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프랜차이즈와 사모펀드

백일현 2023. 6. 7.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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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현 산업부 기자

며칠 전 한 커피 프랜차이즈 점주 A와 취재차 전화통화를 했다. 그는 “본사(가맹본부) 주인이 사모펀드 운용사로 바뀐 뒤로 수익이 확 줄었다”고 토로했다. “폐업 점포가 느는데 사모펀드는 신경도 안 쓴다. 다시 새 매장 내면 또 (새 점주로부터) 몇억 들어오니까. 지금의 수익구조에서 점주는 본사의 노예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계속 들어온다.”

구체적인 설명을 요청하자 다른 점주 B(48)를 소개해줬다. 5년간 운영하던 점포를 최근 다른 이에게 넘겨 본사 눈치 안 보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서다. 연락이 닿은 B는 “2018년 보증금·월세·권리금 포함 6억원을 들여 매장을 시작했는데 이번에 양도·양수하며 받은 돈, 5년간 번 돈을 합치니 4억이더라”며 씁쓸해했다.

지난 4월 서울 강남구 SETEC에서 열린 제69회 프랜차이즈 창업박람회에서 참관객들이 창업 강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B는 5년 전 해당 프랜차이즈의 안정성을 믿었다고 한다. 실제 한동안 일 매출이 200만원씩 나올 정도로 잘 됐다. 하지만 본사가 사모펀드 운용사에게 넘어간 뒤 차액가맹금(본사의 물류 마진)이 이전의 두 배가 됐다. 무료쿠폰 등 본사가 일부 부담하던 비용도 점주 몫이 됐다. 인근 본사 직영점은 배달료를 0으로 책정해 B의 배달 고객을 끌어갔다. 배달 매출은 100만원에서 5만원으로 줄었다. 코로나19로 방문 고객마저 줄고 전기료도 올랐는데 본사는 물류비를 올렸다. 직원을 내보냈지만 월세 내기도 힘든 지경이 됐다. 결국 B는 점포를 접기로 했다. B는 “그나마 코로나19가 엔데믹으로 바뀌어 고객이 늘 때 점포를 내놓아 양도양수가 가능했다”며 “나나 주변 점주는 힘든데, 본사는 최대 매출을 냈더라.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다른 프랜차이즈에서도 사모펀드를 성토하는 이들을 접했다. 사모펀드의 외식 프랜차이즈 인수가 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진입 장벽이 낮은 데다 가맹점 출점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쉬운 게 요인이라고 한다. 모 프랜차이즈 본사 임원 C는 “사모펀드는 빠른 ‘엑시트’(투자금 회수)에만 관심 있다 보니 위생 관리 인력을 줄이는 등 브랜드를 망가뜨리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사모펀드를 옹호하는 이도 있다. 한 프랜차이즈 본사 팀장 D는 “경영이 투명해지고 기업 가치가 올라갔다”고 평했다. 분명한 건 ‘국민 창업아이템’이라는 외식 프랜차이즈가 지속 가능하려면 본사와 점주가 상생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모펀드의 ‘치고 빠지기’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가맹금 정의를 명확히 하고, 점주들의 교섭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국에 33만 개 프랜차이즈 가맹점, 17만 개 외식 가맹점이 실핏줄처럼 퍼져 있는 ‘프랜차이즈 공화국’ 한국에선 더 고민해야 한다.

백일현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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