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을 냈는데 가게에서는 안 받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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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주 기자]
▲ 결제수단으로써의 현금 거래에서 가장 많은 결제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현금이 요즘에는 외면당하고 있다. |
ⓒ 노은주 |
올라갈 때는 버스를 탔다. KTX를 탔으면 버스보다 배가 빨랐겠지만 도착 지점인 용산이 딸이 사는 곳과는 거리가 멀어 버스를 탄 것이다. 나의 불편함보다 딸의 편함을 먼저 생각했다. 이런 사소한 것까지 생각하는 게 부모의 마음이란 걸 딸이 알 리 만무하지만 그걸 알지 못한다 한들 그게 뭐 대순가. 내 맘이 편하고 딸의 몸이 편하면 됐지.
터미널에서 점심으로 먹은 한우칼국수전골은 서둘러 먹기에는 다소 비싼 가격이었지만 치과 치료를 하고 있는 딸을 위해 아낌없이 썼다. 점심값으로 지불한 오만 원권 두 장이 이날의 첫 현금 사용이었다. 밥을 먹고 쇼핑을 하다 예쁜 액세서리 하나를 발견했다. 물건을 집어 들고서는 계산을 위해 현금을 꺼냈는데 직원 말이 그곳에서는 현금 계산이 안 된다고 했다.
애초 이번 여행에서는 카드 사용을 자제하기로 마음먹은 터라 당황스러웠다. 그냥 카드를 써야 하나 망설이는 사이 딸이 계산을 하겠다며 핸드폰을 내밀었다. 딸의 결제 수단은 ○○페이. 계산은 금방 끝났다. 어떨결에 계산을 마친 나는 내가 계산한 것이라며 딸의 손에 현금을 쥐여줬다.
생각해 보니 전에도 이런 경험은 있었다. 어느 유명 카페를 갔는데 현금을 사용할 수 없으니 카드를 내라는 것이었다. 보통의 카페에서는 키오스크로 계산을 하더라도 그것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현금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그곳은 그렇지가 않았다. 아예 현금 결제를 거부했다.
카드가 있는 사람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카드가 없는 사람은 돈이 있음에도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순전히 판매자 위주의 사고였다. 이런 시스템이 싫다면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배짱이었다. 이렇게 되면 손님은 나뉘고 만다. 그런 시스템에 동의하고 이용하는 사람과 그럴 수 없는 사람으로. 어차피 이용할 사람은 이용하게 되어 있으니 카페는 자신의 구미에 맞는 사람만을 골라 받으면 그만인 것이었다.
처음 신용카드를 사용했을 때를 생각하면 많은 것이 변했다. 그때는 만 원 이하의 물건은 카드로 살 수 없었을뿐더러, 그 정도 가격의 물건을 사면서 카드를 내미는 것은 주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만 원도 안 되는 물건을 사면서 주인에게 수수료까지 지불하게 하는 것은 몰염치한 일로 여겼으니. 하지만 이제는 지갑을 두둑하게 채웠던 현금의 위엄은 사라진 지 오래다. 어디 현금의 위엄뿐이겠는가. 그것을 담아주었던 지갑의 효용도 사라졌다.
시대가 변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은 끊임없이 변해가고 있다. 우리의 부모 세대에게 현금은 최고의 결제 수단이었지만, 우리 세대는 카드를 주요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내 자식들은 카드마저 불편하다며 모바일에 내장된 앱을 사용한다. 모든 결제는 모바일의 ○○페이로 통한다. 세대 차이를 느끼게 하는 일들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각자가 서로에게 익숙한 삶을 조금씩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 간격은 점점 더 멀어지고 말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지금도 돈이 필요하면 은행을 찾으신다. 한 번 거래한 은행도 쉽게 바꾸지 않는다. 현금 카드를 만들면 먼 길을 걸어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려도 소용이 없다. 근처 마트나 편의점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돈을 굳이 먼 길을 걸어가 찾는다. 운동 삼아 걷는다 하시지만 카드 사용이 불편하신 것일 수 있다. 이런 분들이 현금을 사용할 수 없는 가게를 가게 되면 얼마나 황당할까.
나의 답답함은 딸의 답답함일 수 있기에 심란하다. 카드 사용을 거부하는 어머니에게서 느끼는 답답함을 모바일앱을 깔지 않은 나를 보며 딸이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같은 세상에서 서로 다른 공간을 점유한다. 함께 할 수 없는 공간은 관계마저 거부할 수 있다. 변화는 대체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제공했으면 한다. 급작스런 변화가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벽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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