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남의 영화몽상] 아는 영화와 아는 재미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험상궂은 폭력배들이 시민들을 공포에 몰아넣는다. 그 순간, 덩치 좋은 사내가 나타나 다짜고짜 이들을 제압한다. 과연 누구길래 이런 활약을 보여주는 걸까.
설명은 필요 없다. 이 영화 시리즈는 지난해 2편이 무려 1269만 명, 앞서 1편도 688만 명이나 관람했다. ‘마석도’라는 극 중 이름은 몰라도, 이를 연기한 배우 마동석을 몰라보긴 힘들다. 그 캐릭터를 모른 채 지금 ‘범죄도시3’을 보러 가는 관객은 별로 없다. 프랜차이즈라고도 불리는 시리즈 영화, 그 속편의 강점이다.
올해 극장가는 유독 속편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할리우드 영화로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편이 약 400만, ‘존 윅’ 4편이 약 200만 관객을 모았다. 각각 시리즈 역대 최고 성적이다. 10편에 이른 ‘분노의 질주’도 170만 관객을 모으는 저력을 발휘했다. 앞으로 개봉할 속편도 여럿이다.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은 5년 만에, 해리슨 포드의 ‘인디아나 존스’는 15년 만에 신작이 나온다. 더 이상 샤이아 라보프가 나오지 않는 ‘트랜스포머’ 시리즈도 곧 신작이 개봉한다.
물론 속편이 모두 재미있는 것도, 늘 흥행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속편은 대개 전작과 비교되게 마련. 익숙한 설정을 사골 국물 내듯 우리고 우려내다 보면 관객에게 피로감을 안겨주기 십상이다. 속편에 대한 할리우드의 높은 의존도는 영화 산업의 창의력 고갈을 보여주는 것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그런데도 할리우드는 줄기차게 속편을 만든다. 전혀 새로운 영화보다 흥행에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지도 낮은 새 영화보다는 홍보도 쉽다.
어쩌면 요즘 관객도 이와 통하는 것 같다. 자주 극장을 찾는다면 몰라도, 1년에 한 두 번 나들이한다면 시쳇말로 ‘믿고 보는’ 영화를 찾게 마련이다. 아는 영화, 성공한 시리즈의 속편은 그래서 유리하다. 알다시피 한국 영화산업은 코로나19 팬데믹의 타격 이후 전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 1인당 연간 영화 관람 횟수는 네 편을 넘다가 팬데믹 이후 한 편 정도로 급감했다. 지난해 나아졌다고 해도 두 편 정도다. 게다가 팬데믹 시기 OTT라는 대체재도 떠올랐다. 영화 관람료도 올랐다. “관객들이 볼 작품을 더욱 신중히 선택”한다는 것은 영화진흥위원회의 지난해 한국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의 분석이다.
아는 맛은 무섭다. 지난 주말 ‘범죄도시’를 보러 간 극장에는 중장년 관객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최근 자주 보지 못한 풍경이다. 물론 한 편이 잘 된다고 다른 영화까지 관객이 늘어나는 낙수효과를 기대하긴 힘든 시장이다. 그럼에도 기대를 갖게 된다. 친숙한 속편의 맛이 극장에서 영화 보는 맛, 누구나 알지만 한동안 잊은 재미를 되살리는 징검다리가 됐으면 싶다.
이후남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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