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U-20 월드컵을 응원하는 새로운 태도

입력 2023. 6. 7. 04:0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유라 신한카드 빅데이터 연구소 연구원

어린 선수 응원으로 '중꺾마'
적합할까… 꺾여도 '좋아서
하는 마음'에 대한 격려 필요

최선을 다해도 승리할 확률이 희박한 경기를 앞둔 선수의 마음을 상상해본다.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면 어떤 태도로 경기에 임하게 될까? 1986년 4월 3일 NBA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앞두고 시카고 불스의 마이클 조던에게 주어진 출전 시간은 전후반 14분뿐이었다. 시즌 초의 심각한 부상 이후 복귀 조건으로 구단은 그에게 전후반 각각 7분씩으로 출장시간을 제한했다. 승산 없는 플레이오프 진출보다 조기 탈락 후 팀 빌드업을 염두에 둔 구단의 계획이었다. 구단이 다음 시즌을 고려할 때 조던은 근본적인 업의 본질에 집중했다. 주어진 시간 동안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불태운 그날의 14분은 결국 그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신이 마이클 조던으로 변장한 것 같다’는 평을 들을 만큼의 활약이었다. 시카고 불스에서 조던의 활약을 다룬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에서 버락 오바마는 전 시카고 주민으로 출연해 그의 태도가 당시 시카고 시민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고 증언한다. 조던의 최선은 당장의 결과보다 더 큰 것들을 바꾸기 시작했다.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마음’의 힘이다.

‘꺾이지 않는 마음’은 지금 가장 대중적인 희망의 문장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열리고 있는 U-20 월드컵의 중계 상황에서도 해설진은 꺾이지 않는 마음을 강조한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16강 진출을 확정한 뒤 대표팀 선수들이 펼친 태극기에 쓰인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중꺾마)이라는 메시지는 연말 연초 가장 많이 사용된 밈(meme)이 됐다.

헌신과 투혼보다 내적 성장과 개인의 가치관을 우선시하는 시대라는 지금,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한 문장으로 여전히 ‘중꺾마’가 적합한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2023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개그맨 박명수씨가 한 콘텐츠에서 언급한 ‘중요한 건 꺾였는데도 그냥 하는 마음’이라는 밈의 재해석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엄청난 공감을 떠올려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대에 진짜 중요하고 필요한 메시지는 ‘꺾이지 말라’는 격려가 아닌 ‘그냥 하는 마음’에 대한 지지라는 점이다.

‘그냥 하는 마음’에 한 가지가 추가되면 사람들의 지지는 열광으로 진화한다. 바로 ‘좋아서 하는 마음’이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시대에는 ‘꺾이지 않고’ 고난을 극복하는 ‘성취형’ 서사보다, ‘꺾여도’ 그저 좋아한다는 이유로 계속하는 ‘진심형’ 서사가 더 많은 사람을 매혹한다. ‘좋아서 하는 마음’은 개인적 차원의 키워드에서 동시대의 가장 강력한 비즈니스 무기로 확장됐다. 새로운 시대의 비즈니스 서사 역시 ‘열정’이 아닌 ‘애정’으로 시작한다. 고객에 대한 충성보다 업에 대한 사랑이 오히려 더 사랑받는다.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하는 슬로 패션 기업 파타고니아, ‘무진장 신발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커뮤니티에서 시작한 패션 플랫폼 무신사처럼 전례 없는 사업 문법으로 소비자를 팬덤으로 만든 기업들 역시 이 서사를 따른다. 압도적 결과를 추구하는 대신 순수하게 좋아서 하는 ‘원인’에 충실한 것만으로도 차별적 전략이 됨을 시사한다.

대단한 결과보다 아름다운 원인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좋아서 하는 사람들의 행보에 열광의 소리가 커지고 있다. 성과나 성공의 강박에서 벗어나 ‘그냥 좋아서 하는’ 원인들이 모여 만든 세상의 풍요를 실감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6월 9일 금요일, 전통의 강호 이탈리아와 경기하는 U-20 4강전을 기다리는 우리의 응원 메시지는 달라져야 한다. 잠시 꺾여도, 반드시 이기는 사람이 되지 않아도, 좋아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계속하는 사람이면 충분하다는 믿음과 격려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최선이 꼭 결과로 맺어지지 않아도 ‘그저 하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찬사가 우리를 ‘계속하는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정유라 신한카드 빅데이터 연구소 연구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