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의 과학 산책] 뉴턴의 조약돌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를 꼽으라면 아이작 뉴턴(1643~1727)을 빼놓기 어려울 것이다. 불우한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봉사장학생으로 입학하였다. 이항전개 공식의 일반화와 미적분학에 관한 연구를 인정받아 석사학위를 받은 후 불과 1년 만에 26세의 나이로 케임브리지 대학교 수학 교수로 임용됐고, 케임브리지를 떠날 때까지 30년 동안 세계사를 바꿔놓은 혁명적 발견을 이어갔다.
미적분학과 기하학에 크게 기여했고, 수학을 통한 자연에 대한 이해라는 데카르트와 갈릴레오의 정신을 계승해 역학·광학·천문학 등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50세를 넘기고 얼마 되지 않아 신경쇠약을 겪은 후 연구를 접었는데, 재무부 장관이던 친구의 제안을 수용하여 조폐국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뉴턴은 조폐국에서 약속된 연봉의 반도 받지 못했고 하는 일 없이 편한 자리라는 설명과 달리 엄청난 업무량에 시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을 인정받아 이내 국장으로 승진했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30년간 성공적으로 근무했다. 수학자로서 단련된 인내심과 집중력을 바탕으로 주조법을 혁신하고 위폐를 적발했다. 오늘날 오백원 동전 옆면의 톱니무늬는 불량 동전 유통을 막기 위한 뉴턴의 노력 중 하나이다.
노년에 뉴턴은 자신의 삶을 관조하며 ‘진리의 바닷가를 거닐며 매끈한 조약돌을 줍는 순진한 아이’와 같았다고 표현한 바 있다. 미적분학의 영어 표현은 ‘calculus’인데 이는 라틴어로 본래 조약돌이라는 뜻이다. 고대인들이 조약돌을 갖고 셈하던 관습에서 유래하여 계산법이라는 의미도 갖게 되었고, 근대 이후 라이프니츠의 제안에 따라 미적분학을 뜻하는 단어로 정착됐다. 뉴턴이 집어 든 조약돌은 과학혁명을 이끌었고 오늘날 우리가 세상을 보는 틀을 형성했다. 세상을 바꾸는 건 결국 바닷가에서 예쁜 조약돌을 줍는 아이의 마음이 아닌가 싶다.
김영훈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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