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소울푸드 떡볶이, '학습된 맛있는 맛'이라고?

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 2023. 6. 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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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의 이것도 심리학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제공
몇 년 전 한 맛 칼럼니스트가 화제의 발언을 했다. “떡볶이는 맛이 없다. 관능적으로 맛이 없는 음식이며, 사회적으로 맛있다고 세뇌된 음식이다.” 이 발언은 떡볶이 논쟁으로 이어지며 한동안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떡볶이 애호가인 나를 포함해 이 주장에 동의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맘 같아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치부해 버리고 싶다.

하지만 ‘관능적인 맛과 사회적인 맛’을 구분하는 것은 감각을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히 고려돼야 할 부분이다. ‘맛’뿐 아니라 모든 감각 정보는 우리 뇌에서 해석될 때 두 가지 측면의 정보가 고려된다. 하나는 자극이 가지고 있는 자체적인 정보다. 떡볶이의 맛을 기준으로 설명하면, 떡볶이를 먹고 우리의 혀에 있는 5가지 맛(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 수용기가 전해주는 정보로, 일명 상향적(bottom-up) 정보라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자극이 아닌 내 머리 속에 있는 정보다. 떡볶이와 관련된 추억, 믿음, 지식처럼 떡볶이를 먹을 때 내 머리 속에서 떠올라 영향을 미치는 정보로, 하향적(top-down) 정보라고 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감각 결과는 이 두 가지 정보를 모두 고려하여 얻어진다. 그리고 맛이라는 감각은 하향적 정보에 유난히 영향을 많이 받는 것도 사실이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우리가 타고난 5가지 맛 감각은 나름 이유가 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영양소와 관련된 것들은 긍정적인 맛으로 지각된다. 당분과 관련된 맛인 단맛, 단백질과 관련된 맛인 감칠맛, 전해질과 관련된 맛인 (적절한 수준의)짠맛은 애초부터 선호되는 맛이다. 하지만 나머지 신맛과 쓴맛의 역할은 먹으면 안 되는 것들을 알려주는 것이다. 따라서 신맛과 쓴맛은 애초부터 우리에게 혐오적인 맛이어야 한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혐오적인 맛인 쓴맛은 오늘날 가장 대표적인 기호 음식인 커피의 기본 맛이다. 그래서 심리학에서는 커피에 대한 선호를 대표적으로 ‘학습된 맛있는 맛’이라고 표현한다. 사회문화적으로 맛있다고 알려주는 셈이다.

그리고 또 다른 대표적인 ‘학습된 맛있는 맛’이 매운맛이다. 사실 매운맛은 통각 수용기를 통해서 지각된다. 과거 서양권에서 칠리고추는 스키를 탈 때 부츠 안에 넣는 발열제나 동물들의 접근을 막는 울타리 기능으로 사용되었다. 즉, 음식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렇게 통증을 유발하는 맛을 좋아하게 된 것은 역시 학습의 결과로 이해된다.

서양권에서도 떡볶이 논쟁과 유사한 논쟁이 있는데, 주로 와인과 관련된 것이다. 와인의 맛은 혀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뇌에서 결정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사실 모든 맛은 뇌에서 결정된다. 혀에 있는 맛 수용기의 정보가 해석되어 맛을 지각하는 것은 뇌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표현은 문학적인 표현으로 이해하기로 하자.) 실제로 한 연구에서 동일한 와인에 대해 높은 가격이라고 알려주면 더 맛이 있다고 지각되었다고 하니, 와인의 맛은 혀가 아닌 정보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떡볶이의 맛있음이 학습된 결과, 세뇌된 결과라는 주장이 그럴싸하게 보이긴 한다. 하지만 맛있음을 느낄 때 사회문화적인 영향이 있다고 해서, 그 음식이 맛없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커피나 와인의 맛있음도 학습의 결과이지만, 그 누구도 커피와 와인이 맛없는 음식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실제 와인과 상관없이 높은 가격대의 와인이라고 믿게 되면 우리의 뇌에서는 기쁨과 관련된 뇌 영역인 내측 안와전두피질(medial orbitofrontal cortex, mOFC)의 활성화 정도가 높아졌다고 한다. 즉, 학습된 맛있음도 나를 충분히 기쁘게 만드는 즐거운 맛이라는 의미가 된다.

나는 떡볶이가 맛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내 혀가 전문가처럼 예민하지 않아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령 떡볶이가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고 해도 어떤가? 과거에 많이 먹었던 기억, 친구들과 가족들과 행복하게 먹었던 추억 때문에 맛있게 느껴지는 것뿐이라고 해도 좀 어떤가? 추억도 충분히 맛이 있다. 오늘 저녁은 떡볶이를 먹어야 할 것 같다. 생각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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