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문의 진심 합심] 포기할 때의 모습을 누군가는 지켜본다

차승윤 2023. 6. 5. 16:1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그아웃에는 환호가 때로는 침묵이 흐른다. 개인의 감정과 팀워크가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사진은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한동희 선수를 축하해 주는 롯데 선수들. 사진=정시종 기자


더그아웃이 방송화면에 비쳤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B가 배트 등 장비를 챙겨 자리를 뜨는 장면이 잡혔기 때문입니다. 더그아웃 뒤로 빠져 나가는 B를 보며 저는 순간 혀를 찼습니다. ‘자기 차례에서 교체됐다고 바로 나간다고? 팀이 긴박한 상황인데, 더그아웃의 모든 동료가 집중하고 있는데, B의 태도는 과연 팀을 생각하는 건가?’ 

당시 상황을 보충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B의 소속팀은 2점차로 뒤진 채 공격에 나섭니다. 1사 2,3루, 절호의 동점 찬스를 잡습니다. B가 타석에 나갈 차례인데 벤치에서 타임을 겁니다. 대타가 나옵니다.  

얼마 전 프로야구 경기에서 이 장면이 계속 머리 속에 남습니다. 복기할 수록 여러가지 공부거리가 있네요. 그 순간 B의 감정은 어땠을까, 개인의 이슈와 팀 워크는 어떻게 맞출까, 마지막으로 포기할 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등을 생각해 봤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다양한 관점에서 이 장면을 살펴보려 합니다. 

# B의 마음

정말 속상할 겁니다. 오랜만에 선발로 나온 경기인데 4회에 교체됐으니 말이죠. 첫 타석 범타로 물러나긴 했으나 두번째 타석을 앞두고 경기 초반부터 빠지게 되니 화가 났을 법도 합니다. 4회부터 대타를 쓰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상대가 왼손 투수인데 벤치가 선택한 대타도 왼손입니다. 그만큼 B가 코칭스태프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 것 같네요. B 역시 감독과 코치의 선택, 의도에 실망이 클 것 같습니다. 억울하기도 할거고요. 그런 자신의 처지에 대해 서글프고 부끄럽기도 했을 겁니다.

벤치로 돌아가 자리에 앉았을 때 B에게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올라왔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더그아웃을 벗어난 그의 행동이 한편으론 이해가 됩니다. 쓰라린 마음과 감정 컨트롤이 힘든 자신의 상태를 알아채고 그 자리를 벗어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지금은 도저히 내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데 괜히 다른 사람들에게 이걸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게 B의 생각일 수 있겠네요. 불만가득한 얼굴 표정을 드러낸 채 더그아웃에 있는 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니까요. 그의 선택은 오히려 잘한 결정일 수 있습니다.

# 개인의 이슈와 팀 워크

B가 마주한 상황, 그의 감정, 태도는 개인 이슈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말로 팀을 위해 개인은 헌신하라고 배워왔습니다. 그렇게 해야 팀 워크가 이뤄진다고 말입니다. B의 상황에 대입하면 팀을 위한 결정이 내려졌기에 개인의 아쉬움은 뒤로 하고 이를 받아들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교체됐더라도 B가 할 일은 대타의 성공을 응원하고 합심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팀 퍼스트’ 관점입니다.

그러나 개인의 이슈를 무조건 침묵하는 것이 좋은 팀의 조건이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감정을 강제하는 것에서 합심을 끌어낼 순 없습니다.

교체된 B를 당장 불러서 위로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B에게도 멈춤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경기를 마치고, 또는 다음날 B를 찾아 이야기 들어주고 감정을 나누는 일을 누군가 해야 합니다. 감독이 하기 어렵다면 담당 코치가 챙겨 할 일입니다. B의 마음을 공감해주는 누군가는 팀에 있어야 합니다. 멘탈 코치가 필요한 이유기도 합니다. 그런 역할과 과정에서 내가 우리로 연결되고, 팀의 이름으로 지켜지는 것입니다. 저는 B와 유사한 사례에서 선수를 질책하는 코치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선수의 감정을 우선 존중하기 보다 겉으로 보인 선수의 행동만으로 판단하고 비난했습니다. 감독의 의중을 이해시키는 커녕 권위만 앞세웠고 관계는 왜곡됐습니다. 그때 팀은 최악의 시기를 겪습니다.

#포기할 때의 모습 

포기하고 떠나는 B에게 다음엔 다른 선택을 해 보라고 그래도 말해주고 싶네요. 구글 CEO 순다 피차이가 좋은 사람을 찾는 기준에 대해 한 말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무언가 포기할 때의 모습을 주의깊게 봅니다...그들에게 직접 관련이 없는 일에 기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을 예의 주시합니다. 스포츠 경기로 비유하면 벤치에 앉은 선수가 다른 선수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경우가 있죠…이런 건 연기를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죠.” 

떠나는 당신의 뒷모습을 누군가 보고 있습니다.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 김종문

김종문은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2011~2021년 NC 다이노스 야구단 프런트로 활동했다. 2018년 말 '꼴찌'팀 단장을 맡아 2년 뒤 창단 첫 우승팀으로 이끌었다. 현재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KAC)다.

Copyright © 일간스포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