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BTS처럼…금융허브 구축 대신 해외 진출
정부가 3년마다 기본계획을 세우고 20년째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변변한 성과는 내지 못했다. 매번 나오는 대책은 대동소이하다. 이런 정책은 폐지해야 할까, 아니면 좀 더 파격적인 대책을 내놔야 할까. 한국 사회에 이런 과제가 한둘이겠느냐마는, 이번에는 노무현 정부 때 시작해 윤석열 정부까지 이어지고 있는 금융중심지 정책 이야기다.
정부가 2003년 동북아 금융허브 로드맵을 제시한 지 올해로 20년이 됐다. 각종 인프라가 확충된 것은 사실이지만, 구체적인 성과는 없다는 게 주된 평가다. 글로벌 금융회사의 국내 진입은 정체된 지 오래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지난달 말 금융중심지 관련 회의에서 “당초 목표했던 금융허브가 되었다고 말하기에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융중심지 정책은 애초부터 도전적인 과제였다. 최근 홍콩에 이은 아시아 금융중심지로 위상을 굳히고 있는 싱가포르와 서울·부산을 비교해 봐도 그렇다. 풍부한 사업 기회, 자본시장 친화적인 법 규정 등 금융중심지의 요건으로 꼽히는 항목 중 서울·부산이 싱가포르에 앞서 있다고 할 만 게 딱히 없다. 법인세나 소득세 등 세제도 마찬가지다. 싱가포르는 금융자본에 각종 세금을 면제해주는 등 조세회피처급 혜택을 주고 있다. 후발 주자인 한국이 싱가포르에 준하는 수준의 조세 혜택이라도 주지 않는 한 금융중심지는 언감생심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 싱가포르처럼 금융산업 육성을 위해 파격적인 조세 혜택을 부여하자고 하기도 힘들다. 한국은 반도체 등 금융보다 지원이 더 시급한 분야가 많아서다.
글로벌 금융중심지 도약이 헛물을 켜다 보니 금융중심지 정책은 금융기관 나눠 먹기로 변질했다. 부산만 해도 산업은행에 이어 수출입은행 등 정책 금융기관의 추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이밖에 한국투자공사 등에 군침을 흘리는 곳도 많다. 모여도 힘든 싸움인데, 균형발전을 위해 찢어 놓자는 주장이 힘을 더 받다 보니 금융중심지만 더 멀어졌다.
금융위원회는 이달 내에 디지털 금융 지원, 규제·제도 정비,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 활성화 등을 골자로 한 ‘6차 금융중심지 기본계획’을 발표한다. 3년 전에 발표된 5차 기본 계획과 대동소이하다. 그나마 변화가 있다면 국내 금융사의 해외진출에 좀 더 무게가 실렸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주문에 금융당국 수장까지 나서 해외 세일즈를 다니고 있다. 금융사들도 해외 진출에 적극적이라고 한다. 어차피 조세개혁 등 과감한 규제 혁신도 금융기관을 모으지도 못할 거라면, 국내 주요 금융사의 활약에 기대를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K팝과 K드라마가 한국을 문화 허브로 만들었듯이 금융산업에서도 ‘BTS(방탄소년단)’가 나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안효성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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