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 전 양화대교 아래 화형식… 그 시절 ‘저항’을 마주하다
1968년 10월 17일, 제2한강교(현 양화대교) 밑에 강국진, 정강자, 정찬승 등 일단의 청년 작가들이 모였다. 이들은 각자 스스로 들어갈 무덤으로서의 구덩이를 판 후 비닐천을 몸에 감고 목을 내놓은 채 그곳에 묻혀 관객들의 물세례를 받았다. 무덤에서 나온 그들은 비닐천 위에 흰 페인트로 그들을 타살한 기성세대를 고발하는 글을 쓰고 그걸 태우는 화형식을 했던 것이다.
1960-70년대 한국의 청년 작가들은 이처럼 회화도, 조각도 아닌 새로운 미술을 했다. 그들은 왜 이런 전위적인 미술을 했을까. 그 시절의 미술을 조명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대규모 기획전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전이 최근 서울관(7월 16일까지)에서 개막했다.
강국진 등이 행했던 그 ‘한강변의 타살’ 퍼포먼스는 국가주도의 근대화, 산업화 시대 청년 작가들이 무엇에 반항하고자 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이 태운 것은 국전 중심의 기성미술, 권력에 아부하는 문화인이었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과 공동 기획해 공동 주최한다. 한국 전시에 이어 9월 1일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내년 2월 11일부터는 LA 해머미술관에서 순차적으로 전시가 개최된다. 한국의 실험미술을 조명하는 이번 기획전은 구겐하임과 2018년부터 함께 연구한 결과물이라 당시 실험미술의 전개 양상이 알차고 폭넓게 조명됐다.
김구림, 성능경, 이강소, 이건용, 이승택 등 29명 대표작 약 95점, 자료 30여점이 나왔고, 입체미술, 해프닝, 실험영화 등 이들이 선보였던 전위적인 활동상을 그들이 결성했던 청년작가연립전, 제4집단, 아방가르드협회, ST 학회, 대구현대미술제 등 각종 그룹의 전시를 통해 조명한다.
전시는 6개의 소주제로 구성됐다.
첫째, ‘청년의 선언과 시대 전환’에서는 1960년대 후반에 시작된 전위적 실험미술의 양상들을 소개한다. ‘오리진’, ‘무동인’, ‘신전동인’ 등의 신진 예술인그룹의 활동과 이들이 연합하여 개최한 ‘청년작가연립전’을 통해 국전(國展)과 기성 미술계를 비판하며 실험적인 작업을 했다. 정강자의 ‘키스미’, 강국진의 ‘시각 Ⅰ,Ⅱ’ 이태현의 ‘명’ 등이 소개된다. 또 초기 해프닝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1967)과 첫 페미니즘적 퍼포먼스로 불리는 강국진, 정강자, 정찬승 등의 ‘투명풍선과 누드’(1968)도 이 코너에서 소개된다.
둘째, ‘도심 속, 1/24초의 의미’에서는 급격한 도시화 속에서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함께 시행한 실험적인 시도들을 조명한다. 김구림의 실험영화 ‘1/24초의 의미’(1969)를 상영하고, 또 김구림이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을 감쌌던 ‘현상에서 흔적으로’(1969)를 재해석해 새롭게 제작한 드로잉 ‘구겐하임을 위한 현상에서 흔적으로’(2021)가 최초 공개된다. 미술, 영화, 패션, 문학을 넘나드는 작업을 시도한 ‘제4집단’이 도심에서 펼쳤던 ‘기성문화예술의 장례식’(1970) 해프닝도 자료로 소개한다.
셋째, ‘전위의 깃발아래 - AG(한국아방가르드 협회)’에서는 1970년대 초 실험미술 그룹과 개인들의 주요 활동을 소개한다.
넷째 ‘“거꾸로” 전통’에서는 한국의 전위미술과 전통의 관계를 다룬다. 통상 전위미술이 전통을 부정하지만 이승택은 ‘거꾸로’ 전통의 재발견을 통해 그 돌파구를 마련했다. 예컨대, 아부다비 구겐하임미술관 소장품인 이승택의 ‘무제(새싹)’(1963/2018 재제작)는 전통 옹기를 겹쳐 새싹처럼 보이게 한다.
다섯째, ‘‘나’와 논리의 세계: ST’에서는 작가 스스로 작품에 대한 논리와 이론의 토대를 정립하며, 한국미술에 개념적 설치미술과 이벤트를 맥락화한 전위미술단체 ‘ST(Space&Time)’학회(1971-1981)의 활동상을 소개한다. 이들은 예술개념의 문제를 분석·철학적으로 접근하여 매체의 본질을 언어에서 찾고자 했다. 동서양 이론을 통합적으로 연구하고 사진, 사물, 행위, 이벤트 등 다양한 양식으로 표현했다. 대표 작품으로 이건용의 ‘신체항’(2023), ‘손의 논리’(1975), ‘신체 드로잉 76-1 78-1’(1978) 등, 성능경의 ‘신문 1974.6.1. 이후’(1974)와 사진 미술의 가능성을 실험한 ‘거울’(1975), ‘사과’(1976) 등이 소개된다.
여섯째, ‘청년과 지구;촌 비엔날레’에서는 당시 청년작가들의 돌파구가 되었던 해외 비엔날레와 AG의 ‘서울비엔날레’(1974), ‘대구현대미술제’(1974-1979)를 상호 교차해 한국 실험미술의 국제적 면모를 선보인다. 1960∼70년대는 국제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는데 특히 제8회 ‘파리비엔날레’(1973), 제13회 ‘상파울루비엔날레’(1975) 등은 한국의 젊은 실험미술 작가들이 세계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심문섭의 ‘현전’(1974-1975), 박현기의 ‘무제(TV돌탑)’(1982), 이강소의 ‘무제 75031’(1975) 등 당시 작품들을 선보인다.
전시 기간 중 실험미술사의 대표적인 퍼포먼스인 김구림의 ‘생성에서 소멸로’(6.14.), 성능경의 ‘신문읽기’(6.21.), 이건용의 ‘달팽이 걸음’(6.28.) 등이 순차적으로 개최된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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