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 통증 환자가 통증과 함께 살아가는 법, 심리학자들 조언은…

이해림 기자 2023. 6. 7.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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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세계인지행동치료 학술대회서 불안·통증 심리적 지지 소개
만성 통증 환자가 통증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심리적인 지지가 필요하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직접 해 봐야 압니다. 내가 두려워하던 것이 생각만큼 나쁘지 않고, 생각보다 할 만하다는 것을요”

지난 2일은 2023 세계인지행동치료 학술대회가 막을 연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한국적 맥락 속에서의 인지행동치료(Cognitive & Behavioral Therapies, CBT)’라는 대주제 아래 여러 학자의 발표가 이어진 날이기도 하다. 충북대 심리학과 안정광 교수는 ‘사회불안장애(대인공포증)’ 영역에서 시도해볼 만한 다양한 인지행동치료 기법들을 소개했다. 충남대 심리학과 조성근 교수는 ‘만성 통증 환자가 통증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관해 강연했다. 치료 영역은 달랐지만, 핵심은 일맥상통했다. ‘환자가 막연한 두려움에 빠져있게 두지 말고, 직접 해 본 후에 판단하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사회불안장애 환자들은 ▲발표할 때 목소리가 떨리는 것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 등 사회적 상황의 실수에 대한 공포가 강하다. 발표를 듣는 청중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우스꽝스럽게 들릴 거라 우려하는 식이다. 그러나 안정광 교수는 “대부분 공포가 공포를 불러오는 것”이라며 “발표를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막상 자신이 발표하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을 보면 다들 ‘생각보다 괜찮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안 교수는 치료 일선에 있는 인지행동치료사들에게 ‘비디오피드백’을 꼭 시도해볼 것을 권했다. 그는 “자신이 무서워한 게 그렇게까지 무서워할 만한 일은 아니었단 걸 직접 확인하면 불안을 다룰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는 만성 통증 환자들도 마찬가지다. 병원 치료를 받아도 통증이 가시지 않는 환자들은 심리상담을 찾는 경우가 많다. 조성근 교수에 따르면 이들은 통증 그 자체보단 ‘통증 탓에 포기한 일’이 더 괴롭다고 말한다. 만성 통증 환자에 대한 심리적 지지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통증으로 포기한 일이 줄어든다면, 통증이 계속되더라도 덜 괴롭지 않겠냐는 것이다. 조 교수는 “만성 통증 환자들은 ‘통증 때문에 안 될 것’이라 지레짐작해 포기한 활동들이 많다”며 “환자들에게 그 활동을 일단 해 보라고 하면, ‘생각보다 할 만했다’는 반응이 돌아오곤 한다”고 말했다.

세상엔 어떤 치료로도 뿌리 뽑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불안과 통증이 그중 하나다. 사회불안장애와 만성 통증 환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사람은 모두 살면서 한 번쯤 불안해지며, 통증은 노화로 몸 곳곳이 고장 나는 누구에게나 삶의 동반자가 된다. 심리학적 치료는 이들을 없애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한다. 조 교수는 “없앨 수 없는 대상을 없애려고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으면 더 우울해질 뿐”이라며 “불안과 통증이 삶 속에 있도록 두되, 이들 대신 삶의 목표나 의미에 몰두하는 것이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 역시 “사회불안장애 환자의 인지행동치료 목적은 불안을 없애는 게 아니”라며 “불안한 상태에서도 할 일을 다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임을 강조했다. 불안과 통증을 없애는 걸 포기하고, 함께 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란 것이다.

예컨대, 발표를 두려워하는 사회불안장애 환자는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하는 것에 집중하지 말고, 자신이 발표하고 있는 내용이나 주변 환경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목소리 톤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면 오히려 더 긴장하게 돼서다. 고개를 끄덕이는 등 청중들의 긍정적인 신호에 집중하는 편이 더 도움된다. 만성 통증 환자는 ‘나가서 갑자기 아프면 힘들어질까봐’ ‘주변에 민폐를 끼칠까봐’ 걱정하는 마음을 접어두고, 일단 도전에 나서야 한다. 만성 통증이 생기기 전 좋아했던 취미활동을 해 보는 것이다. ‘막상 해 보니 괜찮았다’는 경험을 누적하는 게 핵심이다. 의욕이 앞서 무리하면 몸이 지쳐 통증이 더 심해질 수 있다. 조 교수의 조언대로 30분씩만 시도해보는 게 좋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환자의 불안과 통증에 대한 심리학적 지지가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단 것이다. 지금까지의 치료는 대부분 불안과 고통을 일으키는 원인을 제거하는 걸 목표로 한다. 원인 질환을 고치거나, 완치가 불가능할 경우 약물로 불안과 통증 자체를 덜어내는 식이다. 그러나 말기암 환자나 황반변성으로 실명을 앞둔 환자에겐 이것이 불가능하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심리적 지지다. 죽음이나 시력 상실은 굉장한 두려움과 상실감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고통의 결이 다를진 몰라도 만성 통증 환자 역시 마찬가지다. 조 교수는 “만성 통증 환자는 통증을 평생 관리해야 해 암환자보다 10배 이상 많은 치료비를 지출하지만, 그럼에도 통증이 재발하는 일이 잦아 투병이 잘 끝나지 않는다”며 “이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 통증에 대한 심리학적 개입이 하루빨리 활성화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2023 세계인지행동치료 학술대회​ 강연 현장./사진=이해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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