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위기의 한국영화
1988년 9월 26일 서울 명동 코리아극장에 뱀이 나타났다. 미국 영화배급사 UIP의 첫 한국 직접 배급 영화 ‘위험한 정사’ 개봉에 항의한 영화인들이 벌인 일이었다. 이듬해 8월엔 직배 영화를 상영하던 서울시내 영화관 5곳에서 방화 혹은 최루가스 분무 테러가 일어났다. 직배반대투쟁위원장이 괴한에게 피습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직배를 둘러싼 갈등은 그만큼 거셌다.
군부정권의 검열과 통제를 거치며 한국 영화의 경쟁력은 가뜩이나 떨어진 상태였다. 직배 영화는 도입 10년 만인 1997년 73편 개봉에 1000만 관객 규모로 성장했다. 반면 한국영화는 제작 편수가 쪼그라들었다. 대신 충무로에 대기업 자본이 뛰어들면서 편당 관람객 수가 느는 등 질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1993년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사상 첫 100만 관객을 돌파했고, 2004년 ‘실미도’가 1000만 스타트를 끊었다. 한국영화 위기론은 1997년 외환위기, 2007~2008년 세계금융위기 등 고비 때마다 나왔다. 그러나 한국영화는 매번 위기를 넘기며 경쟁력을 확보해 왔다.
이번엔 코로나19와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OTT의 약진으로 또다시 한국영화 위기론이 불거지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한국영화 극장 점유율은 31.4%에 그친다. 2004년 집계를 시작한 이래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2021년 30.1%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수치다.
올 1분기 개봉 영화 중 100만 관객을 넘은 건 ‘교섭’과 ‘드림’뿐이었다. 올해 흥행한 건 ‘스즈메의 문단속’(551만 명), ‘더 퍼스트 슬램덩크’(467만 명) 등 일본 영화와 외화였다. 티켓값은 올랐지만 볼만한 영화는 없다는 관객들의 불만도 높았다.
지난달 31일 개봉한 ‘범죄도시3’가 개봉 첫날 최다 관객 동원 기록을 세우고, 6일 만에 500만 명을 모으며 스퍼트를 내고 있다. ‘범죄도시3’의 손익분기점은 180만 관객이다. 한국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긴 건 지난해 11월 개봉한 ‘올빼미’ 이후 처음이다. 4일 기준 총 2566개 스크린을 확보하며 좌석점유율 76%를 차지해 ‘공정신호등’엔 빨간불이 켜졌다. 그럼에도 마동석의 ‘원 펀치’ 액션이 위기의 한국영화에 반전의 계기가 되길 응원하게 되는 이유다.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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