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2개월 만에 ‘7만전자’ 된 삼성전자
‘7만전자’.
주식 투자자들이 애타게 기다린 소식이다. 코스피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 주가가 1년 2개월 만에 7만원을 넘어섰다. 4거래일 연속 신고가도 갈아치웠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 매수세가 무섭다. 개인과 기관이 주식을 팔아치우는 상황에서도 외국인이 주가를 떠받친다. 미국 증시에서 엔비디아 등 인공지능(AI) 반도체 관련주가 급등하며 국내 반도체 대장주 삼성전자로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는 모양새다.
다만 단기간 급등에 따른 조정 우려도 제기된다. 차익 실현 심리에 따른 매도 물량이 쏟아질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주가 흐름에 일희일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보다는 업황의 방향성이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하반기 메모리 반도체 업황 개선 신호가 뚜렷해질수록, 주가가 조정을 받더라도 낙폭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단기 주가보다 방향성 중요
엔비디아 효과로 외국인 집중 매수
이번 삼성전자 주가 상승은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이끌었다. 지난해 말부터 대세로 떠오른 생성형 AI에 투입되는 반도체 공급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영향이다.
엔비디아는 생성형 AI를 구현하는 데 필수품으로 꼽히는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전 세계 시장에서 90% 이상 공급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 AI 기업인 오픈AI가 챗GPT를 선보일 때만 해도 AI가 반도체 시장을 뒤흔들 것이라는 막연한 전망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엔비디아가 지난 5월 24일(현지 시간) 실적 발표에서 “세계 AI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밝히며, 이미 반도체업계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삼성전자 주가도 덩달아 올랐다. 엔비디아 실적 발표가 있었던 5월 25일 삼성전자 주가는 장중 최고 7만원을 찍으며 1년 2개월 만에 7만원대 주가를 기록했다. 종전 삼성전자 주가가 7만원대를 기록한 것은 지난해 3월 31일(7만200원)이 마지막이다.
‘7만전자’ 회복에는 외국인 투자자 역할이 컸다. 삼성전자 주가가 7만원을 넘어선 5월 25일부터 5월 31일까지 4거래일간 외국인 투자자는 1조2085억원어치 주식을 사들였다. 개인이 9169억원, 기관이 2455억원어치 팔아치운 것과 상반된다. 미국 증시에서 AI 반도체 관련주가 급등하자 국내 반도체 대표주인 삼성전자에 외국인 수급이 쏠린 것으로 풀이된다.
외국인 매수세와 함께 AI 반도체 시장 확대가 삼성전자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주가 상승을 부추겼다. AI 서버에는 엔비디아가 만든 GPU와 함께 고성능·고용량 D램이 탑재된다.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고대역폭 메모리 반도체(HBM)는 일반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를 끌어올린 첨단 메모리 반도체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급격하게 늘어나는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기존 D램보다 성능이 좋은 HBM을 채택하는 추세다. 삼성전자는 HBM 시장에서 4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AI에 대한 수요가 커질수록 삼성전자의 공급 물량도 확대될 전망이다. 고영민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AI 응용처는 챗봇 이외에도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자율주행, 핀테크, 헬스케어 등으로 확장 중”이라며 “HBM 시장도 올해 46%, 내년 31%의 고성장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변수는 거시 환경·中 스마트폰
AI 반도체 수요 실체 확인해야
주가 단기 급등에 따른 조정 우려도 제기된다.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질 경우 일시적인 조정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 역시 조정 가능성은 열어두는 분위기다. 다만 조정이 진행되더라도 낙폭은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하반기 업황 반등 방향성이 명확해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시적으로 주가가 주춤할 수 있겠지만, 추세적으로는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미 일부 선행 지표에서 반등 신호가 나타나고 있으며, 3분기부터는 반도체 주문 물량이 본격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3월 이후 PC 고객과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로부터 메모리 반도체 주문이 회복되고 있다”며 “재고가 어느 정도 축소된 데다 삼성전자 감산과 중국의 마이크론 제품 불매 조치에 따른 심리적 영향도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어 “선행 지표들이 이미 상승 반전한 상황이고 3분기 하순부터는 IT 세트 판매와 반도체 주문이 본격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내년에는 본격적인 업황 반등이 나타날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5월 26일 이후 삼성전자 보고서를 발간한 신한투자증권, 메리츠증권, 키움증권, 하이투자증권, SK증권 등 5개 증권사가 전망한 올해 삼성전자 실적은 매출 269조672억원, 영업이익 8조7160억원이다.
감산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올해 4분기부터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상승하고 내년 1분기에는 메모리 부문에서 흑자전환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동희 SK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 하반기 DDR5 D램 점유율 회복이 시작되며 내년 1분기에는 메모리 부문의 흑자전환이 예상된다”며 “시장은 올해 실적보다 내년 업황 반등 이후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거시 환경 변동성은 변수가 될 수 있다. 미국의 금리 인하와 전 세계 유동성 증가 강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반도체 수요 회복 속도를 늦춰 주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중국 스마트폰 소비와 AI 반도체 수요 확인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하반기 삼성전자 주가 변수는 거시 환경의 회복 여부와 강도가 될 것”이라며 “아직까지 매출 내에서 차지하는 AI 반도체 비중이 미미한 수준이기 때문에, AI로 인한 반도체 수요의 실체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 경기 위축에 대한 우려가 남아 있다는 점도 전방 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2호 (2023.06.07~2023.06.13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