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look] 낭만닥터 김사부냐, 현실닥터 차진만이냐

2023. 6. 8.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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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부(한석규·왼쪽)는 젊은 시절 라이벌이자, 원칙주의자인 차진만(이경영)과 의술과 관련한 가치관 차이로 종종 대립한다. 사진 SBS

2016년 ‘낭만닥터 김사부’라는 의학드라마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이 작품이 시즌3까지 이어질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벌써 제목에서부터 ‘낭만’ ‘사부’라는 표현이 들어 있어, 리얼리티를 특히 강조하는 의학드라마와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을 줬다. 게다가 2016년이면 흉부외과부터 신경외과 등등 다양한 과들을 소재로 하는 의학드라마가 거의 다 나왔고, 특히 ‘낭만닥터 김사부’가 모델로 삼은 실제 의사 이국종 교수의 이야기도 이미 이를 소재로 하는 ‘골든 타임’(2012)이 방영돼 긴박하게 돌아가는 응급실 이야기를 보여준 바 있었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낭만닥터 김사부’는 시청률 29%(닐슨 코리아)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무엇보다 고무적이었던 건 애초 걱정됐던 ‘낭만’ ‘사부’ 같은 표현이 김사부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분명히 세웠고, 또한 그가 활동하는 ‘돌담병원’이라는 공간이 마련됐다는 점이었다. 이건 이 드라마가 시즌제로 가는 중요한 발판이 됐다. 시즌제 드라마는 새로운 시즌으로 이어져도 연속성이 느껴지고 무엇보다 시청자들이 계속 매력을 느껴 찾아보게 만드는 인물과 배경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빌리 조엘의 ‘더 스트레인저’를 카세트로 듣는, 레트로적 낭만을 가진 김사부(한석규)라는 인물은 의료행위에 있어서도 ‘낭만’을 들이밀었다. 부유한 이들은 죽을병도 고치지만 가난한 이들은 가벼운 병으로도 죽어나가는 자본화된 의료 현실 앞에서, 김사부는 환자의 생명만을 바라보는 다소 낭만적인(어찌 보면 비현실적인) 판타지를 보여준다.

시즌1이 이러한 의사의 등장을 보여줬다면, 시즌2는 이를 지역의 자그마한 거점병원으로서의 돌담병원과 도시의 자본화된 거대병원 사이의 대결로 그렸다. 통쾌한 돌담병원의 승리를 보여주는 그 일련의 과정 속에서 김사부는 비정한 현실을 일갈하는 ‘시대의 사부’로 등장해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사실 시즌제 드라마는 우리에게도 어느 정도 익숙한 개념이 됐다. 하지만 속편처럼 여겨지는 시즌2는 그렇다 쳐도, 시즌3는 아직까지 우리에게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즌3로 돌아온 ‘낭만닥터 김사부’는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매력적인 캐릭터와 배경을 넘어서는 서사의 진화 또한 담겨있기 때문이다.

4월말 첫 전파를 탄 ‘낭만닥터 김사부 3’는 이전 시즌과는 또 다른 세계를 내놓는 진화를 선보였다. 그건 바로 ‘가치관의 대결’이다. 선악 구도가 아닌 가치관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시즌3에는 시즌1, 2의 도윤완(최진호, 출세지향적인 거대병원 원장) 같은 분명한 빌런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김사부의 ‘낭만’이 자칫 의사들을 혹사시키고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 수 있다며 이를 반대하는 차진만(이경영)이라는 의사가 등장한다.

젊은 시절 라이벌이었지만 실력은 뛰어나 김사부의 추천으로 돌담병원 외상센터장으로 오게 된 차진만은 시스템과 매뉴얼, 원칙을 강조한다. 그런데 그건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는 의사들의 헌신은 그들의 개인적 삶을 희생시키기도 하고, 또 환자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김사부의 낭만은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상황 속으로 의사들을 뛰어들게 만든다. 차진만이 강조하는 매뉴얼은 중요하지만 이것이 외상센터라는 특수한 상황에도 적용되는 건 아니다. 이른바 김사부의 ‘낭만’이 필요한 이유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탈북자들의 치료를 둘러싼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김사부는 정치적으로 예민한 상황이라며 치료를 허락하지 않는 함장에게 “그런 것까지 의사가 다 고려해야 하냐”고 일갈한 뒤 치료를 시작한다. 그에게 중요한 건 어떻게든 위급한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 뿐이다. 그런 ‘낭만’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이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거듭해도 여전히 기대를 갖게 만드는 매력적인 캐릭터와 분명한 배경, 여기에 ‘낭만닥터 김사부 3’는 가치관의 대결이라는 서사의 진화까지 더해 놓았다. 이제 우리에게도 정착 단계에 들어와 있는 시즌제 드라마들로서는 그래서 ‘낭만닥터 김사부’가 걸어온 길들이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훗날 시즌제 드라마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좋은 예로서 말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백상예술대상·대한민국예술상 심사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저서로 『드라마 속 대사 한 마디가 가슴을 후벼팔 때가 있다』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등이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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