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 그림을 그려 본인 사인으로 삼은 화가 [ 단칼에 끝내는 곤충기]

이상헌 2023. 6. 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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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드르 황금시대에 활약한 얀 반 케슬의 기막힌 그림

[이상헌 기자]

벨기에의 앤트워프에서 태어난 얀 반 케슬(Jan van Kessel)은 9살 때부터 도제식 화가 수업을 받아 플랑드르에서 이름을 떨쳤다. 이 지역은 8세기 프랑크 왕국의 지배를 받던 곳으로서 오늘날의 프랑스(노르 주)와 벨기에, 네덜란드(젤란트 주)에 걸친 땅이다.

유화 물감을 발명하여 유럽 회화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얀 반 에이크로부터, 플랑드르 화풍을 이끈 히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와 피터 브뤼걸(Pieter Bruegel the Elder). 르네상스 시대에 활약한 루벤스와 렘브란트, 베르메르 시대를 거쳐 현대에는 고흐와 몬드리안, 마그리트가 이곳 출신이다.

플랑드르에서 이름난 화가들이 많이 배출된 이유는 경제력에서 찾을 수 있다. 상업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중산층이 형성되고 이들의 수요를 바탕으로 플랑드르에서는 연간 7만 점 가량의 미술품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벨기에로부터 미술 시장이 출발했으며 그림을 투자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한 화상(Art dealer)도 이때 등장했다.

식민지 개척과 해상 무역으로 전 세계의 부가 플랑드르에 모였으며 이 시기의 주체할 수 없는 부와 욕망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버블인 '튜울립 광풍'을 만들었다. 새롭게 부상한 중산층은 귀족과 같이 자신들의 거실을 치장할 그림을 원했다.

플랑드르의 황금시대를 이끈 브뤼걸
 
▲ 히로니무스 보쉬의 페인팅. 세속적인 기쁨의 정원(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
ⓒ Museo del Prado
 
악몽과 지옥의 풍경을 기묘한 환상으로 엮은 히로니무스 보쉬는 미스터리한 화가다. 대뇌번연계 속에 잠들어있는 원초적 두려움과 깊은 욕망을 전두엽으로 위로 필터링하여 플랑드르 예술계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다. 피터 브뤼걸(the Elder)이 그의 열렬한 추종자였으며 훗날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극찬을 받는다.
당시 플랑드르에서는 수백 명의 정물화가들이 활동하고 있었지만 브뤼걸 가문의 이력이 남다르다. 케슬의 재능은 외가 쪽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브뤼걸(the Elder)의 장남이 브뤼걸(the Younger)이며 둘째가 얀 브뤼걸(Jan Brueghel)로서 케슬의 외할아버지다.
 
▲ 눈속의 사냥꾼들. 피터 브뤼걸의 작품.
ⓒ Google Art Project
 
브뤼걸(the Elder)은 플랑드르 문예부흥을 이끈 1세대 예술가이자 판화가로서 장르 그림의 선구자였다. 그의 작품 세계는 네덜란드 황금시대 회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시기에 종교화는 거의 사라져버렸으며 풍속화, 역사화, 초상화, 풍경화, 정물화 등이 널리 제작되었다.

그의 작품은 합스부르크 왕가를 포함하는 여러 후원자들에게 날개 돋친듯 팔려나갔다. 브뤼걸의 강력한 후원자인 그랑벨(Granvelle) 추기경은 그의 작품을 컬렉션하여 조카인 황제 루돌프 2세에게 상속해 주었으며, 루벤스 또한 10여 점의 작품을 사들여 뒷날 높은 가격으로 매각한다.

브뤼걸(the Younger)은  대규모 아틀리에를 운영하며 아버지의 유명한 작품을 복사하여 세상에 널리 알리는 한편,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냈다. 그의 작업이 있었기에 대중들은 브뤼걸(the Elder)의 작품을 소장할 수 있었다. 브뤼걸(the Younger)의 제자 중에 프랜스 스나이더스(Frans Snyders)는 최초의 스페셜리스트(정물과 동물 전문 화가) 중 한 명이다.
 
▲ 프란스 스나이더의 Market Scene on a Quay. 스나이더가 그려낸 '식자재의 캐비닛'.
ⓒ Google art project
 
루벤스의 감탄을 불러일으킨 스나이더스의 기가막힌 사냥 페인팅 비결은 그가 화가이면서 전문적인 동물 사육사였기 때문이다. 조형적으로 얽힌 맹수들의 격렬한 사냥 장면과 그 결말이, 먹거리로 차려지기 전 날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시장통 식료품 저장실에 담겨졌다. 스나이더스가 그려낸 '식자재의 캐비닛'인 셈이다.

스나이더스의 재능은 종종 루벤스와의 협업으로 이어진다. 전체 구성의 스케치를 루벤스가 그리면 스나이더스는 모피와 가죽의 질감을 극상으로 끌어올렸다.

예술의 공장화를 열고 명품 캐비닛을 수출하다

얀 브뤼걸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정 화가로 활약하며 다양한 장르의 미술 발전에 기여한 혁신가다. 루벤스와는 25차례의 공동작업을 통해 미술의 분업화 시대를 열었다. 브뤼걸은 절친인 루벤스와 함께 당대 플랑드르 화풍의 양대 산맥이었다. 대중의 열망을 꿰뚫은 루벤스는 100여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대규모 작업장을 운영하며 밀려드는 수요에 화답했다.

브뤼걸은 칸막이를 두르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협업하여 플랑드르의 황금 시대를 이끌었다. 서양 정물화의 역사는 얀 브뤼걸이 개척하고 그의 제자 다니엘 세이거스(Daniel Seghers)에 의해 절정을 맞이한다. 세이거스는 화환(꽃 정물화) 장르의 스페셜리스트였으며 그의 작품은 왕족을 비롯하여 여러 귀족 후원자들의 수집 열망을 불태웠다.
 
▲ 얀 반 케슬의 사인. 곤충과 애벌레, 거미 뱀으로 꾸민 케슬의 작품.
ⓒ Johnny Van HaeftSotheby's
 
브뤼걸 가문의 도제식 훈련과 앞선 세대의 영향을 받아들이고, 자연으로부터 깊은 영감을 얻은 케슬은 곤충 그림을 그려 자신의 사인으로 삼을 만큼 독특한 화가였다. 그것도 보통 사람들이 징그러워하는 털이 숭숭한 애벌레와 사악함을 상징하는 뱀, 흉물스럽게 느껴지는 거미다.

케슬이 예술적 구성에 중점을 두어 역동적으로 묘사한 곤충은 결코 미물이 아니었으며 자연의 질서를 나타내는 주인공이었다. 기운생동하는 케슬의 작품은 늘상 '호기심의 캐비닛' 외관을 장식하며 앤트워프의 이름난 수출품이 되었다. 수집가들은 그의 장식장을 열어제끼는 호사를 누리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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