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 피트 이걸 몰랐다…여름에만 허락되는 '물길 트레킹' 명소

손민호 입력 2023. 6. 8. 05:02 수정 2023. 6. 8.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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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석의 Wild Korea③ 홍천 수타사계곡 물길 트레킹


홍천 수타사계곡은 물길 트레킹에 좋은 계곡이다. 시원한 계곡을 걷다 보면 더울 틈이 없다. 스틱으로 중심을 잡고 등산화를 신을 채 물길을 걷는다.
브래드 피트가 나왔던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을 기억하시는지. 유장하게 흐르는 강물에 걸어 들어가 플라이 낚싯줄을 던지는 주인공은 얼마나 근사했던가. 그 그림 같은 풍경의 계곡에 발목 담그고 첨벙첨벙 걷는 게 물길 트레킹이다. 플라이 낚시가 정적인 활동이라면, 물길 트레킹은 온몸으로 계곡을 즐기는 역동적인 행위다. 여름철 깨끗한 계곡에서만 허락되는 짜릿하고도 호사로운 일이다. 운 좋게 트레킹 며칠 전에 비가 제법 내린 덕분에 깨끗하고 풍성한 수타사계곡을 만끽했다.

한여름에만 허락된 물길 트레킹


물길 트레킹은 아무도 없는 청정 계곡을 걷는다. 대신 일행은 여러 명이어야 좋다. 안전사고 위험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계곡 트레킹은 계곡 옆에 난 오솔길을 걷지만, 물길 트레킹은 계곡 안에 들어가 첨벙첨벙 걷는 걸 말한다. 오직 한여름에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걷기다. 물살이 세거나 지형이 험한 구간은 우회가 필수다. 길을 만들면서 가야 하기에 창의성이 요구된다. 때론 계곡에 몸을 담글 수 있다. 자연스럽게 물놀이도 즐길 수 있다. 수타사계곡은 험하지 않고 코스가 짧아 초보자의 물길 트레킹 코스로 제격이다.

100대 명산에 이름을 올린 홍천 공작산(887m)은 높이보다 품이 넓은 산이다. 공작이 날개를 펼친 산세인데, 왼쪽 날개 품에 수타사계곡이 안겨 있다. 수타사 주변으로 홍천군에서 만든 ‘수타사 산소길’이 나 있다. 숲길과 계곡이 어우러지는 산책 코스로 가볍게 걷기에 좋은 길이다.

수타사계곡 물길 트레킹은 수타사에서 약 8㎞쯤 상류 쪽에 있는 노천1교부터 계곡을 따라 수타사까지 걷는다. 혼자보다는 여러 명이 함께하는 게 좋다. 여행작가학교 동문과 함께 노천1교에서 물길 트레킹을 시작했다.

다리에서 이어진 둑길을 10분쯤 내려가 작은 농가를 만났다. 비닐하우스가 있고 나무에 그네를 달아 놨다. 여기에서 과감하게 계곡으로 들어간다. 시나브로 신발이 젖고 물의 서늘한 감촉이 느껴진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물에 들어가기 전의 걱정은 야릇한 흥분으로 바뀌었다. 콸콸~ 쏴~ 우당탕~ 맑은 계곡은 곳곳에서 거친 숨을 내쉰다.

계곡 물길 트레킹을 물살을 헤치고 걷지만, 물살이 거친 곳은 수풀을 헤치거나 산길로 우회해야 한다.

두 사람이 미끄러졌다. 초반에는 조심해야 한다. 계곡 안에 이끼가 껴 미끄러운 곳이 군데군데 있다. 스틱으로 중심을 잡으며 천천히 걸어야 한다. 잠시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다. 물살이 거친 구간을 지나 바위 위에 올라서자, 앞쪽으로 모래가 깔린 잔잔한 계곡이 펼쳐진다. 같은 계곡인데도 어떤 곳은 거칠고 어떤 곳은 낙원처럼 고요하다. 쌓인 모래를 지그시 지르밟는 느낌이 통쾌하다.

홍천 수타사계곡의 절경으로 꼽히는 귕소. '귕'은 소 여물통인 구유를 말한다. 계곡을 에워싼 암반지대가 여물통을 닮았다.

바위에 돌단풍 가득한 수려한 암반이 나온다. 여기가 수타사계곡의 절경인 ‘귕소’다. ‘귕’은 구유를 말한다. 아름드리 통나무를 파서 만든 소 여물통이다. 미끈한 암반의 생김새가 영락없이 길고 거대한 구유 같다. 물과 바위, 그리고 시간이 만든 걸작이다. 귕소는 하류 쪽에 하나가 더 있다.

귕소를 지나면 계곡 풍광은 더욱 수려해진다. 인간의 손때가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흘러가는 물을 가만히 바라본다. ‘툭’ 뭔가 끊기는 소리가 들렸다. 내 안의 근심이 끊긴 소리다. 근심은 스르르 물에 풀려 아래로, 아래로 흘러간다. 내 인생도 이렇게 평화롭게 흘러가길 바라본다.


수타사계곡에서 만난 뭇 생명


홍천 수타사계곡은 깊은 산속에 숨은 계곡이지만, 물이 깊지 않아 물길 트레킹에 좋다. 첨벙첨벙 계곡을 걷는 재미가 크다.
계곡에 사는 다양한 생물을 만나는 것도 큰 기쁨이다. 다슬기 무리가 물가 바위에 붙어 있다. 잠시 다슬기 해장국이 떠올랐지만, 잘 살라고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물속에서 꼬물거리는 무당개구리에게는 인사를 건넸다. 흰뺨검둥오리 가족도 만났다. 어미를 부지런히 쫓아다니는 여덟 마리 새끼들의 귀여운 몸짓에 웃음이 절로 났다.

신봉교가 가까워지면 물살이 거세다. 이곳은 계곡 오른쪽의 오솔길로 우회해야 한다. 수풀이 우거졌지만, 길의 흔적이 뚜렷하다. 한동안 산길과 수로를 번갈아 가면 도로를 만난다. 신선의 세계에서 인간 세상으로 들어온 것 같다. 신봉교를 지나면 ‘둘레길 쉼터’란 제법 큰 건물이 보인다. 평일은 닫았지만, 주말과 성수기에는 영업한다. 잠시 논길을 지나면 호젓한 숲길이 나온다. 야자수 매트가 깔린 길이 비단처럼 부드럽게 느껴진다. 귕소 출렁다리를 건너면 수타사 산소길로 접어든다.

수타사계곡 물이 제일 맑은 곳에 다슬기가 떼 지어 산다.

출렁다리 아래쪽의 귕소는 꼭 들러봐야 한다. 설악산 계곡처럼 매끈한 암반 지대가 펼쳐진다. 여기서 젖은 신발 대신 여분으로 가져온 운동화로 갈아 신으면 금상첨화다. 이제 물에 빠질 일이 없다. 휘파람 불며 조붓한 산길을 따르면, 커다란 너럭바위인 용담 위에 올라선다. 바위 아래로 작은 폭포와 드넓은 소가 펼쳐진다. 수타사계곡의 절경 중 하나인 용담이다. 바위 아래 박쥐굴에서 이무기가 용으로 승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쏴~ 거친 물이 쏟아지는 용담의 작은 폭포를 보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피라미로 보이는 작은 물고기들이 뛰어오르다가 폭포에 휩쓸려 사라진다. 제 몸을 비튼 탄력으로 튀어 올라 몸이 부서져라 장벽 같은 폭포에 부딪히는 모습이 안쓰럽고 감동적이다.

수타사계곡 트레킹은 수타사에 닿으면서 마무리된다. 천년고찰 수타사 구경은 덤이다.

수타사로 건너가는 공작교 위에 섰다. 마지막으로 물끄러미 계곡을 바라본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은 “나는 강물에 사로잡혔다”라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끝났다. 수타사계곡 트레킹의 마무리는 그 말을 약간 바꿔 쓰고 싶다. “나는 완전히 물길에 사로잡혔다”

■ 수타사계곡 물길 트레킹 정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수타사계곡 물길 트레킹은 경험 있는 리더와 동행하는 게 좋다. 혼자는 금물이고, 여럿이 어우러져 걷는 걸 추천한다. 출발점은 홍천군 영귀미면 노천리의 노천1교다. 대중교통이 불편하므로 차 한 대는 수타사 주차장에 놓고, 다른 한 대를 이용해 노천1교로 간다. 코스는 노천1교~귕소~신봉교~수타사, 거리는 약 8.5㎞, 4시간쯤 걸린다. 노천1교~신봉교 약 6㎞ 구간이 무주공산의 비경 지대다. 물길 걷기는 이 구간이 제격이다. 거친 물살과 험준한 바위 지대가 나오면 계곡 옆으로 우회하는 게 안전하다. 신봉교~수타사 구간은 수타산 산소길이 나 있어 걷기 편하다. 물길을 걸을 때는 등산화를 신고 스틱으로 중심으로 잡는 게 정석이다. 아쿠아 슈즈도 괜찮지만, 바닥이 얇아 충격 흡수가 안 되는 단점이 있다.

진우석 여행작가 mtswamp@naver.com
시인이 되다만 여행작가. 학창시절 지리산 종주하고 산에 빠졌다. 등산잡지 기자를 거쳐 여행작가로 25년쯤 살며 지구 반 바퀴쯤(2만㎞)을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걷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캠프 사이트에서 자는 게 꿈이다. 『대한민국 트레킹 가이드』 『해외 트레킹 바이블』 등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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