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력 낮은 카카오 사업 정리”···‘엔터프라이즈’ 다음은 어디
“효율적으로 비용을 집행하려 노력하고 있다. 경쟁력이 낮은 사업은 정리할 계획도 갖고 있고, 이를 통해 손익 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 5월 1분기 실적 설명회에서 배재현 카카오공동체 투자총괄대표가 내놓은 발언이다. 그룹을 위해 경쟁력이 낮다고 판단되는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겠다는 의미다. 실적 설명회 이후 카카오는 클라우드 사업을 담당하던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조직 개편과 수장 교체를 단행했다. 사업 구조 개편 발언이 단순 ‘구호’가 아니라는 걸 증명한 셈이다. 이에 적자가 지속되고 있는 계열사를 중심으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다음 조직 개편 칼날이 어디로 향할지 궁금증이 증폭되는 가운데, 재계에서는 지그재그를 운영하는 카카오스타일을 주목하고 있다.
본사 이익으로 계열사 손실 메꿔
카카오가 부진 사업 정리에 나선 배경은 수익성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외형 확장’을 이유로 신사업을 담당하는 계열사 부진이 일정 부분 용인됐다. 하지만 적자 상태가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일부 투자자를 중심으로 ‘계열사 조직 개편’ 요구가 나왔다. 특히 카카오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커지면서 이 같은 지적에 힘이 실렸다.
지표를 보면 투자자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올해 1분기 연결 재무제표 기준 카카오 영업이익은 711억원. 전년 동기(1586억원) 대비 55.1% 감소했다. 그야말로 어닝 쇼크다. 하지만 본업만 놓고 보면 얘기가 다르다. 별도 재무제표 기준 카카오의 1분기 영업이익은 1293억원. 전년 동기(1230억원) 대비 소폭 늘었다. 본업은 잘됐는데, 자회사 등의 실적 부진으로 어닝 쇼크가 터진 셈이다. 자회사 실적은 연결 재무제표에 모두 합산 반영된다. 자회사 부진에 더해 지분율 20% 이상, 50% 미만을 보유한 카카오 관계 기업들도 실적 악화에 시달렸다. 카카오 입장에서는 어디 하나 기댈 곳이 없었던 셈이다. 이는 지분법손실 지표에서 드러난다. 지분법손익은 관계 기업 실적을 보유 지분율만큼 손익으로 반영한 수치다. 올해 1분기 카카오 지분법손실은 396억원으로 나타났다. 전년 동기 대비 손실 규모가 12.5% 증가했다.
엔터프라이즈, 왜 첫 개편 주자 됐나
누적 적자 3000억원…조직 뜯어고친다
카카오의 구조조정 칼날을 마주한 첫 계열사는 카카오엔터프라이즈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2019년 출범했다. 카카오의 기술 서비스 자회사로 카카오 신사업 부문(뉴 이니셔티브) 핵심축으로 불리며 기대를 모았다. 카카오 역시 유상증자, 자금 대여 등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지원해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뤄낸 성과는 사실상 전무하다. 실적만 놓고 보면 카카오의 아픈 손가락에 가깝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2019년 출범 이후 다양한 서비스를 내놨다. 카카오i클라우드, 카카오워크(협업툴), 외개인아가(챗봇)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IT업계에서는 차별화 전략 부재를 원인으로 꼽는다. IT업계 관계자는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늘 후발 주자 형태로 서비스를 내놨는데, 이미 시장을 점유한 기업들과 비교해 차별화된 포인트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업무용 카톡’으로 기대를 모았던 카카오워크는 잦은 서버 오류와 로그인 장애 등의 문제로 슬랙은 물론이고 네이버웍스, 하이웍스, 두레이 등에도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자연스레 적자가 누적됐다. 2019년 출범 이후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4년간 누적 당기순손실 총 2965억원을 기록했다. 2019년 49억원, 2020년 368억원, 2021년 946억원, 2022년 1613억원 순서다. 해가 지날수록 적자 규모가 커졌다.
동시에 빚도 불어났다. 지난해는 1000명 넘는 직원에게 지급해야 할 인건비부터 각종 연구개발(R&D)을 위한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카카오로부터 1000억원을 빌렸다. 실적은 안 나오고, 빚만 늘면서 자연스레 부채비율은 치솟고 있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카카오엔터프라이즈 부채비율은 305.3%. 전년(167.7%) 대비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결국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최근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간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챗봇, B2C 메시지 서비스, 업무 플랫폼, 물류 생태계 플랫폼 등 다양한 사업을 펼쳤지만 앞으로는 클라우드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기로 결정했다. 클라우드사업부 외 구성원에 대한 인력 조정도 점쳐진다. 조직 개편과 별도로 경영진도 대거 교체됐다. 특히 지난 4년간 회사를 이끈 백상엽 전 대표가 물러나고 이경진 클라우드 부문장이 새 대표로 선임됐다.
‘구조조정’ 칼날 다음 주자는
리스크 안고 있는 카카오스타일 주목
카카오엔터프라이즈 구조조정 현실화 이후 적자를 면치 못하는 다른 계열사도 긴장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대표적인 계열사가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를 운영하는 카카오스타일이다. 카카오스타일은 2021년 카카오커머스에서 인적분할된 스타일 사업 부문이 여성 의류 쇼핑 플랫폼 지그재그 운영사인 크로키닷컴과 합병하면서 출범했다. 지난해 말 기준 카카오가 지분 51.1%를 보유하고 있다.
카카오스타일 출범 이후 지그재그는 외형 확장에 집중했다. 2020년 311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1018억원까지 뛰었다. 공격적인 마케팅과 개발 인력 채용 확대를 통해 서비스 퀄리티를 개선한 결과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수익성은 악화했다. 2020년 262억원이던 영업손실은 2021년 379억원, 2022년 518억원으로 커졌다.
카카오의 비용 효율화 전략에 발맞추기 위해서는 ‘수익성 개선’이 절실한 상황이다. 카카오스타일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압박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페어데일’ 등 자체 브랜드 신사업을 통해 수익 창출에 나선 상황이다. IT업계 고위 관계자는 “카카오 본사 차원에서도 패션 플랫폼 사업 경쟁력을 두고 회의적인 시선이 나오고 있다”면서 “실적 개선이 가능하다는 시그널을 보여주지 못하면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다만 수익성 개선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그재그를 찾는 이용자가 줄고 있어서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4월 지그재그 앱 월간 이용자(MAU)는 337만여명. 370만명대를 유지하던 지난해 5~7월과 비교하면 40만명 가까이 이탈했다.
최근 불거지는 ‘무단 라이선스’ 리스크도 향후 사업을 발목 잡을 가능성이 높다. 지그재그는 동대문에 기반한 오픈마켓 패션 플랫폼이다. 이에 가품 리스크를 안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 ‘YALE(예일)’ 공식 라이선스를 획득해 판매할 수 있는 브랜드는 국내 한 곳뿐이다. 해당 브랜드는 패션 플랫폼 무신사에만 입점한 상태다. 하지만 지그재그에서 ‘YALE’을 검색하면 수많은 후드티와 반팔 티셔츠가 검색되는데, 이들은 모두 디자인 카피·지식재산권(IP) 무단 활용이라는 게 패션업계 관계자들 설명이다. 카카오스타일은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가품을 근절하겠다는 방침이다. 카카오스타일 관계자는 “지그재그에는 하루에도 1만개 이상의 상품이 올라올 만큼 다양한 상품이 등록되고 있다”며 “YALE 상품들은 누락이 됐던 것 같다.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설명했다. 문의 직후 카카오스타일은 YALE 상품 전부를 판매 불가 조치했다.
해외에서는 가품 판매 플랫폼도 책임 소재가 있다는 판결이 나오고 있다. 유럽사법재판소(ECJ)는 아마존에서 프랑스 구두 브랜드 ‘크리스찬루부탱’ 가품이 판매된 것을 두고 “아마존에도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소비자들이 개별 판매자가 아닌 아마존이라는 플랫폼을 신뢰해 구입했다는 이유다. 국내 패션업계는 이 같은 판결들이 국내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지그재그와 에이블리 등 동대문 상품에 기반한 패션 오픈마켓들은 가품 근절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왔다”며 “확실한 정책이 마련되면 관련 오픈마켓들도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2호 (2023.06.07~2023.06.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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