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처럼 떠난 미군, '리틀 시카고'가 남긴 숙제 [우리 도시 에세이]
오랜 시간 삶의 ‘흔적’이 쌓인 작은 공간조직이 인접한 그것과 섞이면서 골목과 마을이 되고, 이들이 모이고 쌓여 도시 공동체가 된다. 수려하고 과시적인 곳보다는, 삶이 꿈틀거리는 골목이 더 아름답다 믿는다. 이런 흔적이 많은 도시를 더 좋아한다. 우리 도시 곳곳에 남겨진 삶의 흔적을 찾아보려 한다. 그곳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를 기쁘게 만나보려 한다. <기자말>
[이영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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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측 입구 CAMP BOSAN 입간판이 서 있는 북측 초입. 사진 왼편이 미군부대. |
| ⓒ 이영천 |
그러나 불행히도 미군을 상대하던 양공주와 윤락업소가 기지촌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굳어진 실정이다. 공간을 지키며 새롭게 탈바꿈시키려 애쓰는 이곳 상인과 장인, 청년 창업자들이 느낄만한 억울함이다. 기지촌이 숙명처럼 받아들여야만 했던 양가성이다. 그렇다고 양공주라 부르던 여성들을 상대로, 미군은 물론 공공연히 국가가 발 벗고 나서 저지른 범죄까지 면죄부를 받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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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리풍경 경원선에 잇닿은 이색적인 거리풍경. |
| ⓒ 이영천 |
공간의 임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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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군 부대 입구 보산동 맞은편 미군 부대 입구. 수만 명이 주둔하다 평택으로 이전하고 소규모 부대만 남아 있다는 주민들의 전언. |
| ⓒ 이영천 |
양주 이담면(伊淡面)이, 십여 년 만에 읍(邑)으로 승격하면서 동두천이란 이름을 얻는다. 전쟁 후였음에도 사회적 인구 증가가 얼마나 폭발적이었는지를 실감하는 대목이다. 공간은 미군의 소비력으로 번성한다.
그러다 맞아들인 첫 위기가 1971년 미군 7사단의 철수였다. 한반도 내 2만여 병력을 감축하면서 동두천이 직격탄을 맞는다. 1970년대 내내 이어진 한·미 간 눈에 보이지 않은 긴장 관계가,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 창설로 매듭지어지기까지다. 파주에 주둔하던 미군 2사단이 동두천으로 둥지를 옮겨온 건 다행(?)이었을까? 규모는 작아졌을지언정, 어쨌든 미군의 존재는 유효했으니 말이다.
1981년 동두천이 시(市)로 승격하지만 뚜렷한 산업시설 없는, 소비 위주의 공간구조는 그 확장성에서도 명확한 한계를 보인다. 미군 동태에 따라 크고 작은 변화를 보이던 공간에 다가온 두 번째 위기는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2천년대 초반, 동두천에 주둔하던 4천여 병력이 이라크 전쟁에 파병되면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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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 도로 보산동 외국인 관광특구 주 도로 중 한구간. 영어 일색 간판이 즐비하다. |
| ⓒ 이영천 |
현재 진행형인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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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리 풍경 휴일을 맞아 나들이 나온, 미군으로 보이는 외국인 여럿을 볼 수 있었다. |
| ⓒ 이영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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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국인관광특구 야간 조명등이 줄지어선 보산동 남측 초입 모습. |
| ⓒ 이영천 |
우리 국민에게 범죄를 저지른 미군 피의자를 기소할 권리 하나 찾아오는데, 이토록 엄청난 희생과 힘겨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희생당한 두 여중생 사망 사건 때도 SOFA 개정 요구가 있었으나, 극히 일부 조항에 한정된 합의서 체결로 매듭짓고 만다.
공간이 던진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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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측 입구 CAMP BOSAN 입간판이 선 남측 교통광장 언저리. |
| ⓒ 이영천 |
아직 비워지진 않았으나, 미군과 당시 우리 정부가 주둔지 토지를 어떤 방식으로 강탈해 갔는지를 먼저 살필 필요가 있다. 그 땅으로 인해 부대가 주둔하여 도시가 탄생했고, 미군이 두고 갈 그 땅에서 이 도시는 다시 희망을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군 부대 터는 철저히 공공 영역에서 다루어야 한다. 다만, 1950년대 억울하게 징발당한 옛 토지주 후손들에겐 지금이라도 정당한 보상이 이뤄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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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심부 보산동 중심부. 한미우호광장 주변 여럿으로 길이 갈리는 곳의 모습. |
| ⓒ 이영천 |
한 가지 더 보탠다면 '커다란 아픔이 있었음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보이기 싫은 역사일망정 후손들이 반드시 되짚고 각인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해 주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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