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대의 은퇴일기㉗] ‘뻐꾸기알’‧‘웅덩이 미스터리’로 본 종족 번식의 신비함
봄은 자신의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할 때다. 오랜 세월 동안 진화하며 최적화되어 왔지만 생소하고 특이한 종족 번식 방법을 보면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뻐꾸기는 알을 낳지만 직접 부화시키지는 않는다. 붉은머리오목눈이새 둥지에 알을 낳아 대신 품어 기르도록 하는 ‘탁란’이란 행위를 한다. 오목눈이새가 둥지를 만들고 알을 네다섯 개 정도 낳으면 뻐꾸기는 같은 푸른색의 알을 한두 개 낳는다. 그러면 오목눈이새는 자신의 알인 줄 알고 부화시킨다. 뻐꾸기는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으면서 알의 수를 맞추기 위해 오목눈이새 알 몇 개를 깨버리기도 한다. 오목눈이새는 이런 것도 모르고 정성스럽게 품는다. 자기 새끼의 양육을 다른 새에게 맡기는 이런 행태를 보면 염치도 없고 한없이 얄밉다. 자기가 낳은 자식을 몰래 남의 집에 던져두고 길러 주기를 바라는 인간이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오목눈이새보다 훨씬 큰 뻐꾸기알이 먼저 부화한다. 알에서 갓 태어나 털도 없는 새끼는 자신의 몸에 닿는 것은 밀어내는 습성이 있어 다리나 날개를 이용하여 부화하지 않은 알이나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 죽게 만든다. 본능적인 행동이라고 하지만 비정하다 못해 악랄하다. 어미 새보다 크기가 다섯 배 가까이 자랐음에도 뻐꾸기 특유의 주황색의 큰 입을 쩍 벌리고 있으면 열심히 곤충을 잡아다 주고 배설물까지 치워준다. 힘들이지 않고 종족 번식을 하는 기발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독일에서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임신한 뒤 남편의 아이라고 속이는 것을 ‘뻐꾸기 자녀’라고 하기도 한다.
그렇게 자라 독립한 뻐꾸기는 짝짓기하고 자기를 키워준 어미 새와 같은 종의 둥지를 강탈하기도 한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배은망덕한 행위로써 도저히 있을 수도, 용납할 수도 없지만, 종족 번식의 한 방편이라고 하니 말문이 막힌다. 이것이 신의 뜻이라면 왜 이렇게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종족을 번식도록 창조했을까 의아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생존전략인 탁란을 두고 선악 구분이나 윤리의식도 없는 동물에게 인간의 윤리를 들이대는 것은 무리라고 봐야 할 것이다.
산꼭대기에 있는 조그만 우물이나 연못에 물고기가 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중간에 폭포나 물이 마른 곳이 있어 물줄기와 연결되지 않는 곳에 어떻게 올라와 살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바다나 강하고 연결되어 있지 않고 명백하게 고립되어 있거나, 갑자기 나타난 웅덩이에 있는 물고기들을 ‘웅덩이 미스터리’라고 부른다. 여태까지는 소나기가 올 때 비를 타고 올라갔다가 비가 그쳐 마침 웅덩이에 떨어졌다거나, 새의 발에 묻은 물고기알이 그곳에서 부화했다는 정도였는데, 증명된 바는 없다고 한다.
최근에 나온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새가 물고기나 알을 먹고, 서른 시간이나 지난 배설물에서도 알이 살아 있다고 한다. 다른 곳으로 날아가 배설했는데 그곳이 마침 산 정상에 있는 웅덩이라면 살아남은 알이 새끼로 태어난다고 한다. 고기를 옮기기엔 성체보다는 알이 훨씬 편하다. 찰스 다윈도 ‘종의 기원’에서 “물고기알은 물을 떠나서도 생명력을 유지하기 때문에 우연한 기회에 이동하기에 적합하다”라고 했다. 새가 고기를 잡아먹어도 알은 보호막으로 둘러싸여 있어 소화가 안 된 채로 산속 깊은 웅덩이에 배설되어 부화하기도 한단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고니가 논스톱으로 이동한다면 열대 송사리의 알을 2000킬로미터까지 옮길 수 있다니 얼마나 대단한가?. 송사리의 수정란이 고니의 위장 속에서 소화효소나 위산을 어떻게 견뎠는지는 연구해 볼 만한 과제일 것이다.
지난 여름에 집 뒤 우면산 계곡에서 가재를 본 적이 있었다. 2011년 7월 심한 폭우로 온 계곡이 휩쓸려 내려가 인명피해까지 발생했던 곳이다. 일 년 이상 큰 돌로 계곡 벽면과 바닥을 쌓고 시멘트로 발랐는데도 가재가 사는 것을 보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긴 공사 기간 물도 없는 흙더미 속에 묻혀있던 가재가 살아났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은데도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는 것은 불가사의하다.
은행이나 소나무는 꽃가루가 바람에 날려 멀리 떨어진 곳까지 수정하고, 도깨비바늘이나 쇄무릎은 동물의 털이나 사람 옷에 붙어 옮겨가기도 한다. 식물의 씨앗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어 일반적으로 새나 포유동물의 위장관을 거치거나 자연이 힘을 빌려 멀리 확산하는 전략을 편다. 그중에서 관심을 끌게 하는 것은 등나무 씨앗이다. 여름에 무성하던 등나무는 가을이 지나면 잎은 모두 떨어지고 커다란 콩깍지처럼 생긴 열매가 바싹 마른 상태로 겨우내 매달려 있다. 봄바람이 불고 시기적으로 씨앗이 발아하기 좋은 환경이 되면 딱 소리를 내며 껍질이 벌어지면서 속에 있는 씨앗을 멀리까지 날려 보낸다. 유선형처럼 생긴 씨앗은 껍질이 벌어지는 순간 뒤틀리면서 50미터 이상까지 날아가기도 한다.
호수나 바닷가에서 돌로 수제비를 띄워 멀리 보내기 시합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 가능하면 납작하고 둥근 돌을 고르듯이 등나무 씨앗도 바둑알이나 외계 비행접시처럼 생겨 봄바람에 실려 멀리까지 날아가서 종족을 번식시킨다. 등나무가 외계에서 날아온 비행접시의 원리를 배운 것일까?. 아니면 외계인이 등나무에서 배운 것일까? 자연의 종족 번식 수단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경이로움이 숨어있다.
수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동식물은 다양한 방법으로 종족을 번식하면서 멸종하지 않고 더 나은 적응력을 가진 자손으로 진화되어왔다. 하나하나를 자세히 관찰하면 생명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방법이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생명체들이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조화롭게 생존해 가는 것을 보면 감탄을 금치 못한다. 우주를 창조한 전지전능한 신의 섭리가 아니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조남대 작가 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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