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정원의 반려견, 푸른 바다…평온한 일상이 낙원

제주의 자연과 평화로운 일상이 깃들어 있는 김보희 작품이 최근 해외 미술시장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작가가 자신의 반려견을 그린 ‘레오’,2023, 162x130㎝.[사진 갤러리바톤]

“레오!” 방금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부른 것 같다. 야자수 나무가 울창한 정원으로 나가는 길에 앉아 있던 검은 래브라도 리트리버 레오가 고개를 돌려 화면 밖을 쳐다보고 있다. 야자수 등 초록 정원을 배경으로 한 레오의 표정에 평온함과 느긋함이 묻어 있다.

김보희(71) 작가의 개인전 ‘투워즈(Towards)’가 서울 한남동 갤러리바톤에서 7월 1일까지 열린다. 팬데믹 시기인 2020년 서울 삼청동 금호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어 푸른 자연과 평온한 일상이 담긴 화폭으로 위안을 주었던 그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번에도 전시장엔 제주도 자택의 정원과 서귀포 바다, 작가의 반려견 레오 등 친근한 풍경을 주제로 한 신작이 펼쳐졌다.

김보희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작가의 반려견을 주인공으로 한 4점의 ‘레오’ 연작이다. 정원에서 다양한 포즈로 쉬고 있는 레오의 모습이 4개의 캔버스에 나뉘어 담겼다. 그림 속 레오는 혼자가 아니다. 10년 넘게 함께 살아온 가족이 가까이에 있고, 바다가 멀리 보이고, 풀과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풍경 한가운데서 쉬고 있다. 파란 하늘 반, 초록 식물 반으로 균형 잡힌 구도, 동양화 채색 기법으로 캔버스에 부드럽게 번져 있는 생명의 기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풍요와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작가가 주변에서 영감을 얻어 재구성한 이상향, 낙원의 모습이다.

낙원은 정원에서 바다로 이어진다. 그곳엔 오로지 하늘과 바다만 있을 뿐이다. 특히 두 개의 캔버스에 하늘과 바다를 각각 그려 세로로 포개 놓은 세로 2.6m의 대형 그림 ‘Towards’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두 캔버스의 틈새는 하늘과 바다의 뚜렷한 경계가 되고, 잔잔한 물결을 섬세한 붓질로 표현한 ‘초록’과 ‘파랑’‘옥색’의 조화가 맑고 포근하다.

‘투워즈(towards)’, 2023, 각 130x162㎝. 두 개의 캔버스가 수평선을 경계로 이어져 있다. 모두 캔버스에 채색. [사진 갤러리바톤]

새로운 변화를 암시하는 신작 ‘비욘드(Beyond)’도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다. 초저녁 산방산 봉수대에 떠오른 노란빛 보름달을 담은 그림이다.

지난해부터 해외 아트페어에 출품한 그의 작품들이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아트바젤(홍콩), 프리즈(런던), 아트 브뤼셀, 아트 SG(싱가포르), 당다이(타이페이)에서 판매된 그림이 대작부터 소품까지 포함해 13점에 달한다. 지난 3월 열린 홍콩 아트바젤에서도 갤러리 부스를 찾아와 그의 이름을 한국어로 정확하게 발음하며 그림을 찾는 젊은 중국계 컬렉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이 모든 일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 그래서 더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고, 최선을 다해 표현하는 것이 보답이고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