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살이] 리더가 이러면 1%의 공감도 얻기 힘들다

남희한 입력 2023. 6. 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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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을 땐 '우리'였다가 문제가 생기면 '너희'... 고무줄 같은 '우리'의 범위

3040시민기자들이 쓰는 달콤살벌한 순도 99.9%의 현실 직장인 이야기. <편집자말>

[남희한 기자]

주인의식은 중요하다. 우리는 주인의식을 바탕으로 회사 일을 조금 더 애정을 가지고 하게 된다. 그리고 가치를 부여한다. 내가 하는 일로 누군가가 편해지고, 내가 하는 일로 누군가의 안전이 보장되고 윤택해진다는 생각은 일을 보람되게 만든다.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의미를 찾아 살아가는 인간에게 그래서 중요하다.

'회사의 일'을 '내 일'로 생각하며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열심히 하는 태도. 너무 좋다. 그렇게 일했을 때 일의 성과도 좋고 보람도 생긴다. 그런 태도로 일하는 동료를 보면 괜히 뿌듯하고 믿음이 간다. 자의를 통해 이뤄지는 노력은 그래서 값지다.

솔직히 '내가 일하는 회사'가 '내 회사'는 아니다. 이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는 자명한 진리다. 그래서 좋은 마음을 한껏 발휘해 생각의 흐름을 좋은 방향으로 승화시켜 주인의식을 고취하는 개인의 선택은 눈부실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결코 당연히 할 수 있다거나 반드시 해야 할 의무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모호한 '우리'의 범위
 
 과연 한 사람의 우격다짐만으로 '우리'가 할 수 있을까요?
ⓒ Pixabay
 
그렇기에 이를 당연한 의무처럼 강요받을 때 종종 혼란이 생긴다. 상위 조직 혹은 회사 차원에서 생각하자며 어제까지와는 다른 '우리'를 강조하는 리더의 논리가 펼쳐질 때다.

"이번에 이런 문제가 발견됐는데 어째서 미리 발견하지 못했지?"
"잘 모르겠습니다. 해당 시험이 이번이 처음이라 지금 나올 수 있는 문제로 보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잘 분석해서 방지할 수 있지 않았나?"
"우리가요? 미리 아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그건 우리 개발 영역도 아니어서..."
"더 크게 봐야지... 내 것 네 것 구분하지 말고 우리 조직 차원에서 거시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지."

이쯤 되면 '우리'의 범위가 궁금해진다. 순간 내가 회사의 경영진이었나? 하는 착각이 일기도 한다. 어째서 얼마 전 강조한 '우리 일'과 지금의 '우리 일'이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자동 기립한다. 책임을 추궁하기 위한 지나친 '우리'의 확장은 납득하기 쉽지 않다.

일의 배분이 적절하지 않거나 책임 소재가 불명확할 때, 혹은 리더들이 그들의 리더에게 한 묶음으로 지적을 받은 날이면 거시적 관점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지곤 한다.

당장 조직 일만으로도 힘들어 넉다운 될 지경인데, 심적으론 당장 내일 딱 하루만 '우리 회사'가 아니었음 싶을 정도로 막막한 경우도 있는데, 회사 차원에서 생각하고 더 많은 일을 하자는 리더의 말은 가끔 우리를 너무나도 먼 세계로 데리고 간다. 당면한 문제를 현실을 벗어나 안드로메다에서 논의하는 느낌이랄까.

국민의례도 바뀌었습니다만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자 다짐했던 국민의례도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짐하는 것으로 바뀌었는데, 여전히 암암리에 피, 땀, 눈물을 요구하는 리더가 많다고 한다. 워라벨을 표방해야하는 요즘 리더로서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이런 형태는 듣는 사람에게 더 일하라는 압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우리'라는 소속감을 강조하며 무리를 요구한다. 모든 것이 '우리'의 책임인 것처럼 과장하며 더 잘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면서 리더 자신은 그렇게 말한 것으로 의무를 다한 것처럼 현실에선 한 발 물러서기도 한다. 이런 리더에게 진정한 '우리'는 없다.

쉽지 않은 일임은 안다. 리더가 떠안는 부담감은 가히 대단할 테다. 리더임에도 다른 리더를 따라야하지, 구성원들은 내 맘 같지 않지, 환경은 계속 바뀌지. 자리가 바뀌면 사람이 바뀌는 데는 분명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최종점이 '우리'가 된다. 내 마음처럼 움직여 주길 원하는 리더의 간절한 마음인 거다. 그 절절한 눈빛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제발 잘해줘'라고 간곡히 바라는 눈빛. 비록 그 태도가 강압적이거나 딱딱할 순 있지만 그 모든 것이 절실함에서 나온 반응이라는 것도.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이 '우리 회사'라고 해서 모두에게 '내 회사' 같을 순 없다.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람의 의미부여, 가치부여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 팀', '우리 파트'만을 위해도 몸이 모자를 판에 때마다 '우리'의 범위를 바꿔가며 더 크게 생각하고 더 많이 행동하라는 것은 무리한 부탁이다.

조직이 구분된 이유를 무시해선 안 된다. 게다가 '우리'를 강조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바로 '너희'로 관점이 바뀐다면 단 1%의 공감도 이끌어 내기 힘들다. '이번만'이 모여 지금의 혼란이 야기된 것을 생각하면, 이제 가변적인 '우리'라는 피켓을 내려놓고 곰곰이 생각해볼 시점이다.

괜찮은 '우리'가 되기 위해
 
 제 앞가림은 할 줄 아는 '우리'. 어제의 '우리'와 오늘의 '너희'가 되지 않는 '우리'.
ⓒ Pixabay
 
'우리'의 의미가 모호하지 않았으면 한다. 크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만이다. 그 한계를 기본으로 생각할 때, 리더는 '우리'라는 범위에서 자신을 따르는 많은 사람을 지켜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불필요한 스트레스로부터 사람들을 지켜 낸 후에야 더 넓어진 '우리'의 범위에 공감할 사람도 늘어날 테다.

리더들을 위해 자주 잊게 되는 한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대부분의 구성원이 내 회사는 아니지만 '내 일'이라는 의식만은 투철하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직장인의 숙명을 안다. '내 일'만은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보니 '내 일'에 영향을 주는 것들에 싫든 좋든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모두가 최소한의 '우리'도 생각하지 않고 자기 것만 챙기느라 일이 안 될까 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그리고 혹시라도 모두가 자기 일만 했을 때 문제가 생긴다면, 무턱대고 소속감이나 공동체 의식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프로세스를 보완하거나 책임과 역할을 재정의 하는 등의 사후 처리가 더 중요하지 덮어놓고 더! 더! 더!를 호소해서는 안 될 일인 거다.

리더는 신중한 사람이었으면 한다. 그 신중함의 깊이야 제각각일 테지만, '우리'를 앞세워 자기 앞가림을 잘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왜 남의 앞가림까지 잘하지 못하냐고 원망하진 않았으면 한다.

부디 "우리가 비록 남이지만 생판 남은 아니지 않냐"는 아주 조심스러운 태도가 '우리'를 만든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조급한 마음에 퉁쳐서 쉽게 얘기하는 것이 아닌, 고심해서 불필요한 말만은 걸러낼 줄 아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리더로서 충분한 자격이 될 테다.

《 group 》 직장살이 : https://omn.kr/group/salaried2023
3040시민기자들이 쓰는 달콤살벌한 순도 99.9%의 현실 직장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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