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북한 vs 일본의 지진…재난 대비, 디테일서 승부 난다 [임상균 칼럼]
도쿄에 특파원으로 거주할 당시 제법 큰 지진이 오면 한국의 지인들로부터 안부 인사가 빗발친다. “괜찮냐”고. 잠시 흔들리고 말았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곳에 어떻게 사냐”고 걱정을 해준다.
반대로 북한이 미사일만 쏘면 일본 사람들은 난리가 난다. 곧 전쟁이 날 것 같은 분위기다. 같은 시간 한국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생활이 이어진다. 리스크가 상수가 되면 더 이상 위험으로 다루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5월 31일 오전 6시 32분, 서울 시민들은 북한 발사체 경계경보로 대혼란에 빠졌다. 북한이라는 리스크가 대수롭지 않았는데, 이날 울린 사이렌과 문자는 실제 상황이었다. “대피할 준비를 하라”는데 어디로 대피해야 할지 아무도 몰랐다. 실제로 겪어보니 그동안 위기의식이 얼마나 한심했는지 절감하게 됐다.
반대로 일본이 지진을 대하는 태도는 다르다.
매일 저녁 5시가 되면 동네 곳곳에 설치된 대형 스피커에서 차임벨이나 음악이 흘러나온다. 동네 아이들에게 귀가 시간을 알리는 것 같지만 실제는 리스크 대비 시스템 점검이 목적이다. 지진이나 쓰나미가 닥칠 경우 마을 주민에게 대피경보를 내려야 하는데, 이를 알릴 스피커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매일 체크를 하는 것이다. 그 소리를 듣는 주민들은 공공이 매일 지켜주고 있다는 안도감도 갖게 된다.
일본에서는 인적이 드문 길가에 음료수 자판기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하루에 버스가 한두 번 오는 정거장인데, 자판기가 2대 정도 세워진 경우도 많다. 상업적 목적이 우선이겠지만 남다른 기능도 한다. 야간에는 주변을 비추는 가로등 기능을 한다. 특히 지진, 태풍 등 재난으로 마을이 고립될 경우 해당 자판기는 비상 음료수 공급처로 변신한다.
일본 초등학교에는 자리마다 의자에 두툼한 비닐 방석이 깔려 있다. 평소에는 엉덩이가 아프지 않도록 하는 방석이지만 지진 때는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모가 된다. 펼치면 자동으로 고깔모자처럼 변신해 머리 위에 뒤집어쓸 수 있다.
일본 초등학생들은 모두 란도세르라는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닌다. 가격은 평균 5만엔(약 50만원)을 넘는다. 비싼 것은 수백만원짜리도 있다. 이리 비싸고 큰 가방을 초등학생들이 메게 하는 이유는 안전 때문이다. 빳빳한 가죽으로 만들어진 사각형의 가방이기 때문에 아이가 넘어지더라도 쿠션 작용을 한다. 특히 지진이 발생했을 때 머리를 감싸고 웅크린다면 상부에서 물체가 떨어져도 란도세르가 어느 정도 보호를 해줄 수 있다.
위기와 재난에 대한 대비는 구체적이고 세심해야 한다. 정보 부재와 의심이 혼란을 극대화한다. 그래서 심리적 안정이 필수며, 이는 디테일한 대비 태세로부터 나온다.
5월 31일 일본 오키나와 주민들이 받은 문자에는 북한에서 미사일이 발사된 것으로 보이며, 건물 안 또는 지하로 대피하라는 구체적인 내용이 담겼다. 밑도 끝도 없이 대피 준비를 하라는 경보와는 천양지차였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북한 리스크에 얼마나 무감각했는지 반성하는 기회가 돼야 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2호 (2023.06.07~2023.06.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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