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호 논설위원이 간다] “무능한 정부는 이익집단에 포획돼 이권 추구 동기 조장”

서경호 입력 2023. 6. 8. 00:51 수정 2023. 6. 8.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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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 탄생 300주년 기념행사


서경호 논설위원
“애덤 스미스가 지금 살아있다면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인공의 손(artificial hand)’에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기타 고피나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부총재가 5일(현지시각) 영국 글래스고 대학에서 열린 애덤 스미스 탄생 300주년 기념행사에서 ‘인공의 손’의 힘과 위험: 애덤 스미스의 사상으로 본 AI’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애덤 스미스가 공부하고 강의했던 글래스고 대학에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 강연을 비롯해 애덤 스미스의 현대적 의의를 고민하는 다양한 행사가 5~10일간 열리고 있다.

「 국부는 사람들 누리는 생활수준
‘인공의 손’ AI, 생산성·국부 증대

자유방임, 이기심만 강조했다?
좌파도 우파도 애덤 스미스 오해

특권층 이익만 대변한 중상주의
우리 사회 특수 이익집단과 겹쳐

엔비디아 간접 거론 IMF 수석부총재

2008년 영국 에든버러에서 애덤 스미스 동상이 제막됐다. 애덤 스미스는 에든버러에서 사망했다. [사진 애덤 스미스 연구소]

고피나스 수석부총재는 AI가 향후 10년간 세계 국내총생산(GDP)을 7%(약 7조 달러) 높일 것이라는 골드만삭스의 분석을 인용하며 생산성을 높이는 AI의 장점부터 거론했다. 7조 달러는 인도와 영국 경제를 합친 것보다 더 크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국부(國富)는 사람들의 생활 수준으로 결정된다고 했다. 생산성을 높여야 생활 수준도 올라간다. AI는 최근 10년 넘게 하락하고 있는 세계 생산성 증가율 추세를 반전시킬 수 있다.”

특히 신규 노동자와 저숙련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이는 효과가 크다고 했다. 경험 많고 생산성 높은 노동자의 기술이 AI 덕분에 조직 전체로 확산하기 때문이다. 중간 수준의 기술자를 실직으로 내몬 자동화와 달리, 고연봉 직종의 임금을 끌어내려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도 소개했다.

반면, 위험요인도 있다. 경제학자 대런 애쓰모글루가 지적했듯이 AI가 보다 생산적인 일거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기존 일자리만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 AI의 정보 왜곡 우려도 지적됐다. 엔비디아를 대놓고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AI용 반도체칩 시장에서 한 회사가 지배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 “애덤 스미스는 몇몇 소수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경제에 관심이 있었다. 무조건 수출을 늘리기 위해 무역 독점권을 집중시켰던 당시 영국의 중상주의 정책을 애덤 스미스가 비판했던 이유다.”

고피나스 수석부총재는 “애덤 스미스도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보이지 않는 손’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깨달았을 수 있다”며 “AI가 사회의 이익에 복무할 수 있도록 건전하고 스마트한 규제를 시급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 지능을 특별하게 만들었던 우리의 모든 공감 능력과 독창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했다.

애덤 스미스 탄생 300주년 행사는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학계를 중심으로 올해 들어 관련 행사가 잇따라 열렸다. 7일 한국자유주의학회와 한국경제신문이 주최한 ‘자유의 길: 애덤 스미스와 한국 사회’ 심포지엄을 지켜봤다.

불완전한 지식으로 시장 질서 재단

7일 서울에서 열린 300주년 심포지엄에서 이먼 버트럴 애덤 스미스 연구소 소장이 화상으로 강연하고 있다. 서경호 기자

민경국 한국자유주의학회 회장(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은 개회사에서 “인격·소유·계약의 존중을 기반으로 하는 ‘자연적 자유 체제’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평화, 번영을 안겨준다”며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자생적 질서’의 놀라움을 알아채지 못하고 오히려 불완전한 지식에 기대서 시장의 자생적 질서를 재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성·자유·시장을 모르기는 좌파든 우파든 마찬가지”라며 “좌파는 물론 우파도 애덤 스미스를 자유 방임, 교조적 자유주의와 이기주의를 단호히 옹호한 인물로 규정하는 잘못을 범했다”고 말했다.

그는 첫 번째 세션 발제에서 『도덕감정론』은 이타심을, 『국부론』은 이기심을 강조해 서로 모순 관계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도덕감정론』은 ‘애덤’이 쓰고 『국부론』은 ‘스미스’가 썼다는 풍자까지 있더라. 시장경제는 이기심이 아니라 정의가 본질이다. 정의는 자유·재산·명예를 침해하지 않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예의범절, 공손함, 인격·소유 존중, 약속 이행 같은 도덕 규칙과 가격 구조가 질서를 이끌어 낸다.”

기타 고피나스

소수만 특권을 누렸던 중상주의를 비판한 애덤 스미스처럼 이날 토론회에서도 특권집단의 경제적 지대 추구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의사, 변호사 같은 직업 면허제도의 인위적 경쟁 제한 얘기다. 최창규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진입 장벽을 제도적으로 어렵게 만들어 혁신을 방해하고, 이익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동기가 항상 존재한다”며 “특정 직업군에서 일할 사람이 부족하거나 사회 통념상 수입이 지나치게 높다면 공급 부족이 원인인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지적했다.

민경국 교수는 “무능한 정부는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할 줄도, 자유로운 거래를 허용할 줄도 모른다”며 “그런 정부는 이익집단에 의해 포획되거나 이권 추구(지대 추구) 동기를 조장해 결국에는 경제 주체들의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저축할 동기까지 소멸시킨다”고 말했다.

법관 보수를 소송 당사자가 준다면

“애덤 스미스는 골동품이 아니다. 시공간을 초월해 현대적 의의가 있다”는 민 교수의 말에 공감했다. 애덤 스미스가 강조했던 ‘특권층이 아닌, 모두를 위한 경제’는 지금, 여기에서 여전히 과제다. 직역 이기주의에 빠져 있는 의사단체가 애덤 스미스가 진저리를 쳤던 그 시절의 길드가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심지어 애덤 스미스는 법관들이 국가가 아니라 소송 당사자들로부터 보수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다. 그래야만 법관도 자기 이익 때문에 자신에게 할당된 소송을 신속히 처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고질화한 재판 지연으로 재판받을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는 우리 국민을 앞에 두고 하는 말 같다.

이승훈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애덤 스미스가 지금의 한국을 봤다면 난감했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개입해 경제성장을 주도했고, 국가 간 분업을 무시하고 중공업을 포함해 수출 주도형 경제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쓰던 해,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이 세상에 나왔다. 산업혁명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지 알기 힘들었을 것이다. AI 혁명 앞에 있는 우리도 그 시절 애덤 스미스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 평생 독신…기이한 행동 탓에 ‘얼뜨기’ 조롱 듣기도

애덤 스미스

애덤 스미스(1723~1790)는 스코틀랜드 커콜디에서 유복자(遺腹子)로 태어났다(생일이 알려지지 않아 탄생 300주년 행사는 그가 세례받은 6월 5일에 맞춰 열렸다). 옥스퍼드대에 장학생으로 들어갔지만,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책만 읽으며 보냈다. 1751년 계몽운동의 중심지였던 글래스고대에서 논리학 강의를 하게 됐고 이어 도덕철학 강좌도 맡았다. 강의는 잘했지만 기이한 걸음걸이와 말투, 건망증 때문에 얼뜨기라는 조롱을 듣기도 했다.

1759년에 출간한 『도덕감정론』으로 명성을 떨쳤다. 이기적인 인간이 타인을 만족시키는 도덕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데엔 사람들이 일종의 ‘공명정대한 관찰자’를 항상 염두에 두기 때문이라고 썼다. 1764년 교수를 그만두고 귀족 자제의 개인교사가 돼 유럽을 여행하며 프랑스 중농주의자와 교유했다.

1776년 『국부론』을 썼다. 원제는 ‘모든 국민의 부의 성질과 원인에 대한 연구’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건 정육점 주인이나 양조업자, 제빵업자의 자비심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이익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자주 인용되는 유명한 문장이다.

스미스는 16~18세기에 득세했던 중상주의를 도마 위에 올렸다. 중상주의는 왕실에 충성하는 소수에게 독점권과 특허를 나눠주고 국부(國富)의 척도인 금을 확보하기 위해 꾸준히 무역 흑자를 내며 식민지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스미스는 국민 전체가 소비하는 상품과 서비스가 국부라고 설파했다. 국민의 생활 수준이 진정한 국부이고 소비자의 입장에서 측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스미스는 반(反)노동도 반자본도 옹호하지 않았다. 그에게 편견이 있었다면 그것은 소비자 편을 든 것이었다. 그는 ‘소비는 모든 생산의 유일한 목표이며 목적’이라고 썼고, 소비 대중의 이익보다 생산자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체제를 혹평했다.”(『세속의 철학자들』)

말년에 세상의 존경을 받으며 영예롭게 살았다. 『국부론』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덴마크어로 번역되는 걸 지켜봤다.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아흔 살까지 생존한 모친을 모시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친구에게 자신의 서재를 보여주며 “나는 내 책의 애인일 따름”이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이러니한 일은 179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13년간, 스미스가 관세청장을 지냈다는 사실이다. 그는 많은 수입품들을 슬쩍 눈감아줘 국부를 증가시키는 데 기여했다.”(『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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