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CM와 부동의 첫사랑

이재희 2023. 6. 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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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이야기를 오래 귀담아 듣는 것, 그들의 시선에 맞춰 노래를 짓는 10CM의 노력, 그렇게 시작된 '부동의 첫사랑'.

Q : 올초 발표한 〈Remake 1.0〉은 곡 선정부터 편곡까지 2년간 준비해 온 오리지널 리메이크 프로젝트죠. 현재 인디 신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의 곡을 리메이크했는데, 제목 옆에 이들의 인스타그램 아이디가 표기된 게 신선했어요. 그들이 더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인가요

A : 맞아요. 이강승, 웨스턴 카잇, 결, 케니더킹이 제 제안을 기꺼이 받아줘서 고마웠어요. 혹시라도 그분들이 더 알려질까 하는 마음에 제목에 그들의 SNS 계정을 기재했어요. 다만 아티스트들과 저 사이에 데뷔 연도 차이가 있어서 제가 도와주는 것처럼 보일까 봐 부담스러웠어요.

깅엄 체크 패턴의 톱은 People of the World. 안경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이들의 곡을 편곡할 때 지향 혹은 지양했던 부분은

A : 지양했던 건 방금 말한 그 점이에요. 도와준다는 의도에 무게를 치중하는 느낌이 들 것 같은 우려. 제가 크게 도움받은 앨범이거든요. 이미 유명한 곡들이고, 편곡을 허락해 줘서 작업할 수 있었어요. 지향했던 점은 제가 주도해서 리메이크 앨범을 만드는 것이었죠. 이전부터 만들고 싶었는데, 프로젝트 형식으로 참여한 것 외에 온전히 제 것을 만든 적 없거든요. 이미 대중적인 히트곡을 편곡한 앨범은 많으니 다른 형식으로 접근하기로 했어요. 제 음악의 출발이 인디 신이고, 지금 인디 신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친구들의 곡으로 하는 게 좋겠다 싶었죠. 잘 살렸나 모르겠어요. 솔직히 만들고 나서 다시 들으니 원곡이 더 좋더라고요(웃음).

Q : 이들과의 조우를 통해 요즘 인디 신의 새로운 트렌드를 발견했다면

A : 제가 거시적 흐름을 잘 모르지만, 다른 점은 가사라고 생각해요. 확실히 가사가 더 솔직하죠. 제 가사는 솔직하거나 표면적으로 느껴지진 않아요. 반면 현재 인디 신 곡의 가사는 좀 더 저돌적인 부분이 있고, 좋으면 좋다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뉘앙스가 있어요.

Q : ‘딱 10CM만’과 ‘정이라고 하자’를 함께 작업한 스무 살 후배 빅나티가 딩고 〈이슬라이브2〉에서 건배를 청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후 이어진 대화는 친구 같았어요

A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웃음). 나이 차가 딱 두 배죠. 저는 생각보다 철이 없고, 그 친구는 생각보다 원숙해요. 그래서 친해진 것 같아요. 어떨 땐 음악활동을 오래 한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시대 흐름을 저보다 훨씬 빨리 알아차리니 배울 만하죠.

재킷은 Moschino. 티셔츠는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데님 팬츠는 Balenciaga. 스니커즈는 Adidas. 안경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2003년생인 빅나티와 곡 작업을 하며 사랑에 대한 대화도 많이 나눴을 것 같아요. 지금 스무 살이 사랑을 대하는 방식과 20년 전의 스무 살이 사랑을 대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나요

A : 그런데 서동현(빅나티)은 이 질문에 해답할 수 있는 친구가 아닌 것 같습니다(웃음). 요즘 젊은 세대가 가진 선입견이 있는데, 이를테면 가볍게 만나고 헤어진다든지, 더 쿨하다든지. 반면 동현이는 그렇지 않거든요. 더 찌질하고 지고지순한 것 같아요. 어릴 적 짝사랑을 계속 곡으로 쓰는 것만 봐도 그렇죠. ‘쿨’하진 않아요.

Q : 더 이상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싫어 주변인의 에피소드나 말에 영감받아 가사를 쓴다고 했어요

A : 어느 순간 떠올려보니 내 일화를 노래로 만든 경우가 없더라고요. 영감이 되는 일이나 강렬히 느꼈던 감정을 떠올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거든요. 그래서 소스를 다른 사람에게서 찾아야겠다고 말했나 봐요. 시트콤 보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만든 곡도 있어요. 내 이야기를 하면 하죠. 하지만 재미가 없어요. 별로 재미있게 살지 않았거든요(웃음).

더블 브레스티드 수트는 People of the World. 셔츠는 Maxi J. 스니커즈는 Adidas. 안경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5월 14일에 발매된 신곡 ‘부동의 첫사랑’은 이미 무대에서 여러 번 공개했어요

A : 저도 알아요. 꼭꼭 숨겨놨다가 갑자기 ‘짠!’ 하고 열어야 멋있다는 걸. 하지만 못 참겠어요. 노래를 완성하면 빨리 보여드리고 싶어서.

Q : ‘부동의 첫사랑’은 짝사랑을 그린 곡이에요. 이 곡의 화자는 ‘친구3’이고요. 친구3은 어떤 인물인가요

A : ‘첫사랑을 주제로 노래를 만들고 싶다’가 시작이에요. 생각해 보니 첫사랑을 그린 노래가 없었죠. 역시 10CM의 주인공은 성격이 정해져 있잖아요. 인사이더보다 주변에서 겉도는 사람, 자기한테 과분한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 보통은 고백도 못 하고 끝나지만 ‘부동의 첫사랑’에선 고백했어요. 행복한 결말은 아니었으나 ‘역시나 변치 않는 첫사랑’이라고 확신하는 마음가짐이 좋았어요.

코트는 Songzio. 데님 팬츠는 RSC. 슬라이드는 Adidas. 안경은 Miu Miu.

Q : 짝사랑이 해피 엔딩으로 이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용기가 필요한 사람이 활용하면 좋을 10CM의 가사를 추천한다면

A : 여러 곡을 만들어 발표한 사람 입장에서 ‘오늘밤은 어둠이 무서워요’를 추천해 봅니다. 가사가 꽤 능청스러워요. 서로 호감 있는 상태에서 활용하는 게 매력적이긴 합니다. 별생각 없는 상대에게 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어요.

Q : ‘라면 먹고 갈래?’나 ‘고양이 보러 갈래?’의 일환이군요

A : 그 ‘라면 먹고 갈래?’가 너무 싫어서 달리 표현하려고 ‘오늘밤은 어둠이 무서워요’를 썼어요. 고양이 알레르기 있는 사람은 어떡해요?

스트라이프 수트는 People of the World. 스니커즈는 Adidas. 안경은 Gentle Monster.

Q : 찌질한 사랑 이야기가 지겨운 적은

A : 없어요. 에너지를 가장 많이 뿜어낼 수 있는 소재인 것 같아요. 사랑 이야기가 아닌 노래도 많아요. 하지만 10CM를 시작할 때 아예 정해버렸어요. 젊은 음악, 대학생들이 많이 듣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고요. 그 점을 염두에 두고 곡을 쓰니까 ‘사랑’밖에 할 이야기가 없었죠.

Q : 10CM로서 14년 차입니다. 밴드해령 활동까지 포함하면 더 오래됐죠. 무대에 서면 여전히 떨리나요

A : 생각보다 많이 긴장해요. 이제 5월이니까, 대학교 축제 공연이 줄줄이 열리겠죠. 대학교 축제 공연은 많이 떨려요. 봄 축제 공연을 연이어 하다 보면 긴장이 서서히 풀리다가도, 잠깐 쉬었다 가을 대학교 축제 공연이 시작되면 또 떨려요. 10CM 콘서트 무대에선 너무 긴장하죠. 준비한 건 많고, 다 보여줘야 하는데 실수할까 봐. 예전에 단독 콘서트에서 공연 연출 팀이 밤새 만든 꽃가루를 제 실수로 잘못된 타이밍에 날려 무척 당황했던 적 있어요.

Q : 오랜 시간 간직하고 있는 습관은

A : 성실함. 일할 땐 ‘할 거면 정신없이 제대로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임합니다. ‘워라밸’ 같은 건 없죠. 또 하나는 노래를 들려주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 무척 행복하다는 감정은 여전히 변함없습니다.

Q : 곧 〈엘르〉 스테이지 무대에서 만날 예정입니다. 한편 버스킹 문화에 대한 애정도 꾸준하게 보이고 있어요. 버스킹의 매력은

A : 여러 가지입니다. 인지도 있는 가수의 길거리 공연은 큰 의미 없어요. 아무도 나를 모른다는 게 버스킹의 매력입니다. 아주 불안하고 긴장되고 무서운 무대거든요. 수많은 사람이 지나가지만 기타 들고 자리 잡을 때까지 아무도 관심을 안 줘요. 우연히 눈길이 닿아 멈춰 선 관객 한두 명을 제외하면요. 그러다 사람이 조금씩 모이고 들어주며 박수 쳐주는 게 굉장한 감동이자 짜릿한 경험이죠.

트레이닝 수트와 셔츠는 ac모두 Kenzo. 안경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마로니에 공원과 홍대 거리에서 4시간 버스킹하던 시절의 권정열을 돌아본다면

A : 너무 행복했죠. 엄청 고생했지만 항상 설레고 즐거웠어요. 음악을 하고 싶은데 연습실이 없어 돈을 벌어야 했어요. 그래서 버스킹을 시작했죠. 통기타 하나 들고 거리로 나갔어요. 그땐 지금보다 목소리가 더 컸어요. 처음 2시간 동안 몇십만 원을 벌었는데, 엄청난 시급이잖아요. 곧바로 아르바이트하던 가게에 전화해 그만두겠다고 했어요. 근데 그 몇십만 원은 초심자의 행운이었어요. 그렇지만 아르바이트하며 고되게 음악을 하는 것보단 괜찮았어요. 기가 막히게 돈이 안 벌리는 날도 많았지만요.

Q : 그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겠죠

A : 항상 그리워요. 음악에 있어선 항상 자유로웠고, 즐거움만 추구해도 모든 게 허락되는 시절이니까. 지금을 좋아하지 않거나 재미없다는 게 아니고요. 지금은 잘해야 하니까 마냥 즐길 수만은 없죠.

Q : 요즘 버스킹하는 친구들 보면 어때요

A : 너무 재미있죠. 볼륨 전쟁을 하더라고요. 너무 ‘라떼’ 같지만, 우리 때는 앰프 같은 장비를 안 썼어요. 통기타와 목청이 전부였죠. 요즘은 버스킹 거리에서 많은 친구들이 동시에 공연해서 서로 더 큰 소리를 내기 위해 앰프를 사용하더군요.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공연 자리가 시스템화됐다고도 하더군요. 구청에 예약해야 공연을 할 수 있대요. 낭만이 없어졌죠. 한편으론 질서정연해진 것으로 볼 수도 있고요.

Q : 음악을 하고 무대에 서면서 가장 행복한 때를 꼽는다면

A : 연말 콘서트 때. 한 해 활동을 열심히 한 보상 같아요. 그리고 지난해에 모교에서 축제 무대를 처음 선보였는데 많이 뿌듯했어요.

Q : 음악이 지겹다고 느낀 적은

A : 제가 생각보다 뭘 하든 별생각 없어요. 음악이 삶 자체가 돼버려서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안 해봤고, 매번 설렘을 느끼지도 않죠. 당연히 해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재킷과 데님은 모두 People of the World. 스니커즈는 Adidas. 안경은 Gentle Monster.

Q : 그럼에도 좋은 음악 혹은 음악이 가진 힘과 영향력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 부분이 있다면

A : 음악을 아주 무겁고 고차원적으로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어쩌면 아주 가벼운 것이죠. 단 3~4분 안에 끝나니까.

Q : 연말에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공연이 예정돼 있어요. 큰 무대에 서면 어떤 기분인가요

A : 시작부터 울컥해요. 객석이 꽉 찬 광경을 보면 기분이 이상하죠. 공연 직전까지 티켓 판매 사이트를 들락거려요. 매진이 떠 있어도 불안해서 창을 못 꺼요. 혹시 시스템 때문에 갑자기 취소표가 와르르 쏟아질 수도 있으니. 그러다 공연 당일 꽉 찬 광경을 봐야 안도해요.

Q : 잘 알려진 평양냉면 마니아로서, 초여름을 맞아 평양냉면 맛집 톱 3를 매긴다면

A : 1위는 을밀대. 여기 냉면은 중독성이 심합니다. 너무 가고 싶어서 정신 못 차리는 수준으로 좋아하는 곳이죠. 2위는 을지면옥을 꼽고 싶은데 문을 닫아버려서. 약간 다른 포인트로 3위를 매긴다면 수원의 평장원을 꼽겠습니다. 24시간 영업하는 곳이죠. 보통 24시간 영업이라면 맛의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말이 안 되죠. 갈 때마다 기도해요. 영업시간 바뀌지 말라고. 장사가 잘되는 곳이 아닌 것 같아 불안합니다. 영업시간이 줄어들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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