에다가 '강하게 생각한다'라는 표현을 붙였다. 2027년 5월 9일 이전에 한국으로부터 다 얻어내야 한다는 스가 전 총리의 강력한 의지를 반영하는 말이다. 그가 이런 말을 주변에 자주 한다는 것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로 한일관계 낙관론이 확산되는 일본 정계 분위기를 보여준다.

일본이 한국으로부터 얻어내고자 하는 것 중 하나는 당연히 독도 영유권이다. 일본이 윤 대통령을 만만히 보는 상황에서, 이번처럼 국가안보문서에서 독도를 빼면 일본인들의 자신감은 더욱 배가될 수밖에 없다.

2027년 5월 9일 이전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고 말하는 일본인들이 있으니, 독도에 대한 일본의 공세가 향후 수년 내에 더 세지면 세졌지 약해지지는 않으리라 예견할 수 있다. 독도의 운명이 "역사의 변곡점", "역사상 가장 불확실한 미래" 앞에 있는 셈이다.

사실, 독도는 일본이 아니라도 위험하다. 지난 6일 중국 및 러시아 군용기들이 동해 및 남해상의 한국방공식별구역(카디즈)를 침범한 사례에서도 나타나듯이, 중·러 군용기들이 독도 주변을 아무렇지도 않게 비행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 해군의 부활'을 상징한다는 퀸엘리자베스호 항공모함이 2021년 8월 동해에서 훈련을 한 사실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근래 들어 동해는 점점 더 많은 나라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머지않아 북극항로의 바닷길이 개척되고, 동해를 매개로 이것이 유라시아대륙 남반부 및 아프리카를 감싸는 기존의 바닷길과 연결되게 되면 독도 주변은 더욱 혼란해질 수밖에 없다.

일본이 독도를 탐내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중국·러시아나 제3의 국가들도 점점 더 독도에 관심을 갖는 지금 상황에서, 윤 정부는 독도 수호를 국가안보전략 문서에서 삭제했다. 일본의 야망을 부추길 우려와 더불어 다른 국가들의 관심을 부채질할 가능성이 있다.

윤 정부는 일본을 의식해 이렇게 했겠지만, 이것은 여타 국가들에도 사인이 될 여지가 농후하다. 한국 정부가 독도를 외면하면 일본 이외의 국가들도 독도 주변을 마음대로 지나다니게 되리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독도를 한일관계 테두리에 묶어두는 것은 위험하다. 독도는 한중관계나 한러관계에서도 중요해지고 있다. 북극항로가 열리면 더 많은 나라와의 관계에서도 중요해진다. 이는 독도를 한일관계보다 상위에 놓아야 할 필요성을 촉구한다. 독도를 한일관계 차원에 한정시키고 일본을 의식해 독도 수호 의지를 낮추는 윤석열 정부의 태도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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