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켈리 연타석 홈런…“제품이 곧 마케팅”

나건웅 매경이코노미 기자(wasabi@mk.co.kr) 2023. 6. 7.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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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업계 황금손…오성택 하이트진로 최고마케팅책임자(CMO)

오성택 하이트진로 마케팅 실장(상무·50)은 주류업계에서 ‘마이다스의 손’으로 통한다. 2017년 하이트진로 최고마케팅책임자(CMO)로 선임된 후 그가 손대는 제품마다 전에 없는 히트를 기록한 덕분이다.

이제는 하이트진로 대표 맥주로 거듭난 ‘테라’에 이어 두꺼비 캐릭터 마케팅을 앞세운 소주 ‘진로이즈백’으로 2019년 연타석 홈런을 쳤다. 올해 3월 하이트진로가 ‘30년 맥주 전쟁을 끝내겠다’며 야심 차게 선보인 레귤러 맥주 ‘켈리’ 역시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 작품이다.

켈리는 종전 테라가 갖고 있던 ‘최단 기간 100만상자 판매’ 기록을 갈아치우는 등 승승장구 중이다. 100만상자 판매까지 걸린 시간은 36일. 1초당 10병이 넘게 팔려 나간 셈이다.

1973년생/ 금강기획/ TBWA코리아/ 2009년 하이트진로 마케팅 팀장/ 2017년 하이트진로 마케팅실 상무(현)
Q. 다양한 분야에서 광고·마케팅 경력을 쌓아왔는데. 마케팅 관점에서 ‘주류(술)’가 다른 분야와 차별화되는 점이 무엇일까.

A. 상대적으로 ‘긴 호흡’으로 마케팅을 이끌어야 한다는 점이 가장 다르다. 하이트진로 소주나 맥주는 최소 10년 이상 미래를 내다보고 만드는 제품이다. 과자나 음료 같은 먹거리처럼, 1년에도 몇 개씩 신제품을 찍어내는 시스템이 아니다.

같은 맥락에서 주류 마케팅의 시작은 제품에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것이다. ‘유행’이나 ‘트렌드’보다 훨씬 더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개념이다. 예를 들어 ‘생딸기 빙수’가 인기라고 해보자. 이때 딸기는 유행, 과일은 트렌드, 웰빙이 시대정신이다. 10년 이상 지속될 그리고 현시대를 관통하는 메가 트렌드를 포착하고 제품에 녹여내는 것이 중요하다.

Q. 이미 나온 제품에 맞춰 마케팅을 하는 게 아니라, 제품 기획 단계에서부터 마케팅이 관여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A. 정확하다. 마케팅의 핵심은 ‘제품 판매를 위한 모든 활동’이다. 기업과 분야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하이트진로는 마케팅 범위가 굉장히 넓다. 세부적으로는 맥주 맛과 탄산감, 병 모양과 색깔까지 관여한다.

Q. 신제품을 내놓을 때 마케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 과정이 궁금하다.

A. 어떤 신제품을 만들지 ‘제품 콘셉트 기획’부터가 시작이다. 앞서 말했듯 ‘시대정신’을 포착하는 게 중요하다. 마케팅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현장을 발로 뛰는 영업사원들과 미팅을 자주 하고 전국을 돌면서 상권 분석을 진행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2019년 ‘테라’가 갖고 있는 시대정신은 ‘청정’이었다. 당시 미세먼지가 워낙 심했고 인공적으로 탄생한 무언가를 거부하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 있었다.

이렇게 뽑은 ‘청정’이라는 키워드에 맞춰 제품화에 들어간다. 맥주 핵심 원료인 맥아는 공기 청정 국가인 ‘호주 맥아’를 사용하기로 했다. 1년간 호주와 한국을 왔다 갔다 하며 연구를 거듭한 끝에 테라에 호주 맥아를 쓸 수 있었다. 탄산도 인공 탄산을 넣지 않고 자연적으로 발생한 탄산만 쓰도록 했고 병 색깔 역시 청정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초록병을 사용했다. 광고에는 지금껏 스캔들이 없고 청정한 이미지를 줄 수 있는 모델 ‘공유’를 발탁해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마케팅 하면 흔히 먼저 떠올리는 SNS 마케팅이나 팝업 스토어, 프로모션 같은 건 상대적으로 부차적인 내용이다. 현란한 마케팅은 초반에는 성공할 수 있지만 롱런 브랜드에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품이 곧 마케팅’이다.

Q. 이번에 나온 켈리는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했나.

A. 켈리 시대정신은 ‘다양성’이다. 최근 소비자 기호가 다양해지고 색다름을 추구하는 이가 늘어났다. 지난해 맥주 신제품이 120개 넘게 쏟아져 나온 배경에도 ‘다양성’이라는 시대적 요구가 자리한다고 본다.

하지만 레귤러 맥주 시장에서는 신제품이 근래 하나도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대중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지향하기 어려운 탓이다. 고민 끝에 하이트진로가 내놓은 답은 ‘차별성’이다. 맥주를 마실 때 소비자가 원하는 두 가지, 즉 ‘부드러움’과 ‘시원함’을 동시에 잡아보기로 하고 제품 개발에 나섰다. 켈리를 대표하는 문구 역시 ‘부드럽게 강타한다’로 정했다. 배우 손석구를 광고 모델로 기용한 이유도 비슷하다.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반전 매력을 갖춘 몇 안 되는 모델이기 때문이다.

먼저 ‘부드러움’은 원재료 혁신을 통해 구현했다. 전분을 섞지 않고 덴마크 맥아 100%로 만든 ‘올몰트 맥주’다. 덴마크 맥아는 해풍을 맞고 자라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시원함’은 탄산감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 7℃에서 한 번 그리고 얼음이 얼기 직전 온도인 영하 1.5℃에서 한 번 더 숙성하는 ‘더블 숙성’으로 강렬한 탄산을 이끌어냈다.

Q. 병 색깔도 특이하다. 여기에도 어떤 의미가 담긴 것인지.

A. 기존 맥주병을 따라 익숙한 갈색으로 하면 차별성에 어긋나고, 그렇다고 투명하게 가자니 강렬한 느낌이 떨어진다. 맥주 시장에 없던 새로운 ‘호박색(앰버)’ 병을 가져온 이유다.

마케팅은 대중 눈높이보다 딱 반걸음 앞서 나가 있는 게 필요하다. 한 걸음, 두 걸음도 아닌 딱 반걸음이다. 고객이 ‘새롭다’고 느끼지만 동시에 낯설거나 충격적으로 다가와선 안 된다. 그 선을 잘 지키는 감각이 마케터에게 굉장히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끌로 파는 노력’이다. 광고·마케팅업계에선 흔히 쓰는 표현인데, 과하지 않으면서도 뾰족한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계속 새로운 걸 추구하는 과정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켈리는 마음에 드는 색깔이 나올 때까지 유리병 샘플 테스트만 159종 진행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전에 없던 맛을 내기 위한 주질 테스트용 시제품도 128개나 만들었다.

Q. ‘끌로 파는 노력’ 외에 마케터로서 꼭 필요한 역량이 있다면.

A. 흔히 마케터라고 하면 번뜩이는 ‘창의성’이나 시장을 관찰하는 ‘분석력’ 같은 역량이 중요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훨씬 더 중요한 역량이 많다.

첫째는 의외로 ‘인간성’이다. 특히 영업사원과 소통이 필수인 ‘주류 회사’에서는 더욱 중요한 역량이다.

둘째는 ‘자기헌신’이다. 앞서 말한 ‘끌로 파는 노력’의 연장선이다. 마케터 역시 일을 열심히 해야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 단순히 근태 관리를 잘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행동으로 보이는 자기헌신이 아니라 ‘생각의 헌신’이다. 마케터는 일감이 온 세상에 널려 있다. 예를 들면 ‘저 사람은 켈리 마시면서 인상을 왜 찡그릴까’ ‘이 주점에는 왜 켈리가 안 들어와 있을까’ 같이 우리 제품과 관련된 것부터 시작해 최근 인기 있는 제품이나 트렌드에 이르기까지, 마케팅과 관련된 소재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몸은 사무실에 없더라도 현재 본인이 있는 곳에서 프로젝트에 대한 고민을 계속 이어나가면 이런 고민이 모아져 히트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온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2호 (2023.06.07~2023.06.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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