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이 너무 불안한 아이, 부모를 돌아봐야 한다
이유정, 김형욱 부부가 함께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고 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부모의 역할은 무엇인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통해 처방해 드립니다. <편집자말>
[이유정, 김형욱 기자]
인간이라면 필연적으로 수없이 많은 시험을 치른다. 부모 역시 수많은 시험을 치러왔을 테다. 학창시절, 시험 때문에 부모와 마찰을 겪지 않은 이가 드물 것이다. 그래서 아이에겐 절대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부담을 주지 말아야지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아이가 좋은 성적을 받아도, 받지 못해도 은근히 부담을 주게 되니 말이다.
대체 시험은 왜 보는 걸까. 평가는 학습이 되었는지 확인하는 단계다. 잘 배웠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확인하며 배우는 사람, 가르치는 사람 모두가 무엇이 학습되었고 무엇이 학습되지 않았는지 알게 된다. 제대로 학습되지 않거나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다시 돌아가 그 부분을 알도록 하려는 게 평가의 목적이다.
나는 학생들과 학습 상담을 하면서 "공부는 모르는 걸 아는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니 시험에서 틀리는 건 나쁜 것도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전체 교육과정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확실히 알지 못하는 걸 알게 되는 과정일 뿐이다. 교육과 평가는 아이들을 줄 세우려는 목적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오늘날의 교육제도에선 시험 점수로 상대평가하며 아이들을 줄 세운다. 그래서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이가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다. 이 때문에 공부의 본래 목적은 사라지고 교육의 목적이 입시에만 있는 것처럼 되고 만다.
하지만 시험성적은 아이의 학업 성취를 판단하는 절대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러니 적어도 부모는 시험결과가 아닌 시험을 잘 보기 위해 노력한 아이의 공부 과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과정이 아닌 결과에 관심을 두면 아이는 시험을 두렵고 부정적인 것으로만 생각할 것이다. 시험을 앞두고 불안이 높아지는 아이들이 많은 이유다.
시험을 앞둔 아이들이 불안과 불편함을 호소하는 건 지극히 일반적이다. 불안이 심한 경우 소화불량이나 식욕 저하, 불면증, 우울감, 예민함, 공격성 등의 신체적·심리적인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아이가 시험을 볼 때 부모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 영화 <사도> 스틸컷 |
ⓒ ㈜쇼박스 |
아이가 시험을 앞두고 너무 불안해하거나 불편감을 호소하면, 먼저 부모 자신의 불안과 욕망을 들여다보는 게 좋다. 아이의 시험결과가 어떤 의미인지, 아이의 시험을 어떤 태도로 대하고 있는지. 아이의 시험을 자신의 시험처럼 생각하진 않았는지. 아이의 시험을 초연하게 생각한다는 부모도 아이의 시험결과를 받아보면 은연중에 실망한 표정을 짓기도 하니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사도세자의 임오화변을 그린 영화 <사도>는 그러한 부모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 사도세자는 어릴 때부터 총명함이 돋보였다. 세자는 아버지 영조가 매우 많은 나이에 얻은 늦둥이 아들이었으니, 사랑과 기대가 남달랐을 것이다. 더욱이 세자라는 자리가 자리인만큼 공부의 양과 책임이 컸던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를 대하는 영조의 모습은 많은 걸 생각해 보게 한다.
<사도>는 작품성과 흥행력을 두루 잡은 작품들을 내놓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연출자로 자리매김한 이준익 감독의 대표작이다. 그는 <사도>를 비롯해 <황산벌> <왕의 남자> <평양성> <동주> <박열> <자산어보> 등 시대극을 많이 내놓았는데, 대부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고증에 심혈을 기울이지만 대중적으로 익히 알려진 해석을 뒤집는 경우도 많다. <사도>의 경우도 영조와 사도세자에 대한 통념을 뒤집어 둘 다 각자의 사연에 따라 입체적으로 그려내고자 했다. 영조는 "잘하자, 자식이 잘해야 아비가 산다!"라는 대사가, 사도세자는 "언제부터 나를 세자로 생각하고 또 자식으로 생각했소! 내가 바란 것은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마디였소"라는 대사가 상징성을 띤다.
영조는 총명하고 사랑스러운 아들을 위해 직접 책까지 만들었다. 조선 시대 세자들은 공부가 당연한 일과로서, 매일 수업을 듣고 공부하는 걸 '서연'이라고 했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회강례'라고 하는 시험을 보게 했는데, 그간 배운 걸 얼마나 잘 익혔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사도>에서도 회강례의 모습이 여러 번 나온다.
영조가 손수 만들어준 책을 세자가 얼마나 공부했는지 확인하는 자리를 가졌다. 세자는 책 한 권을 술술 외웠지만 한 문장을 빼먹고 말았다. 책 한 권을 술술 외운 것이니 스승들은 그에게 '통(通)', 즉 합격을 줬지만, 영조는 오히려 스승들을 나무라며 세자에게 '불통(不通)'을 줬다. 한 문장을 빼먹었다는 이유였다.
시험이 아이에 대한 감정적 학대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도 시험을 앞두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라도, 공부에 관심이 없는 아이라도 시험을 잘 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총명하고 밝았던 세자의 모습은 점차 사라져갔다. 세자는 공부를 아예 포기해 버렸고, 밝고 자신감 있던 성격은 주눅 들고 우울하게 바뀌어 갔다. 회강례뿐 아니라 세자에겐 매일의 공부와 행동, 심지어 대리청정 때의 업무들까지 모든 게 시험이었다. 매일의 시험마다 잘해도 못해도 눈치를 보게 되는 상황들은 세자가 시험을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부 자체를 포기하게 만든 것이다.
시험 준비도 결과도 아이의 몫이다
시험에 어떻게 대비하고 공부할 것인가는 부모가 정해주는 게 아니다. 아이가 스스로 하도록 해야 한다. 다이어트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이번 달 안에 무조건 10kg을 감량해야 한다면서, 하루에 20km씩 달리고 윗몸일으키기를 1000개씩 하고 오로지 닭가슴살과 토마토만 먹어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만 하면 감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반발심이 일어 중간에 포기할지도 모르고, 하지도 않은 운동을 하고 식단을 지켰다고 거짓말할지도 모른다. 설령 끝까지 해내 10kg을 감량했더라도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다.
시험 역시 마찬가지다. 목표 설정과 준비는 아이가 직접 하도록 하는 게 가장 좋다. 처음엔 아이와 함께 얘기하면서 정해보는 것도 괜찮다. 우선 목표 설정이다. 그러기 위해선 아이의 현재 상태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단순히 지난 시험의 점수가 아니다. 지난 시험에서 80점을 맞았으니 이번엔 90점을 맞아야 한다는 목표 설정은 합리적이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시험 내용은 매번 바뀐다. 그러니 아이의 현재 능력과 준비 상태, 준비할 능력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목표는 현실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현실적인 목표가 생기면 도전할 수 있다. 도전해봐도 좋을 것 같은 용기와 자신감이 생긴다. '무조건 90점 이상 맞아야 해', '무조건 3등 안에 들어야 해' 같은 기준은 무엇에 의해 정해지는지 생각해 보자. 이러한 압박은 아이에게 시험은 나쁜 것이고 평가 기준일 뿐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시험은 부모를 위해 보는 게 아니라 아이를 위해 보는 것이다. 공부는 아이 스스로 하는 것이고 결과도 아이의 몫이다.
현실적인 목표를 정했으면 목표를 달성하고자 무엇을 어떻게 공부할지 아이가 스스로 계획할 수 있도록 한다. 아이가 너무 어리거나 방법을 아예 모르면, 몇 번은 함께 얘기하면서 계획해 볼 수 있다. 중요한 건 부모의 생각이나 계획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시험 준비 역시 아이의 몫이다. 아이를 도와주고 싶다면, 아이에게 물어봐 아이가 원하는 방식으로 도와줘야 한다. 부모가 옆에 있어 주면 좋겠다고 하면, 옆에서 책을 읽거나 개인 공부를 하며 같은 공간에 있어 주는 것이다. 아이가 공부한 걸 말로 연습해 보고 싶다고 하면, 호응하며 적극적으로 들어 주는 것이다.
▲ 영화 <사도> 스틸컷 |
ⓒ (주)쇼박스 |
부모도 예전에 학생이었을 테니 잘 알 것이다. 공부를 2배 많이 한다고 성적이 무조건 2배 오르진 않는다는 걸 말이다. 지금 당장 공부를 많이 한다고 성적이 갑자기 오르지 않는다. 성적은 서서히 오른다. 그마저도 현상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배운 걸 측정하는 게 시험이기에 학년이 지날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성적을 올리려면 한두 번의 성적에 연연할 게 아니라 멀리 보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만약 이번에 어느 때보다 열심히 공부했는데 왜 100점을 맞지 못했냐고 실망하거나 나무라면 아이는 자신감과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는다. 노력해도 안 될 거라는 생각을 굳힐 수 있다. 인생에서 치러야 하는 시험이 학교 시험만 있는 게 아니다. 살아가며 겪을 다양한 상황들이 모두 다 시험이다. 그 시험들에서 아이가 자신감을 잃고 노력해도 안 될 거라며 포기하길 원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아이는 부모의 불안을 잘 알아차린다. 부모가 불안하고 대범하지 못하면 아이도 그렇다. 아이의 시험에 부모가 왜 불안한지 들여다보면, 아이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적기 때문일 수 있다. 혹시 아이가 못할 거라고 은연중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돌아봐야 한다.
<사도>에서 영조는 세자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한다. 그렇기에 세자가 잘했으면 좋겠으면서도 못할까 봐 불안하다. 불행히도 그 불안이 다시 세자에게로 향한다. 영조는 세자에게 "잘하자, 네가 잘해야 아비가 산다"라고 말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투영한 욕망과 불안을 엿볼 수 있다. 아이가 잘하면 당연히 좋겠지만, 아이의 시험은 부모의 시험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아이가 시험을 잘 마쳤다면 칭찬하고 격려해 줘야 한다. 시험결과에 관한 게 아니라, 시험을 잘 마쳤고 열심히 노력해 온 걸 칭찬하는 것이다. 보상을 해 주려면 시험에 관한 게 아니라 과정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시험을 잘 봤다고 보상을 해 주는 건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아이를 타이르거나 혼낼 일이 있더라도 시험결과와 무관해야 한다. 시험결과에 따라 바뀌는 게 많을수록 아이는 시험을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불안이 높아질 것이다.
지나친 기대도 좋지 않지만 무관심도 좋지 않다. 한 번의 시험이 끝난 후에도 다시 새로운 공부에 도전할 수 있도록 힘을 줘야 한다. 그 힘은 부모의 관심과 격려에서 나온다. 그 어떤 시험도 한 번으로 인생이 끝나 버리거나 어긋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이에게 꼭 알려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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