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BTS 아미, 한 아이 어미"…주한 뉴질랜드 대사의 '비밀병기' [시크릿 대사관]

전수진 2023. 6. 8. 05: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던 베넷 신임 주한뉴질랜 대사. 배경에 뉴질랜드 국기가 걸려있다. 김경록 기자

“코타히탕아”와 “마히타히탕아.”

던 베넷 주한 뉴질랜드 대사의 좌우명이다. 뉴질랜드의 원주민 마오리족의 언어로, 각각 “서로를 존중한다”와 “함께 협력한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외교관으로서 베넷 대사의 신념을 잘 반영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난 3월 한국에 부임한 그를 ‘시크릿 대사관’이 서울 뉴질랜드 대사관저에서 만났다.

그에게 한국 부임은 바라고 바라던 운명이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슬럼프를 BTS 노래를 들으며 극복했다는 그는 자칭 ‘아미(BTS의 팬)’으로, 해산 소식을 듣고 눈물이 핑 돌았을 정도였다고. K팝에 대한 열정은 “한국에 대사로 오기 위해 진짜 열심히 일했다”는 그의 표정에서 진심이 느껴지는 여러 이유 중 하나다. K팝뿐 아니라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도 깊다. ‘시크릿 대사관’ 독자들을 위해서도 한국어로 인사 영상을 준비했다. 지난 3월, 부임과 함께 올린 주한 뉴질랜드 대사관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영상은 그가 눈여겨봐 뒀던 경희궁에서 촬영했다.

Q : 고궁울 선택한 이유는.
A : “단청의 오묘한 색감이 마음에 쏙 들었고, 한국 국민께 인사를 드리는 자리로는 한국의 고궁만 한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장소다."

Q : 한국어 공부하는 게 쉽진 않았을 텐데.
A : "부임 전에 12주 동안 하루 4시간 이상 한국어를 공부했다. 물론 유창하게 말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래도 계속 공부해나가려고 한다. 대사관 스태프들과의 회의에서도 한국어를 조금이라도 쓰려고 노력한다."
한국 부임 전 경력은 화려하다. 프랑스 파리, 중국 등에서 주로 다자외교를 담당했다. 외교관의 꿈은 아버지를 보며 키웠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5개국을 다니며 성장기를 보내며, 다양한 문화권과 언어에 대한 감각을 키웠다. 그럼에도 외교관의 삶은 녹록하지 않았는데, 아들이 세 살이 되던 때부터 싱글맘의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저신다 아던 전 총리처럼 30대 여성이 국가 지도자로서 임무를 훌륭히 완수하고 퇴임한 뉴질랜드이지만, 그럼에도 싱글맘 외교관의 길은 쉽지 않았다.

그는 “세계 어디에서도 일하는 엄마들은 힘들고, 나만 그런 것도 절대 아니다”라면서도 “한때 뉴질랜드에서도 결혼하지 않거나 엄마가 아닌 여성만 외교관이 되던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저신다 (아던) 이전엔 여성은 국방과 같은 소위 ‘남성적’이라고 분류되던 업무에선 배제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옛이야기”라며 “강한 리더십도 있고 부드러운 리더십도 있는, 다양함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던 베넷 주한 뉴질랜드 대사. 뒤에 보이는 건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의 공예품이다. 김경록 기자


짓궂은 질문을 했다. 일과 아들 중 우선순위를 물은 것.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아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도 아들도 중요하지만 아들을 최우선 순위에 놓으려 한다”며 “그렇게 하기 위해 일을 더 열심히 한 것도 있지만, 일이 생기면 아들에게 사정과 상황을 잘 설명했고, 되도록 아들을 항상 데리고 다녔으며, 아들도 주변에서도 그런 나를 잘 이해해줬다”고 말했다. 아들을 위해 일을 희생했다기보다, 아들에게 엄마의 일을 이해시키며 일과 가정의 양립을 이뤘다는 의미로 들렸다. 그의 아들, 루카는 벌써 17세. 이젠 베넷 대사에게 가장 큰 비밀병기 중 하나다.

Q : 아들 자랑을 해달라.
A : "사실 나보다 더 인기가 많다(웃음). 내 일을 따라 중국과 프랑스에서 성장하다 보니, 언어도 다양하게 잘 구사하고, 외교 에티켓도 자연스럽게 익혔기 때문에 외교 커뮤니티에서 나보다 더 스타 대접을 받는다(웃음)." 아들도 한국 생활에 만족하나.
A : "물론. 순두부찌개까지 나보다 더 잘 끓인다."

던 베넷 주한 뉴질랜드 대사가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 장호진 외교부 차관과 신임장 제정식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베넷 대사가 입은 외투는 뉴질랜드 원주민의 복장이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베넷 대사의 임기는 막 시작했지만, 그는 시간이 길지만은 않다고 느낀다. 할 일이 산적해 있어서다. 그는 “한국에 대사로 부임하는 것을 강력히 희망했던 것은 비단 한국 문화에 대한 애정뿐 아니라, 한국과의 양자 관계가 뉴질랜드에 큰 의미를 갖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ㆍ중 갈등 사이에 낀 한국과 뉴질랜드가 글로벌 중추 국가로 뻗어 나가기 위해선 서로를 잘 활용하는 것이 필수라는 게 그의 생각. 그는 “문화 교류뿐 아니라 관광 및 통상, 나아가 외교·안보 문제까지 한국과 뉴질랜드가 협력할 수 있는 분야는 많다”며 “앞으로 한국과 ‘코타 히탕아(서로 존중)’하며 ‘마히타히탕아(협력)’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